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노동운동의 발전 방향에 관한 제언
구조적 한계를 넘어 ‘사회 공공성’ 실현 주체로 도약하기 위하여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1. 외형적 성장에도 극복되지 못한 구조적 한계
한국의 공공부문 노동운동은 지난 수년간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거듭하며 전체 노동운동의 핵심적인 축으로 자리 잡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공공부문 일자리는 2016년 약 238만 개에서 2022년 약 287만 개로 20% 이상 증가하며 민간부문의 고용 증가율을 크게 상회했다. 노동조합 조직 확대는 더욱 가파르다. 공공기관, 공무원, 교원 등 공공부문 조합원 수는 2018년 약 53만 8천 명에서 2022년 약 78만 5천 명으로 45.9%가량 급증했다. 특히 중앙정부 공공기관의 경우 노조 가입률이 70%를 상회할 정도로 강력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외형적 성장 이면에는 구조적 한계의 딜레마가 도사리고 있다. 공공기관 노동조합은 민간기업 노조와는 전혀 다른 조건에 놓여 있다. 공공부문에는 생산수단 소유를 둘러싼 자본과의 직접적인 적대 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노동조건은 기관장의 결단이 아닌 정부의 지침과 법안 등 '정치 과정'에 의해 규정된다. 요컨대 기획재정부의 총액인건비제도,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의 지침, 그리고 엄격한 경영평가는 개별 공공기관 단위 사업장의 교섭권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 기관장과 마주 앉아 임금과 노동조건을 논의하더라도, 실질적인 결정권은 ‘진짜 사장’인 정부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별노조 활동이나 파업과 같은 전통적인 단체행동이 공공부문 노동관계에서는 제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히려 파업으로 인한 대국민 공공서비스 중단은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여 노조에 대한 정치적 압박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현장의 활동가들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조합원들의 무력감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뼈아프게 직시하고 있다. 다음 어느 노조 간부의 고백은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실에서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기재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각종 지침, 총인건비제에 의해 모두 결정되죠.
예전에는 일부러 그걸 감췄어요. 밝히는 순간, 조합원들이 ‘그러면 노조가 왜 필요해? 투쟁해도 얻을 것 하나 없고 어차피 임금인상률, 복지 수준은 정해져 있잖아’라며 ‘노조 무용론’으로 흘러버릴 수 있으니 교묘하게 감췄던 거죠. 반성해야 할 부분이에요.”
2. 내부 결속력의 점진적 약화: 세대 차이와 거래적 관점의 확산
외부적인 정책 통제뿐만 아니라, 조합원 내부의 인식 변화 역시 공공기관 노동운동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최근 공공기관 노조 현장에서는 노동조합을 가치나 신념, 연대에 기초한 공동체로 인식하기보다 특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대행업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공공기관 선진화’나 ‘성과연봉제 도입’ 등 노동조건을 개악하려는 정책에 맞서 투쟁하며 권리를 복원해 낸 경험을 공유한 기성세대와,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용 환경 속에서 입사한 MZ세대 사이의 인식 차이가 매우 크다. 최근 세대에게 지금의 안정된 노동조건은 선배들의 투쟁 성과라기보다 정부와 사용자의 방침에 따른 당연한 조건으로 인식되곤 한다. 이러한 세대 간 경험 차이는 노동조합을 대하는 타산적인 태도를 촉진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최근 세대는 모든 것을 ‘거래 관계’로 해석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낸 조합비가 얼마고,
노조에서 내가 얻는 혜택이 얼마인지를 계산하기 시작했어요.
노조의 효용을 느끼지 못하면 자꾸 조합비를 낮춰달라는 요구를 하거나,
심지어 노조를 탈퇴하겠다고 말하는 직원들도 있습니다.
대놓고 ‘너네(노조 간부)가 나한테 뭘 해줄 수 있냐’라고 얘기하는 MZ들도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타산적 태도는 단위조직의 재생산 위기로 직결된다.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를 맡으려는 이들이 사라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표류하는 기관들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임원 재생산에 성공하더라도 사회연대 측면에서 대표자의 발언과 조직의 실천이 제한된다. 공공기관 노동운동이 ‘무얼 해도 정부 방침을 바꿀 수 없다면 왜 노조가 필요한가?’, ‘내가 낸 조합비만큼 노조는 무엇을 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새롭고 풍부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어렵게 진행된 양적 성장도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3. 방어적 대변자를 넘어 ‘필수공공재’ 사수의 주체로
그렇다면 공공기관 노동운동은 이 다중적인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가? 해답은 역설적이지만 조합원 개인의 임금과 복지라는 좁은 울타리를 뛰어넘는 데 있다. 자신들의 이익에 대한 방어적 대변자의 위치를 넘어, 국민의 삶을 지키는 ‘사회 공공성 실현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은 정부 정책과 직결되어 있다. 최근 의료 대란 사태가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의 무급휴가와 고용불안으로 이어지고, 탈원전과 친원전 사이의 에너지 정책 급변이 발전소 노동자들의 삶을 흔든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정부의 공공서비스 기조 및 산업정책이 곧 노사관계 그 자체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조는 조합원의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임금인상 요구를 넘어 ‘공공서비스의 질적 제고’를 투쟁의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걸로 인정받을 때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의 지위도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노동운동은 기후위기, 인구구조 변화 등 대전환의 시대에 의료, 교통, 에너지 등 필수공공재의 시장화(민영화)를 저지하고 국가 책임을 강제하는 공론화를 주도해야 한다. 면접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수도, 전기, 가스 같은 필수공공재들은 국민 생활과 생존하고도 직결되는 거잖아요.
국가가 이 필수공공재에 대해서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그건 재앙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노조가 주도해서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필수공공재는 민영화를 법으로 규제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국민은 공공기관 노조의 활동이 단순히 ‘철밥통을 지키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생존을 위한 활동’임을 명확히 인식할 때 지지를 보낸다. 공공부문 노사관계에서 성패는 파업의 파괴력이 아니라, 이러한 여론의 지지와 정치적 정당성(관념적 권력자원)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4. 중층적 교섭체계 구축과 지역사회 연대의 실질화
사회 공공성 강화를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이를 담아낼 그릇, 즉 ‘교섭체계’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실질적 사용자인 정부와 직접 교섭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양대 노총 공대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대정부 투쟁을 통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 등을 통해 노정 교섭 법제화를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대정부 교섭(중앙)과 개별 기관 교섭(현장)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업종이나 직무 특성을 중심으로 한 ‘중간 단위의 초기업 교섭’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현장에서는 이러한 중간 단위 초기업 교섭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조직과 연결망이 다양하게 구성되고 있다. 이를테면 동일·유사 업종의 소규모 공공기관 노조들이 자발적으로 ‘협의체’를 구성하거나 하나의 '소산별노조'로 뭉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정보 교류를 넘어 단체교섭 요구안을 공유하고 공동 투쟁을 기획하는 등 실질적인 운명공동체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수평적 연결망을 제도적인 초기업 교섭구조로 끌어올리는 건 상급단체의 역할이다. 노조상급단체는 이와 관련된 중장기 플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와 더불어, 공공기관 내부의 감시자로서 노동이사제를 전면 확대함과 동시에, 외부적으로는 지역 시민사회와의 호혜적 연대를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사측이 주도하는 보여주기식 사회공헌활동(CSR)의 들러리를 서는 것을 거부하고, 노조가 주체적으로 지역의 의제에 개입해야 한다. 다음 인용문에 제시된, 혁신도시로 이전한 일부 공공기관 노조의 경험은 중요한 모범이 된다.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여건 개선과 지역시민사회의 현안을 연결하여 함께 해결해나가는 창의적인 시도들이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쓰레기소각장(SRF) 투쟁을 계기로 노동조합이 단순한 공공기관 직원의 정주 여건 개선 요구를 넘어,
지역주민 및 단체와 연대하여 환경 문제 등 지역사회 전체의 의제를 주도하는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나아가 이 활동을 계기로 지지 후보를 시의원으로 당선시키는 등 노동조합이 지역 정치의 주체로 자리를 잡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지역의 교통, 환경 문제 등에 노조가 앞장서 해결책을 제시할 때, 지역시민사회는 공공기관 노조가 탄압받을 때 기꺼이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준다. 목적을 앞세우지 않은 호혜적 연대가 궁극적으로 노조의 가장 강력한 권력자원이 되는 것이다.
5. 포용적 조직화와 노동 정치의 복원
공공기관 노동운동이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아직 노조의 울타리 밖에 있는 취약 노동자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특히 전국에 800여 개가 넘지만, 조직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은 중요한 사각지대다. 규모가 영세하고 고용이 불안정한 이들을 위해 상급단체가 주도하여 지역별·업종별 초기업노조의 우산을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의 시야를 작업장 밖으로 넓혀야 한다. 훈련된 노조 활동가들이 임기를 마치고 완전히 현장 업무에 복귀하는 데 그치지 말고, 정치, 시민사회, 연구, 교육 등 다양한 사회 분야로 진출하여 공공성의 의제를 사회화하는 ‘풀뿌리 노동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
6. 맺음말
한국의 공공기관 노동운동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자신들만의 이익을 지키는 고립된 섬’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모두의 공공성을 지키는 든든한 방파제’가 될 것인가.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추가 질문인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해서 답을 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형성된 다층적 관계망을 유기적으로 엮어내고, 미조직 노동자를 포용하며, 국민의 필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정부와 대등하게 교섭하는 것. 그것이 공공기관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명확한 미래 비전이다.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관해서 어떤 답을 내놓느냐가 공공기관 노동운동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공공상생연대기금으로부터 후원받아 수행한 「공공부문 일자리 변동 및 노동조합 발전 양상 연구」 보고서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보고서 원문은 공공상생연대기금 홈페이지(https://solidarityfund.or.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노동사회』 통권 제204호 2026년 제1호 *왼쪽 출처를 클릭하여 통권 PDF 내려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