
[이슈페이퍼 2026-01]
지속가능한 조선업을 위한 노동정책 방향 :
거제시를 중심으로
작성자: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송관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 다시 살아나는 조선업, 그런데 왜 체감이 없을까?
- 10년 전, 조선업은 전례 없는 위기를 겪었다. 수주 절벽과 구조조정의 충격 속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일터를 잃었고, 거제·울산·통영 같은 조선업 도시들은 급격한 경기 침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조선업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글로벌 물동량 증가와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가 맞물리며 수주량이 늘고, 업계 전반에 모처럼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 그러나 정작 조선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조선업에 삶의 기반을 둔 지역 주민들은 이 '호황'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숫자로 드러나는 현실은 냉혹하다. 거제시의 조선업 종사자 수는 10년 전과 비교해 64.2% 수준에 그친다. 호황이라고 부르기엔 여전히 너무 많은 자리가 비어 있다.
○ 조선업 이해관계자들의 인식을 살펴보면, 표면적인 회복세 뒤에 구조적인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① 원·하청 구조의 벽 – 성과는 위에서만 머문다
- 조선업은 전통적으로 원청(대형 조선사) → 1차 하청 → 2차 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도급 구조를 갖고 있다. 문제는 수주가 늘고 매출이 올라도, 그 이익이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까지 흘러내려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청은 수익을 가져가고, 하청 노동자는 여전히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여 있다. 호황의 온기가 현장까지 닿지 못하는 구조, 이것이 지역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다.
② 외국인 노동자 증가 – 단기 처방이 만드는 장기 리스크
-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내국인 채용 대신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빠르게 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공백을 채울 수 있지만, 이 방식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 첫째, 지역 경제에 기여하지 못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소득 상당 부분은 본국으로 송금되어, 지역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 둘째,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로는 기술이 축적되지 않는다. 숙련된 조선 기술은 오랜 시간 현장 경험을 통해 쌓이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중심의 채용 구조가 고착화되면, 국내에 기술 인재가 남지 않게 되고, 다음 호황이 왔을 때 오히려 대응 능력을 잃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③ 기술 숙련의 위기 – 지금 씨앗을 심지 않으면
- 조선업은 고도의 기술 집약 산업이다. 용접, 도장, 배관, 전장 등 분야별 숙련 기술은 단기 교육으로 대체될 수 없다. 현재와 같은 고용 시스템이 유지된다면, 기술 전수 체계가 무너지고 미래의 경쟁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있는 대책이 시급히 요구된다.
④ 소통 구조의 부재 – 혼자서는 풀 수 없는 문제
- 호황의 성과를 노동자와 지역사회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조선소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 동시에 정부, 지자체, 기업, 노동자, 지역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다자간 소통 체계도 반드시 필요하다. 어느 한 주체의 노력만으로는 이 복잡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우리에게 필요한 4가지 정책 전환 방향
지금까지의 조선업 노동정책은 불황이 닥쳤을 때 실업급여를 지원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불황 대응형 단기 처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산업의 성과가 노동자와 지역경제 전체로 흘러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조선업 정책이어야 한다.
- 첫째, 불공정한 도급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원청 중심의 이익 독점 구조를 바꾸거나, 최소한 하청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끌어올리고 고용을 안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동일한 현장에서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원·하청 간 처우 격차가 극심한 현실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 둘째, 기술 인재를 키우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조선업 전반에서 숙련 기술을 유지하고 다음 세대로 전수할 수 있는 인력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단순히 사람 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기술력 있는 인재가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교육·훈련 인프라가 필요하다.
- 셋째, 지역에 뿌리내리는 고용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노동자 고용 정책이 단기 인력 충원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노동자가 장기적으로 기술을 쌓고, 그 지역에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정주(定住) 여건을 함께 마련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 일터와 삶터가 함께 성장할 때, 진정한 지역 경제 회복이 가능하다.
- 넷째, 정부·지자체·조선사가 함께 나서야 한다. 이 문제는 시장에만 맡겨두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주요 조선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특히 조선업 밀집 지역의 지자체는 단순한 행정 지원을 넘어, 지역 고용 생태계를 설계하는 능동적 주체로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