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현시기 주4일제 법제화의 한계와 문제점-(윤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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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현시기 주4일제 법제화의 한계와 문제점-(윤효원)

윤효원 274 04.17 21:00


현시기 주4일제 법제화의 한계와 문제점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올 들어 노동계 일부에서 주4일제 법제화를 내세운다.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는 노동자 수가 노동조합법을 적용 받는 노동자 수보다 적은 현실을 볼 때, 신중하지 않은 주4일제 요구가 노동시장 전반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기여하기보다는 근로시간 양극화를 부추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산업과 업종의 특성 그리고 기업의 지불 능력을 고려하여 사용자가 주도적으로 주4일제를 도입하거나 노사가 자율적으로 교섭하여 주4일제를 시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주4일제를 법률로 만들고 국가가 나서서 강제하는 것은 현재의 노동시장 상황과 노사관계 사정을 고려할 때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4일제는 주32시간제를 뜻하는가?

첫째, 원칙의 문제가 있다. 근로시간(working time)을 규제하는 원칙은 주4일제나 주5일제처럼 한 주를 기준으로 하는 날 수만 규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헌장에서 "하루 근무의 최대치와 주 근무의 최대치(maximum working day and week)에 대한 규제"를 강조한다. 이를 주4일제 요구와 연결해 본다면, 주 근무의 최대치와 하루 근무의 최대치가 몇 시간인지에 대한 명시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제50조(근로시간) ①항에서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②항에서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근로시간 규제와 관련하여 국제기준과 국내법에서 확립된 원칙에 따르자면, 주4일제 요구는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실하다. 주40시간제를 그대로 두고서 주4일제를 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주32시간제를 뜻하는 주4일제인제를 하자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둘째, '노동강도'(labor intensity)'의 문제가 있다. 근로시간을 규제한다는 것이 근로시간의 양만 규제하는 것인지, 아니면 질(노동강도)도 같이 규제하는 것인지가 그것이다. 노동자가 주5일제에서 만들어내는 '일의 양', 즉 '근로의 양'(volume of work)을 100으로 잡았을 때, 주4일제를 채택한 경우 노동자가 만들어내야 하는 근로의 가치도 근로일수의 단축과 비례하여 80으로 줄어드는가. 아니면 그대로 100을 유지하는가. 이도 아니면 90에서 타협을 보는가. 


주4일제 도입으로 근로의 양이 주5일제의 100에서 80으로 감소한다면 노동강도의 원칙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4일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근로의 양이 기존의 100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노동강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는 노동자의 심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셋째, '일의 가치'(value of work), 즉 '근로의 가치' 문제가 있다. 이는 앞서 살펴본 근로의 양과 질에 관련된 문제다. 근로의 양과 질은 근로의 가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주5일제에서 주4일제로 근로일을 하루 줄일 때,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올려 전체 근로의 양과 질에서 변화가 없게 되면 근로의 가치도 변화가 없게 된다. 이 경우 '동등 근로 가치에 대한 동등 보수'(equal remuneration for equal value of work) 원칙에 따라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임금과 처우도 달라지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게 가능할 것인가. 


반대로 노동강도를 100 그대로 유지할 경우, 근로의 가치를 줄어든 물리적 시간에 비례하여 지급할지, 아니면 이전과 동일하게 지급할지의 문제가 된다. 당연히 자본가들은 노동강도 여부에 상관 없이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노동자의 임금과 처우를 저하시키려 할 것이다. 이를 노동자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노동시장 상층에 자리하여 지불능력에 문제가 없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는 여유를 부릴 수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 중하층에 자리한 중소기업에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넷째, 제도(institutions)의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가 주4일제를 실시할 수 있을 만큼의 제도적 여건을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제도는 법률만이 아니다. 현행 법률의 집행 정도(효과적인 근로감독 등), 국가 시스템, 정부정책, 사회보장제도, 노동조합 조직률, 단체교섭 적용률, 그리고 사회적 대화의 성숙도가 그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이 미비하고 조직노동의 역량과 영향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법률을 바꾸고 국가가 나서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태도는 합법주의(legalism), 즉 법률주의에 경도된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맥락적으로 윤석열의 '노사 법치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ILO 근로시간 협약과 대한민국 실정

현 시기 주4일제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면,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하여 당장 할 일은 무엇일까. 우선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제도 마련 및 기반 확충과 관련하여 ILO 협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19년 창설 이래 ILO는 191개 협약을 노사정 3자 합의로 채택해 놓고 있다. ILO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국제노동기준' 방을 살펴보면, 근로시간과 관련하여 8개 협약을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1호 공업에서 근로시간의 규제(1919년 채택), 제14호 공업에서 주휴(1921년 채택), 제30호 상업과 사무실에서 근로시간의 규제(1930년 채택), 제47호 주40시간(1935년), 제106호 상업과 사무실에서 주휴(1957년), 제132호 유급휴일(1970년 채택), 제171호 야간근로(1990년 채택), 제175호 단시간근무(1994년 채택) 협약이 그것이다.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 우선협약(Priority Conventions), 기술협약(Technical Conventions) 등 세 가지로 나줘는 협약 범주 가운데 근로시간 협약은 기술협약으로 분류된다.  



 


근로시간 규제와 관련하여 ILO가 강조하는 8개 협약 중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비준한 것은 1935년 채택된 제47호 주40시간 협약 한 개 뿐이다. 이 협약은 이명박 정권 때인 2011년 11퉐 7일 비준되었다. 주40시간 협약을 비준한 대한민국 정부는 하루 8시간과 주 48시간을 규정한 제1호 협약의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주휴(weekly rest), 유급휴일(holidays with pay), 야간근로, 단시간근무 등 근로시간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협약의 비준은 언감생심이다. 주 48시간 협약도 비준하지 못한 대한민국 정부가 주 40시간 협약을 비준한 상황을 떻게 이해해야 할까. 

근로시간의 보편적 실질적 단축을 위한 기반부터 만들어야

내용이 받쳐주지 않는 형식은 지탱하기 어렵다. 상당수 노동자들이 법정근로시간인 주40시간제를 제대로 적용 받고 있지 못하다.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이슈 파이팅' 식으로 주4일제를 밀고 나간다면 형식과 내용의 괴리가 커지면서 결국 현재의 형식과 내용도 무너지게 된다. 


지난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만 봐도 우리나라 근로시간 제도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근로자 수가 5인 이상인 회사에서는 선거일이 공휴일로 유급휴일 처리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통계청이 2023년 3월 발표한 <2021년 기준 전국사업체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말 전국의 사업체 수는 608만개였고, 여기서 일하는 종사자 수는 2,493만명이었다. 그 중에서 종사자 수가 5인 미만인 사업체는 전체의 86.4%인 525만개였고, 거기서 일하는 종사자는 전체의 31.2%인 778만명이었다.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근로자'와 통계청 사업체조사에서 말하는 '종사자'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보아 노동자 10명 중 3명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상층과 중층과 하층으로 나눠져 있다. 지금 시점에서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하여 노동운동이 할 일은 현행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하루 8시간과 주 40시간을 노동시장 중하층에 제대로 정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주5일제도 언감생심인 사람이 다수인 상황에서 주4일제 법제화를 요구하는 것은 근로시간의 양극화를 초래하면서 이미 쪼개질 대로 쪼개진 노동시장의 파편화를 더욱 악화시키는 패착이 될 것이다. 

출처: <e노동사회> 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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