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노동학회 여름캠프 참관기

노동사회

한국산업노동학회 여름캠프 참관기

구도희 0 6,410 2015.09.04 04:53
 
앞선 이들과 뒤따르는 이들의 학문 교류. 그리고 세대교체의 신호탄. 지난 7월24~25일 이틀간 전주 한옥마을 전통문화연수원에서 열린 한국산업노동학회의 제4회 여름캠프에서 받은 인상이다. 
 
여름캠프, 노동 연구자 재생산과 연구 활성화를 꾀하다
 
(사진: 7월24일 전주 전통문화연수원에서 열린 한국산업노동학회 제4회 여름캠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산업노동학회(회장 박태주)는 노동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지향하고, 노동관련 연구의 일상화·지속화를 가능하게 하는 중심적인 매개체를 지향하겠다는 등의 취지 아래 지난 1994년 출범했다. 주요 활동으로는 산업노동 관련 연구자들의 상호교류를 기반으로 한 정기학술회의 개최, 학술지『산업노동연구』(현재 연 3회 발간) 발행 등이 있다. 
그리고 2012년부터는 심화되는 노동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를 연구하는 노동연구자 층이 갈수록 얇아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대학원생 등 신진 연구자들을 위한 ‘노동연구자 여름캠프’를 매년 여름마다 진행해 오고 있다. 
이번 제4회 여름캠프 역시 신진 연구자 상호 간의 교류, 선배 연구자들과의 소통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노동 연구자들의 재생산과 노동연구 활성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취지로 열렸다. 캠프의 주요 프로그램은 ‘신진 연구자 논문발표’, ‘선배 노동연구자와의 대화’ 등이었다.
올해 캠프의 참석 인원은 총 50여 명에 달했다. 기존 학회 임원과 선배 연구자들은 물론, 신진 연구자 및 필자와 같은 노동현장 및 단체의 활동가, 전북지역의 노동 관련 인사 등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이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참석자 수가 예년보다 많은데다 전체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20~30대의 신진 연구자였고, 여성 노동연구자들이 전체 구성원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해 그 의의를 더했다는 것이 학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해고노동자 건강‧생활임금제까지 다채로운 주제 논의돼  
양일간 진행된 캠프에서 발표된 논문은 총 8편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건강 문제, 생활임금제와 같은 최근의 사회 이슈를 다룬 주제부터 생산체제 문제와 노동운동의 방향에 관한 주제까지 노동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흥미로워할 다양한 주제가 논의됐다. 
 
이번 여름캠프를 기획한 김종진 한국산업노동학회 학술이사(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도 발표 주제가 다양해진 것이 올해 캠프의 특징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기존 산업노동과 조직문제의 전통 주제들인 노동정책, 노사관계, 노동운동, 노동시장 영역만이 아니라, 산업안전과 보건 영역의 주제가 오랜만에 공유되고 논의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노동건강 분야도 단순히 건강과 관련한 의제가 아닌, 쌍용자동차 사업장의 해고자와 복직자의 건강문제에 초점을 두었다든지 혹은 노동자의 출결(프리젠티즘)과 병결 문제를 비정규직의 고용형태에 초점을 둠으로써 산업노동영역의 주요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주었다고 김종진 이사는 평가했다.  
 
“다시 주목받고 있는 노동자 건강 문제”
 
(사진: 여름캠프의 참석자들이 신진 연구자의 논문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실제 캠프에서 발표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자, 정규직 자동차공장 노동자의 건강 비교’ 논문은 연구팀이 금속노동조합 소속 쌍용자동차 지부와 공동으로 진행한 ‘2015 함께 살자 희망연구: 쌍용자동차 2009년 해고자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연구는 쌍용차 해고자, 복직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상태 및 2009년 해고 이후 건강상태의 변화․사회경제적 수준의 변화․인식, 해고 관련 낙인․차별경험을 알아보기 위한 것으로, 모든 건강문제에서 정규직 자동차공장 노동자보다 복직자가, 복직자보다 해고자가 유병률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에 토론을 맡은 이문호 워크인연구소 소장은 “노동자 건강 문제는 고용의 유연화, 양극화가 심해진 상황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주제로서, 노조운동이 다시 힘을 받을 계기를 마련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뜻 깊은 주제”라고 평가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고용형태가 프리젠티즘(아파도 참고 직장에 나와 일하는 것을 일컬음)과 병결에 미치는 영향’ 발표도 이목을 끌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따른 비정규 고용이 만연한 상황에서 이 연구는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특히 이 연구는 기존에 국내 비정규 노동과 건강연구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병결과 프리젠티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높은 고용불안 등의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이로 인해 비정규 노동자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 해당 연구 결과에서도 정규직에 비해 간접고용, 기본급이 없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프리젠티즘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고용, 임금소득, 노사관계 등 기존의 구조적 차별뿐만 아니라 건강 문제에 있어서도 차별을 받고 있음을 방증하는 결과다. 이 같은 연구결과로 말미암아 비정규 노동 문제의 인식이 폭이 넓어지고,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보다 활성화되길 기대해본다.
 
신진의 문제의식에 선배의 경험을 더하다
여름캠프에서 발표된 모든 논문들은 완성된 형태는 아니었다. 논문 발표에 앞서 “결혼이주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한다”고 운을 뗀 한 신진 연구자의 말과 한 논문의 각주에 표기된 “이 글은 학위논문 연구계획서 용도로 작성되었다”는 문구처럼, 해당 프로그램은 신진 연구자들이 일종의 논문 초안을 제시하고 선배 연구자들은 논문 작성에 참고가 될 만한 의견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에 발표 뒤 명목은 ‘토론’ 시간이었지만 선배 연구자들은 마치 논문 지도교수처럼 연구 주제의 독창성부터 연구가설에 대한 지적, 분석방법에 대한 조언까지 후배들에 대한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선배 연구자들은 사전에 해당 발표문을 전달받고 꼼꼼하게 살펴보았다고 하며, 일부 연구자들은 따로 작성한 토론문을 신진 연구자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번 캠프에 대해 ‘앞선 이들과 뒤따르는 이들의 학문 교류’라는 인상을 받은 까닭이다. 선배 연구자들의 노고를 바탕으로 신진 연구자들이 머지않아 훌륭한 연구 결과물들을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시간이었다. 
 
노동변호사와 노동연구자들과의 대화
 
(사진: '선배 노동연구자와의 대화'에 초대된 김선수 변호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틀째인 25일에는 전체 프로그램의 두 축 중 하나인 ‘선배 노동연구자와의 대화’ 순서가 이어졌다. 신진 연구자들이 평소에 마주하기 힘든 선배를 모시자는 취지에 따라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가 초청됐다. 김선수 변호사는 27년간 노동자 변호의 한길을 걸어온 대표적인 ‘노동변호사’다. △유성컨트리클럽 캐디노조 설립신고 행정소송, △나우정밀 등 직장폐쇄 사건, △공무원노조 합법화 투쟁, △한국외대 노조탄압 사건, △콜트콜텍 노동자 복직투쟁, △경기대 비정규직 해고 사건 등 굵직하고 중요한 노동사건을 맡은 바 있다. 
김선수 변호사는 ‘노동, 산, 여민(黎民)’을 키워드로 90분가량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법률가로서 노동운동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다”는 김선수 변호사는『전태일 평전』의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일, 1988년에 설립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창립 회원이자 회장을 맡아 활동했던 일화, 최근 노동사건 판례경향에 대한 비판적 의견 등을 밝혀 관심을 집중시켰다. 
특히 소송을 통해 노동문제를 해결하려는 현상과 관련해 김선수 변호사는 “‘노동의 사법화’가 심해진 듯하다”면서 “노동의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사법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운동이 제 역할을 못해서 그런 측면이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노동소송 관련한 정책적 대안으로 △참심형(일반 국민인 참심원이 직업법관과 재판부의 일원으로 재판에 참여하여 법관과 함께 동등한 권한으로 유‧무죄와 양형판단을 하는 제도) 노동법원 도입,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대표당사자 집단소송제도 도입, △대법원 심리불속행 제도 도입 등을 들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도 참석자들은 많은 질문을 쏟아내며 김선수 변호사의 삶의 궤적을 좇았다. 일부 질문은 시간 관계상 점심식사 자리에서 받아야 했을 정도였다. 
 
연구자들의 세대교체, “희망을 보았다”
이번 여름캠프에서는 학술적인 행사뿐만 아니라 다례(茶禮) 시간을 통해 함께 차 마시는 예절을 배우고, 판소리 ‘춘향가’를 따라 부르며,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하는 전주 한옥마을 관광 등 우리의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참가자들의 많은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신진 연구자들과 선배 연구자들은 학문 교류뿐만 아니라, 감정의 교류를 확대해 나갔다. 
“민변도 신입회원들이 늘어 세대교체가 되고 있는 듯한데, 노동 관련 연구자들도 정상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희망을 보았다.” 여름캠프를 마치고 김선수 변호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다. 산업노동학회는 오는 10월31일 서울 동덕여대(시간 및 장소는 변경될 수 있음)에서 가을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다시금 앞선 이들과 뒤따르는 이들의 교류의 장이 설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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