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의 최근 동향은 최저임금 인하·동결부터 최대 63% 인상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저임금을 인하하거나 동결한 대표적 사례는 그리스로, 2008년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전환되어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스는 2010년, 2011년 두 해 연속 최저임금을 동결했고, 2012년은 22%로 삭감하였다. 반면 가장 높은 인상률을 보여준 국가는 올해 63% 인상을 결정한 오만이다. 그러나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그리스나 오일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오만은 예외적 사례이며, 대다수의 국가는 안정적 인상률(2~4%) 혹은 다소 높은 인상률(10~15%)을 보이고 있다.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의 40% 이상 수준을 유지하는 국가들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임금인상률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는 2012년 7월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2% 인상했다. 프랑스는 물가인상률이 최저임금 인상률에 자동 적용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특별한 경우 정부가 추가 인상을 결정할 수 있다. 2012년의 2% 인상은 물가인상률 1.4%에 정책적 인상 0.6%를 추가한 것이다. 프랑스의 최저임금 수준은 평균임금 대비 50% 내외로, 2% 인상은 이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10% 이상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보이는 국가들은 주로 동아시아 국가들이다. 이 국가들이 높은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한 이유는 낮은 최저임금 수준을 높이려는 정책 목표와 동시에 임금 인상을 통해 수출 의존형 경제를 내수 중심 경제로 전환하려는 정책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는 미국과 영국, 중국의 최저임금 동향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들 3개국의 최저임금 동향을 소개하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일반적인 동향 외에도 이들 국가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낮은 최저임금 수준을 유지해 왔으나, 최근 대통령이 이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하면서 최저임금과 관련된 논쟁이 활성화되었다. 영국은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나라로 1990년대 초반 최저임금이 시장의 기능을 교란시켜 부정적 효과만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최저임금제를 폐지했다가, 1990년대 후반 재도입하면서 오히려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임금 인상을 통해 수출 주도 경제를 내수 주도 경제로 전환하려는 동아시아 국가의 대표적 사례다.
오바마 미 대통령의 최저임금 인상안과 고용효과 논쟁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3년 신년 국정연설에서 최저임금을 9달러로 인상할 것을 요청하면서, 1990년대 이후 미국 내 노동경제학에서 지속적으로 논쟁을 벌인 최저임금 고용효과에 대한 논란이 다시 촉발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최저임금 노동자가 “풀타임으로 일해서 1년간 버는 돈이 14,500달러에 불과”하다며, 이는 EITC 등 미국이 갖춰 온 조세를 통한 재분배 정책의 혜택을 받더라도 두 아이를 가진 가족은 빈곤선 이하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소득임을 강조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이 식료품점과 급식소(푸드뱅크)의 경계, 입주와 퇴거의 경계, 근근이 살아가는 삶과 성공의 발판이 되는 삶의 경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누구나 정규 노동시간만 일하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선언하고, 연방최저임금을 시간당 9달러로 인상할 것을 제안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청한 것은 미국의 최저임금이 국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저임금 제도는 연방최저임금과 주(洲)최저임금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연방최저임금은 미국 전역에 적용되며, 각 주는 연방최저임금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별도의 최저임금을 규정하고 있다. 2011년 1월1일 기준, 주 최저임금이 없는 곳이 5개 지역, 연방최저임금보다 낮은 곳이 5개 지역, 연방정부와 같은 곳이 26개 지역, 연방정부보다 높은 곳이 17개 지역이다.
미국의 연방최저임금은 매년 노사정 합의를 통해 정하는 우리와는 달리 연방의회, 즉 미국회가 결정하며, 결정주기는 비정기적이다. 가장 최근의 연방최저임금 인상은 2007년 법 개정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는 1997년 이후 10년만의 인상이었다. 2007년 민주당은 이전 연방최저임금 5.15달러를 3단계에 걸쳐 2009년까지 7.25달러로 인상하는 ‘공정최저임금법안’을 통과시켰고, 2011년 미국의 최저임금은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28.4% 수준이었다.
대통령 국정연설 이후 민주당의 톰 하킨(Tom Harkin) 상원의원과 조지 밀러(George Miller) 하원의원이 2013년 공정최저임금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연방최저임금을 향후 3년 동안 매년 0.95달러씩 인상하고 2015년 이후에는 물가와 연동해 자동 인상토록 하자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시간당 9달러로 인상할 경우 최저임금 수준은 2011년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35% 수준이 된다. 미국에서 전국적 차원의 최저임금제도가 최초 도입된 것은 1938년 제정된 공정노동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 제6조가 최저임금 보장을 규정하면서부터다. 도입 당시 최저임금은 제조업 노동자 평균임금의 40% 수준(0.25달러)이었으며, 실질 최저임금은 1968년 이후 계속해서 하락해 왔다. 미국의 최저임금이 1968년 수준의 실질 구매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10.56달러 수준까지 인상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최저임금 인상 국정연설과 민주당의 법안 발의 이후,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대표적 경제학자 데이비드 노이마크 어바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UC 어바인) 교수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최저임금을 올리면 숙련도가 제일 떨어지는 근로자들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반면, 그 혜택은 빈곤과는 제일 거리가 먼 가정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해 최저임금 경제효과 논쟁이 다시 벌어졌다. 노이마크 교수는 2007년 발표한 ‘최저임금과 고용’(Minimum Wages and Employment)이라는 논문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악영향을 준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반면 최저임금의 고용효과에 대한 주류 경제학의 입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표적 논자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자, 오바마 대통령 최측근인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다. 그는 1994년에 데이비드 카드와 함께 최저임금이 오른 뉴저지 주와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은 펜실베이아 주의 패스트푸드점 고용 변화에 대한 비교 연구(Minimum Wages and Employment: A Case Study of the Fast-Food Industry in New Jersey and Pennsylvania)를 통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감소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크루거와 카드의 논문 이후 이와 유사한 실증연구들이 다수 진행되었는데, 존 스미트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실질적 영향을 주지 못하는 이유’(Why Does the Minimum Wage Have No Discernible Effect on Employment?)라는 논문에서 2000년 이후 관련 문헌을 검토한 결과, 대부분의 실증연구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고 분석하였다.
이처럼 최근 미국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연구결과가 보다 빈번하지만, 그럼에도 최저임금과 고용감소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맺어졌다고 보긴 어렵다.
최저임금의 고용효과, 상반되는 연구결과들
한국의 경우,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은 줄곧 현재의 높은 최저임금 수준은 저임근로자 생계보호라는 최저임금제의 당초 목적을 벗어나, 오히려 노동시장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등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지속적 동결을 통해 대폭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 제도가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 고용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면 인상률 결정에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중함은 노동시장 현실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한국 노동시장을 대상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실증연구 역시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반된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 연구로는 정진호(「최저임금의 고용효과」, 2008)와 남성일(2008)이 있고,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와 상관없다고 결론을 내린 연구로는 김유선(2004), 이시균(2007), 이병희(2008), 안태현(2009), 김주영(2011) 등이 있다.
그런데, 정진호(2008)는 최저임금 인상이 청소년층 및 고령층의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반면, 25~54세 연령계층에서는 오히려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 경우 최저임금 인상이 청소년층과 고령층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내릴 수 있지만, 반대로 주요 경제활동 계층(25~54세)이 이전까지의 저임금으로 인해 청소년층과 고령층이 주로 취업하던 노동시장에까지 진입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 주 취업 계층에 변화가 왔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남성일(2008)은 감시단속 노동자 중 수도권 아파트 경비노동자만을 대상으로 분석하였는데,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고용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는 임금 인상뿐만 아니라 감시카메라와 보안기술 발달 등 기술 발전의 영향 역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두 연구 결과 모두 일부 계층 또는 일부 직종에 한정된 연구였다. 반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실증연구는 전체 노동시장을 대상으로 한 경우와 부문 노동시장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모두 존재하고 통시적 연구와 공시적 연구 모두 존재해, 연구의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에서 더 높은 신빙성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일부 부정적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감소시킨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최저임금 인상이 곧 고용 감소를 가져올 것이라고 단정하기에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최저임금제도의 도입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여전히 낮은 수준을 보이는 최저임금의 지속적 인상이 필요하며, 인상으로 인해 일부 계층 또는 직종에서 부정적 효과가 예상된다면 이를 보완할 고용보호조치나 취업촉진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베이징 컨센서스’의 한 축으로서 최저임금 인상
중국 최저임금제도는 우리와 달리 중앙정부 차원의 최저임금이 존재하지 않는다. 최저임금제도의 기본 모델은 중앙정부가 규정하지만, 결정은 사실상 지방정부가 한다. 성, 자치구, 직할시 등 지방정부가 노조, 기업연합회 등과 함께 수행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최저임금 조정방안을 결정해 중앙정부 노동보장부에 제출하면, 노동보장부가 전국총공회와 중국기업연합회의 의견을 수렴하여 14일 이내 지방정부 안에 대해 수정 의견을 제출하고, 수정 의견이 없을 경우 원안이 해당 지역 최저임금으로 채택된다. 이 같은 제도 설계로 인해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 수준이 명목임금 기준으로 2배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지역 간 격차가 크고, 동일 지역 내에서도 직종이나 지역에 따라 상이한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중국에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중국은 1980년대 이전부터 최저임금 시행을 모색했으나 법률이 정비돼 공식화된 것은 1993년 노동부가 「기업최저임금규정」을 공포한 이후다. 이후 1994년 노동법을 개정해 최저임금제의 법적 근거를 갖추었으나, 2004년 이전까지는 최저임금 조정 시기를 명시하지 않다가, 2004년 법 개정을 통해 최소 2년에 1회 이상 조정을 의무화하였다.
최저임금 인상폭을 살펴보면, 1994년부터 2004년까지는 매해 평균 8% 상승을 보였으며, 2004년에서 2006년까지 매해 평균 14% 증가율을 보였다. 최근의 추세 역시 높은 인상률을 유지하고 있는데, 2012년과 2013년 최저임금을 인상한 지역의 인상폭은 평균 16.9%에 달한다. 특히, 저발전 지역의 최저임금 상승률이 발전된 지역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가장 높은 인상률을 보인 지역은 장시 지역으로 평균 45.1% 최저임금을 인상하였다. 저발전 지역의 높은 인상률은 한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중국은 도농 간 소득격차와 저소득 계층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다수 지역이 도시노동자 평균임금의 40% 이상에 도달할 때까지 저발전 지역의 임금 인상률을 다른 지역보다 높게 유지할 계획이다.
이처럼 높은 최저임금 인상률은 중국의 경제 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그 동안 중국의 고속 성장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외경제 성장(수출)이 큰 역할을 해 왔으나,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이래 수출 부진에 따른 성장률 하락으로 주춤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수출에 의존하는 성장방식에 의문을 품고 경제 정책의 핵심을 내수 확대로 전환하였다. 2006년 3월 ‘제11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규획 강요’ 문건을 채택하면서 내수 확대를 중장기 국정과제로 공식 채택하였고, 이어 2011년 3월 채택한 ‘제12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규획 강요’에서도 내수 확대를 성장 전략의 주요 축으로 설정하고 있다.
중국의 내수 확대 전략은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를 늘리는 공급 확대보다는 가처분 소득을 늘려 민간 소비를 늘리는 수요 확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수요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득재분배 정책이 중요하다. ‘베이징 컨센서스’라고도 불리는 중국의 소득재분배 정책은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가계로의 소득과 부의 재분배를 늘리는 것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2차 재분배(조세, 공기업 소득의 민간으로의 재분배)보다는 민간 내부의 재분배, 즉 기업에서 가계로의 재분배인 노동시장 소득 향상(임금인상)을 더 중시한다.
따라서 ‘임금배증 계획’과 높은 최저임금 인상은 중국의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의 중요한 정책 수단이다. 임금배증 계획이란 2015년까지 노동자 평균임금을 2010년 평균임금의 2배 수준으로 인상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임금배증 계획의 핵심 정책 수단으로 향후 5년간 매년 13% 이상의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전국 평균임금을 매해 15% 수준 인상하여 임금배증 계획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각국의 경제전략 변화와 높은 최저임금 인상률
이처럼 수출에서 소비 중심의 내수 전략으로의 선회는 비단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태국은 내수 증진을 위해 인프라 투자 확대와 더불어 2013년 최저임금을 35% 인상하여 노동소득을 향상시킨다는 계획이고, 필리핀도 금리 인하, 인프라 투자 확대와 더불어 최저임금을 30% 인상할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내수 부양 정책이 약하다고 평가되는 인도네시아도 2013년 중 최저임금을 평균 18% 인상할 예정이며, 말레이시아는 가처분소득 증가를 위해 저소득층 지원, 공무원 임금 인상 정책과 더불어 최초로 최저임금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경제정책 선회가 어떤 효과를 거둘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며,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러한 정책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대외 환경 변화에 취약한 수출 주도 경제에서 내수 기반을 확대하는 경제 정책으로의 선회와, 이를 위한 적극적 소득재분배 개선 정책의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우리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최근 산업연구원이 발간한 「한국경제의 가계와 기업 간 소득성장 불균형 문제」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가계와 기업의 성장 불균형이 커지고 있다. 가계와 기업의 가처분소득은 외환위기 이전에는 서로 비슷한 증가세를 보였으나, 2000년 이후 기업의 소득은 두 배 증가한 데 반해 가계소득은 4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하였다. 쉽게 말하자면 기업은 돈을 벌지만 국민들 소득은 늘지 않았다는 말인데, 그 결과 한국의 경제성장 대비 가계소득 부진은 OECD 중 가장 열악한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그림1] 참조).
가계소득 감소는 민간소비 위축, 즉 내수 위축으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이 발간한 「구조적 소비제약 요인 및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대외거래의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내수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위축되면 국내경제가 해외충격에 취약해지면서 거시경제 변수의 변동성이 확대될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그림2]는 40개 주요국의 내수비중과 세계경기와의 상관계수를 나타낸 것인데, 내수 비중이 높을수록 대외 경제 침체의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그림3] 참조).
이 보고서는 또한 최근 경기 부진이 성장과 소득의 괴리 및 분배구조의 악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진단한다.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으로 소득이 집중될수록 경제 전체의 소비는 감소하는데, 소득양극화 심화로 인한 민간소비의 위축은 그 자체로 경제성장률을 하락시킬 뿐만 아니라 거시경제의 변동성을 확대시키고 장기적인 성장잠재력 약화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를 종합하면, 내수 기반 확대는 양적으로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는 대외 경제 의존성과 취약성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며, 내수 확대를 위해서는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보다는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은 앞서 살펴본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이 임금 인상과 소득양극화 해소 정책을 통해 수출 주도 경제에서 소비 주도 경제로 전환하려고 하는 시도가 갖는 함의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전체 소득 총량을 늘리는 것보다는 저소득층 소득 증대를 통한 소득 격차 축소가 사회적 갈등 해소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에 있어서도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이러한 정책 목표를 이루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다.
신자유주의 종주국 영국의 최저임금제 재도입
마지막으로 살펴볼 영국은 최저임금제를 폐지했다가 재도입한 경우다. 1993년 메이어 정부(보수당)는 최저임금을 결정하던 임금심의회를 폐지하였다. 폐지의 주요 사유는 첫째, 임금심의회 결정에 영향을 받는 대상노동자가 빈곤층이 아니며, 둘째, 임금심의회 최저임금액 결정이 대상산업의 고용을 감소시켰고, 셋째, 강제적 임금결정기구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처 정부 이후 줄곧 유지된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에 따른 소득불균형 확대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1998년 블레어 정부는 전국최저임금법을 다시 제정하여 최저임금제도를 부활시키고 이를 1999년부터 실시하였다. 재도입된 최저임금제는 지속적으로 보완 강화되었는데, 대표적으로 2009년부터 시행된 「2008년 고용법」(Employment Act 2008)은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관리 감독을 대폭 강화하였다. 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조사 감독권한의 강화, 체불임금 산정 방식의 개정, 민사상 패널티 강화(자동 과태료 부과 등), 형사상 처벌 강화(벌금 상한 폐지 등), 체불 사업자 명단공개 정책 도입(2011년 시행) 등이다.
관리 감독 강화와 더불어 최저임금 수준도 지속적으로 인상되었다. 영국의 2013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94%(21세 이상 적용대상 기준 6.19파운드에서 6.31파운드로 인상)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재도입된 1999년 이후 최저임금 인상은 성인 평균 연 4.0%로, 2011년까지 약 69% 인상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최저임금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으나, 1999년 재도입 이후 최저임금 인상률은 전체적으로 평균 임금인상률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그 결과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이 꾸준히 증가하여 1999년 36.6%에 불과하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이 2011년 40.2%를 기록하였다(영국 저임금위원회 자료, OECD 통계로는 2000년 34.1%에서 2011년 38.2%).
신자유주의 종주국인 영국에서 최저임금제를 재도입하고, 재도입 이후 지속적으로 집행체계를 강화하며 평균임금 인상률을 상회하는 인상률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보다 소득불균형에 따른 사회적 갈등 심화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에는 보수적 성향을 지닌 영국 기업혁신기술부장관 매튜 핸콕마저도 “최저임금이 현재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로 작용함으로써 일자리로 돌아가게 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공급측면의 개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최저임금(인상)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용가능성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최근의 두 연구를 지적하면서, 보수당도 최저임금 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열악한 한국 최저임금 수준과 재계의 은폐 시도
반면 한국은 영국이 최저임금을 재도입하기 이전부터 최저임금제도를 운영해 왔지만, 그 수준은 여전히 매우 미약하다.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으로 대표되는 재계의 입장은 2012년 기준 최저임금이 임금총액(시간당) 중위값 대비 49.7%, 통상임금 중위값 대비 46.2%, 평균정액급여 대비 46%에 달해, 현재의 최저임금이 정책적 목표인 중위수 대비 50%에 근접한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국가 간 비교를 위한 구매력평가 기준 환산 시간당 최저임금은 한국이 4.9달러로 26개국 중 15번째 수준이다. 이는 룩셈부르크(10.4), 프랑스(10.2)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며,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동유럽과 중남미 일부 국가들뿐이다. 또한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중 역시 낮은 편이다. 한국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34%로 최저임금제를 택하고 있는 OECD 가입국 중 7번째로 낮다.
무엇보다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높다.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할 때는 정책 수단의 유무와 타당성 여부도 중요하지만, 현실 지표로 나타나는 정책 결과에 대한 평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과로 나타나는 현실 지표는 정책 수단의 적절성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OECD가 발행한 ‘2012 고용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규모는 25.9%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 실제로 저임금 노동(임금덤핑)이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재계의 주장대로 최저임금이 충분히 높은 수준이라면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재계의 주장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는 것은 재계가 최저임금 수준을 높게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통계와 사용하는 통계값(평균값 vs. 중간값)을 조정했기 때문이다. 재계는 그 동안 최저임금 수준 산정을 위해 사용하던 <사업체노동력조사> 대신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사용한다. 전체 노동자 임금 수준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1인 이상 사업체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통계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근거다. 하지만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는 상대적 고임금 직군인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행정, 국제 및 외국기관을 제외하고 있어 전체 임금 평균이 낮게 나타난다.
다음으로 사용하는 통계값을 살펴보면, 재계는 평균값보다는 중위값을 주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저임금비중이 높을 경우에는 평균값이 중위값보다 크고, 반대로 고임금비중이 높을 경우에는 평균값이 중위값보다 작게 나타난다. 현실에서는 대체로 저임금 비중이 높기 때문에 임금 통계에서 중위값은 늘 평균값보다 낮게 나타난다. 일례로, 2011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통계상 노동자임금 중위값은 151만 원, 평균값은 197만 원이다. 이런 이유로 국제기구는 평균임금 대비 50% 또는 중위임금 대비 60% 수준의 최저임금을 권고한다.
재계와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은 통계 조정으로 우리의 저임금 노동 현실을 은폐하려고만 하지 말고, 왜 신자유주의 종주국 영국에서 최저임금제도가 재도입되었는지, 또 재도입 후 관리 감독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며 평균임금 인상률보다 높은 최저임금 인상률이 유지된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