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과 모피아, 신자유주의 정책의 한국적 어댑터

노동사회

김&장과 모피아, 신자유주의 정책의 한국적 어댑터

편집국 0 4,881 2013.05.22 09:43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가 고수익을 위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로비능력이다. 경제정책 결정권을 쥔 정·관계 유력인사와 통하는 네트워크를 얼마나 잘 갖추었느냐에 따라 투기의 성패가 갈린다고도 말할 수 있다. 투자대상 선정에서 자금회수 단계에 이르기까지, 투기자본은 정부 관료와 긴밀한 ‘협조’하에 ‘딜’을 추진한다. 예상 수익 규모가 클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기 마련이다. 경쟁자를 제치고 큰거래를 성사하는 것 역시 얼마나 확실한 ‘끈’을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니 큰돈을 벌기위해서는 더 한층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일단 투자가 이뤄지면 최대한 짧은 기간에 차익을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펀드 매니저들도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다. 이때에도 관건은 현행법과 관행의 장애를 얼마나 신속하게 무력화시키고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가 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투기자본에 있어 로비력이란 투기자본의 ‘경쟁력’ 자체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투기자본은 관료 집단과의 밀월 관계 형성에 거의 사활적으로 매달린다. 물론 방법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전직 관료들을 직접 영입할 수도 있고,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을 통해서 고위직 인사의 연결망을 확보할 수도 있다. 한국에 들어온 론스타는 외환은행에 투자하면서 두 번째 방법에 의존했다. 그 파트너는 업계에서 국내 1위를 달리는 김&장 법률사무소와 회계법인 삼정 KPMG 였다. 그리고 론스타가 이들과 자문계약을 맺을 당시 전직 부총리인 이헌재와 진념이 각각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투기자본은 고위공무원을 좋아해~

여기서 잠깐 칼라일 펀드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다. 같은 미국계 펀드로 론스타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유명한 투기자본인 칼라일은 일찍이 한미은행에 투자해서 7천억원의 차익을 남긴 바 있다. 이 칼라일 펀드의 임원진 구성을 보면 투기자본의 운용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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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단을 보고 누가 이것이 일개 투자회사의 임원진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미국 국무회의에 다가 몇 개의 정상회의를 겹쳐 놓은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막강한 임원진에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칼라일에는 아버지 부시만이 아니라 부시 현 미국 대통령도 사장으로 몸담은 적이 있고, 오사마 빈 라덴 가문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왕족들도 참여하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 전직 국무장관·국방장관·증권거래위원회의장·연방통신위원회의장 등을 영입한 칼라일은 수시로 세대를 넘나드는 ‘확대 국무회의’를 소집해서 미국 정부의 예산집행과 정책방향을 체크하고, 그에 따라 최고의 수익률이 보장되는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칼라일은 주로 미국 내 군수업체와 석유관련 회사들에 투자해서 돈벌이를 해왔다. 9·11테러 직후에는 칼라일이 보유한 방위산업체 주식이 급등하여 ‘각료’들 모두가 돈방석에 앉기도 했다. 물론 칼라일 고문인 아버지 부시는 굳이 대통령인 아들에게 로비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주말 가족모임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이들의 능력은 2000년 6월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과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해 6월, 제주도에서는 부시 전 대통령이 참여한 칼라일의 아시아지역 고문단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는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과 아난드 파냐라춘 태국 전 총리를 비롯하여 칼라일의 한국 고문인 박태준 당시 국무총리도 참석했다. 조지 부시는 김종필, 이헌재 등 당시 경제 라인의 핵심 인사들을 직접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눈여겨 볼 것은 이 일련의 회동이 있은 직후 외신이 먼저 서울 발 기사로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 소식을 보도한 사실이다.

2000년 3월에만 해도 칼라일은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한미은행 인수를 거절당했다. 론스타와 마찬가지로 칼라일이 금융기관이 아닌 일개 사모펀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법상 국내 금융기관의 대주주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시를 비롯한 막강한 칼라일의 ‘국무위원들’의 회동 앞에서는 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칼라일 한국 책임자였던 김병주는 나중에 당시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한미은행 인수를 위해) 한국 경제의 트로이카 3명 모두의 동의를 얻어 냈다.”

여기서 트로이카는 다름 아닌 김병주의 장인인 박태준 전 총리와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원장, 재정경제부 이종구 금융정책국장을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김병주는 칼라일이 미국에서 그런 것처럼 한미은행 인수를 위해서 특별히 로비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투기자본 사랑 독차지하는 김&장의 비결, ‘로비력’

투기자본이 모든 국가의 인맥을 늘 준비해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투기자본은 투자 대상국이 정해지면 그 나라의 고위층 인사들과 닿을 수 있는 끈을 손에 넣기 위해 상대국의 가장 유력한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을 고용한다. 한국에 들어온 투기자본들은 거의 예외 없이 법무법인 김&장을 통했는데, 론스타도 마찬가지였다. 

김&장 법률사무소는 국내 1위의 로펌으로 막강한 로비력을 자랑한다. 국내에 진출한 투기자본은 거의 예외 없이 김&장에 일을 맡기고 있다. 기업자문 역할을 하는 법무법인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법률대리 능력은 검찰, 국세청, 재경부, 금감위, 감사원 공정거래위 같은 힘 있는 국가기구에 얼마나 빨리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느냐에 따라 평가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법무법인은 로비력을 배가하기 위해 국가기구의 전직 고위관료들을 영입하는 데에서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 때문에 김&장 법률사무소는 힘 있는 국가기관의 퇴직 공무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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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법상 자격이 없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길은 부실은행으로 만들어서 예외조항에 꿰맞추는 것뿐이었다. 감사원 조사에서 확인된 것처럼 이 작업의 세부 계획은 변양호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김석동 금감위 국장, 이강원 외환은행장, 주형환 청와대행정관 등이 참여한 이른바 ‘비밀 10인 회의’에서 결정되었다. 또한 이들 유력 인사들이 외환은행의 불법적인 매각작업을 앞장서 실행에 옮겼다.

론스타의 은행인수를 위해 관련 당국자들이 발벗고 뛰면서 행정서비스를 제공한 것. 이것이 이른바 ‘론스타게이트’의 실체다. 그리고 론스타를 대리하여 이 작업을 처리한 것으로 알려진 김&장에는 당시 경제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이헌재 전 부총리가 고문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헌재 전 부총리야말로 “론스타 게이트의 몸통”이라는 주장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실제로 론스타 게이트에는 이헌재를 정점으로 하는 후배·동료 인맥을 일컫는 ‘이헌재 사단’이 총력 동원되었다. 

파워엘리트 집단 모피아의 ‘반공익적’ 힘!

언젠가 심상정 의원은 한 토론회에서 “국회 재경위는 당별로 나뉘지 않는다. ‘모피아’ 출신과 ‘비모피아’ 출신이 있을 뿐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모피아(MOFIA)는 옛 재무부를 뜻하는 MOF와 MAFIA(마피아)의 합성어다. 국가기구의 권한을 이용해 선·후배·동료 사이에 개인적 이익을 챙겨주고 낙하산 인사를 일삼고 뇌물스캔들을 일으키는 일본 대장성 관료집단이 마피아 범죄조직과 비슷하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모피아’에서는 옛 재무부내에서도 핵심부서라는 이재국(현 금융정책국) 출신들이 주요 인물들로 거론된다. 이들은 재경부를 퇴직한 이후에도 금융권의 주요 요직을 독차지하는 것은 물론,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의 고문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투기자본의 편의를 봐주고 거액의 돈을 벌어왔다. “30년간 번 돈보다 로펌에 와서 3년간 번 돈이 더 많다”는 어느 전직 관료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이들 엘리트 관료 서클의 구성원들은 그 관계를 통해 특권적 이득을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우리사회의 실질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거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현재 금융권에서 4대 금융단체장과 대형 금융기관장 등 주요 포스트를 재무관료 출신과 그들이 앞세운 친 모피아 성향의 민간인이 장악한 상태다.

고위 공직자들이 이처럼 쉽게 옮길 수 있는 것은 제도적 허점 때문이다. 법 규정은 4급 이상 공무원이 퇴직 직전 3년 동안 근무한 부서의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 분야에서 퇴직 뒤 2년간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령에선 대상기업을 “자본금 50억원 이상, 외형 거래액 연간 150억원 이상”으로 한정하고 있어, 로펌과 회계법인은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본 대로 론스타 게이트를 통해 김&장과 모피아라는 엘리트집단의 몇몇 개인이 투기자본에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론스타와 더불어 사리사욕을 챙겼다. 이처럼 우리사회의 이른바 ‘파워 엘리트’ 집단들이야말로 투기자본과 공생관계를 형성하며 노동자들의 삶을 망치고 있는 반공익적 집단이다. 그들이 국가의 장래와 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들먹일 때조차 그것은 대부분 특권 엘리트집단의 이익이거나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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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 없어도 신자유주의 정책은 돌아간다 

김&장과 모피아 집단의 폭로에 초점을 두다보니 예기치 않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을 듯하여, 한 가지 덧붙일 말이 있다. 론스타 같은 투기자본의 ‘먹튀’를 단지 재경부와 금감위에 퍼진 ‘모피아 라인’에 의한 법의 무력화 사태로만 봐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이런 시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그들만 제외하면 문제가 사라지지 않을까하는 착각을 조장할 수도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은 관료 집단의 특정 분파에 의해서만 지지받고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문제는 자본가집단 전체와 정부관료와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수용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이윤의 극대화를 앞세워 인간의 삶을 희생하는 시스템  그 자체에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