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 기업 ESG ‘실사’와 ILO 협약의 상관성 - 윤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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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 기업 ESG ‘실사’와 ILO 협약의 상관성 - 윤효원

윤효원 626 09.19 07:27


기업 ESG ‘실사’와 ILO 협약의 상관성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지난 7월 25일 유럽연합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이 발효되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은 2026년 7월 26일까지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와 관련하여 국내법을 만들 의무를 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국내외에서 '실사'(Due Diligence)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권과 환경에 대한 ‘실사’


법조계 용어인 실사로 번역하는 Due Diligence의 한국어 직역은 '적절한 주의' 또는 '적절한 노력'이다. 이 표현은 주로 기업 활동과 관련된 재무적 혹은 법률적 맥락에서 사용되며, 특정 행동을 취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필요한 조사나 검토를 신중하게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이 인수합병을 하거나 새로운 사업 투자나 거래를 할 때 실사는 필수 과정이다. 


실사는 기업 활동이나 금융과 부동산 거래에서 일종의 자발적 규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는데, 최근 들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영역에도 도입되었다. 재무 영역을 중심으로 이뤄져오던 실사가 이제 비(非)재무 영역인 인권과 환경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 발효는 하청업체를 포함한 공급사슬(supply chains)의 환경과 인권 실사가 기업의 자발적 책임에서 국가의 법률적 규제로 이행하는 시대적 특징을 보여준다.

 

그 동안 국제연합(UN)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인권과 환경에 대한 기업 실사를 국제적인 기준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 왔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11년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UNGP)을 채택하였다. 이에 따르면, 국가는 자국 내에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법적, 정책적 조치를 취할 의무를 지닌다. 그리고 기업은 자사의 사업과 활동에서 인권을 존중하고, 이를 위해 적절한 실사 절차를 마련할 책임을 지닌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과 ‘실사’


OECD는 기업이 영업 활동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예방하고 억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OECD Guidelines for Multinational Enterprises)을 만들었다. 1976년 처음 채택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정보공개, 노동권, 환경, 반부패 등의 내용을 담았다. 2011년 개정에서 인권에 관한 장이 포함되었고, 2023년 개정에서 기업 실사와 관련된 내용이 강화되었다. 


세계 경제의 발전에 따라 기업이 엄청난 자원과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고, 기업의 사업과 활동에서 여러 가지 부정적인 문제가 발생해왔다. 인권과 노동권 침해, 환경 파괴, 부패 확산, 세금 탈루, 독점을 통한 공정경쟁 방해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예방하고 시정하기 위해 UN, ILO, OECD 등 국제기구는 다양한 국제기준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들 국제기준이 기업에 미치는 강제력은 크지 않았다. 


기업으로 하여금 국제기준을 이행하게 만드는 데서 CSR이라는 이름으로 자발성에 기대는 시도가 실패하면서, 인권과 환경에 대한 실사를 국제기준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이를 국제법으로 의무화하려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그 대표적인 시도가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이라 할 수 있다. 



‘실사’와 관련된 ILO 기준 


국제기구 중에서 실사를 국제기준의 영역에 응용하는데 가장 앞장서온 곳은 OECD다. 2018년 5월 31일 '기업 책임경영 실사 지침'(OECD Due Diligence Guidance for Responsible Business Conduct)을 채택했다. 이를 바탕으로 광물산업, 봉제/신발산업, 농업, 금융산업 등 모두 6개의 부분별 실사 지침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OECD 봉제/신발산업의 책임 있는 공급사슬을 위한 지침'을 보면 실사의 수단과 방법으로 국제노동기구(ILO)가 채택한 협약과 권고를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봉제/신발산업 지침'은 리스크와 관련된 노동 문제를 (1)아동노동 (2)폭력과 괴롭힘 (3)강제노동 (4)근로시간 (5)안전보건 (6)노동조합과 단체교섭 (7)임금으로 분류한다. 이와 관련된 리스크를 확인하고 평가하는 기준으로 ILO 협약과 권고를 제시한다. 


[표] 'OECD 봉제/신발산업 실사 지침'에서 강조하는 ILO 협약


 

근로시간과 관련해서는 하루 8시간 주 48시간을 규정한 협약 1호와 주 40시간을 규정한 47호를 강조한다. 폭력 및 괴롭힘과 관련해서는 남녀 동등 보수 협약 100호, 고용 및 직업에서의 차별금지 협약 111호, 모성보호 협약 183호를 강조한다. 안전보건과 관련해서는 안전보건 협약 155호, 안전보건 증진체계 협약 187호, 화학물질 협약 170호를 강조한다. 


노동조합 및 단체교섭과 관련해서는 결사의 자유 협약 87호, 단체교섭권 협약 98호, 노동자 대표 보호 협약 135호를 강조한다. 실사와 관련된 OECD 지침은 ILO 협약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기업의 노동문제 실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업 인권·환경 실사 활동의 토대


1919년 출범 이래 지금까지 ILO는 모두 191개의 협약과 208개의 권고를 채택해놓고 있다. 협약은 기본협약 10개, 노동행정 우선 협약 4개, 기술협약 177개로 나뉜다. OECD 실사 지침은 우리나라 노사정에 익숙한 기본협약만이 아니라 근로시간과 임금 등 기술협약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인권과 환경 문제의 실사와 관련하여 유엔과 OECD가 다양한 국제기준과 지침을 만들어 왔고, 그 성과를 이어받아 지난 7월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이 발효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유엔 조약이나 ILO 협약으로 인권과 환경 실사를 위한 국제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유엔과 OECD의 기준과 지침은 기업 실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ILO 협약과 권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 이 글은 지난 8월 12일 매일노동뉴스에 실린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 


출처: <e노동사회> 202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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