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는 최근 제95차 총회에서의 권고안 채택을 통해 1995년 이사회 결의에서 시작된 ‘보호가 필요한 노동(labour needing protection)’에 보호를 제공하기 위한 긴 여정을 일단락 지었다. ‘고용관계에 관한 권고’로 이름 붙여진 이 권고는 특수고용(혹은 종속자영노동)과 도급노동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ILO의 규범 수립과정이 다 그렇듯이 이 권고 역시 논의 과정에서 두 계급 간의 밀고 당기는 갈등과 논란이 격렬하게 벌어졌고, 이 때문에 강력한 강행력을 보장하는 합의는 중도에 폐기되었으다. 최종 권고 내용도 권고안 초안에서 약간의 후퇴를 보였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 권고가 새로이 보호해야 할 노동에 대한 진취적 시각을 명시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드러냈으며, 특수고용을 둘러싼 논의의 혼란을 정리하는 데 기여할 몇 가지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11년에 걸친 논의 과정과 내용, 그리고 국내 특수고용 논의에 주는 시사점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한다.
1. ILO 고용관계 논의의 전개과정
1) 제86차 ILO 총회의 <도급노동의 보호에 관한 결의안(1998)>
ILO에서 특수고용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은 1995년 이사회 결의다. 그러나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97년 ILO 연차총회에서 ‘도급노동(contract work)’에 대한 보호 문제를 토론하면서부터이다. 토론의 목적은 고용형태의 다양화로 인해 보호받지 못하는 범주의 노동자들에게 제도적 보호를 제공하는 데 있었다. 보호를 필요로 하는 주요 대상으로는 삼각고용관계(triangular employment relationship)와 함께, 민법 혹은 상법상의 계약에 의해 근로를 제공하지만 사실상은 그 기업에 종속 혹은 통합되어 있는(dependent on or integrated into the firm) 근로형태를 포함하도록 하였다.
1997년 총회에서 토론에 따라, 1998년 총회에서는 각국 노사정에서 도급노동에 관한 협약 및 권고안 채택이 제안되었으나 사용자 집단의 반대로 채택에 실패하였다(ILO, 1998). 당시 사용자 그룹은 “각국의 법제도와 접근방식이 매우 다양하고 제안된 협약안과 권고안이 상업적 계약을 간섭하여 경제활동과 고용창출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반대의 이유로 지적하였다. 하지만 사용자 집단도 ‘위장된 고용(disguised employment)’의 규제에 대해서는 논의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리고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동자 집단을 규명하고 보호의 방식을 검토하기 위한 전문가 회합을 개최하자는 결의안 채택에 동의하였다(ILO, 2003). 1998년 제86차 ILO 총회에서 채택된 <도급노동의 보호에 관한 결의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ILO,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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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도급노동에 관한 위원회>의 논의에서 제기된 다음의 이슈들을 검토할 전문가 회의를 개최할 것
(ⅰ) 위원회에서 규명되기 시작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의 규명.
(ⅱ) 그런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적절한 방식과 다양한 상황들을 따로 다룰 수 있는 가능성
(ⅲ) 나라별 법률체계 및 언어의 차이를 고려하여 그런 노동이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 여부
(b) <도급노동에 관한 위원회>에 의해 시작된 과업을 완수하기 위한 여타의 조치들을 취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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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98년 총회를 거친 후 초기 논의의 일부 사항들이 변경되었다. 첫째, 도급노동(contract work)이라는 용어가 논의 대상 집단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폐기되었다. 대신 보호를 필요로 하는 집단적 범주들로 △ 제3의 기관(intermediaries)을 통하여 채용된 노동자, △ 하도급계약자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 △ 자영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포함한 그 지위가 불분명한 노동자 등이 구별되었고 이를 포괄하는 용어로 ‘보호가 필요한 노동(labour needing protection)’이 새로 탄생하였다. 둘째, 고용관계의 범위(scope of employment relationship)가 논의의 중심에 놓여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ILO, 2003).
2)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동자에 관한 전문가 회합’의 공동성명(2000)
1998년 총회 결의에 따라 전문가 회의가 이루어진 전문가 회의는 그 준비 과정에서 39개국을 대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에 대한 국가별 연구를 진행하였고, 또한 권역별 회합을 거쳐 논의를 심화시켰다. 이러한 준비를 거쳐 2000년 5월에 열린 노사정 전문가 회의는 공동성명(common statement)을 채택하는 데 성공하였다.
공동성명에서 전문가들은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노동의 성격 변화가 고용관계의 법률적 적용범위를 실제의 고용관계와 불일치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이로 인해 노동 및 고용 관련 법률들에 의해 마땅히 보호되어야 할 노동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초래되었노라고 지적하였다(ILO, 2003). 따라서 공동성명은 각국 정책이 현재의 고용관계 현실에 부합되도록 고용관계의 규율범위를 명확히 하거나 실제의 현실에 적응시키는 정책을 취해야 하며(공동성명 제5항), ILO는 이러한 각국 정부의 노력을 지원하는 데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공동성명 제7항). 전문가들이 합의하여 각국과 ILO에 권고한 각국정책과 ILO가 취해야할 조치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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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한 취해져야 할 각국정책의 요소들(공동성명 제6조)
(a) 노사에게 고용관계, 특히 종속노동자와 자영노동자 간의 구별에 관한 명확한 지침(guidance)의 제공
(b) 노동자들에게 효과적이고 적절한 보호의 제공
(c) 종속노동자의 지위를 빼앗겨 적절한 법률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위장된 고용의 근절
(d) 진정(眞正) 상업계약 혹은 진정 독립계약의 불간섭
(e) 근로자 지위를 결정한 적절한 (분쟁)해결 메커니즘의 제공
● ILO가 취해야할 조치(공동성명 제8조)
(a) 협약 혹은 보충적 권고안의 채택을 포함하는 정책수단들의 채택
(b) 적절한 각국 정책의 개발에 관해 회원국들에 기술적 협력, 지원, 지침 등을 제공
(c) 고용관계의 변화에 관한 정보의 교환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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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03년 고용관계 결의문(resolution)
전문가 회의의 결론을 토대로 2003년 제91차 ILO 총회에서 고용관계에 관한 일반토론이 이루어졌다. 이 논의에서 노사의 입장 차이는 다시 분명하게 드러났으나 회원국들은 ‘보호가 필요한 노동’에 대한 권고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고용관계에 관한 결의문(resolution)을 채택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제91차 총회의 ILO 결의문은 열아홉 개 항의 ‘고용관계에 관한 결론문(Conclusions concerning the employment relationship)’과 여섯 개 항의 ‘ILO의 역할(Role of the ILO)’ 등 총 25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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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관계에 관한 결론문
- ‘양질의 노동(Decent Work)’ 의제의 틀 내에서 모든 노동자들은 고용상의 지위에 관계없이 품위(decency)와 존엄(dignity) 하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제1항).
- 노동시장 구조와 작업조직 상의 변화가 노동의 패턴 변화를 야기하고 있으며, 이 변화에 따른 결과 중의 하나가 법률상 고용관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증가이다(제3항, 제4항).
- 이에 대한 명확하고 적절한 법률적 규율에 곤경을 초래하는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 법률상 고용관계 적용 범위가 불명확하거나, 너무 협소하거나 혹은 부적절함
● 고용관계가 위장되어 있음(위장된 고용관계)
● 고용관계 여부가 객관적으로 모호하여 그 존재여부가 의문시됨(모호한 고용관계)
● 고용관계는 존재하지만 누가 고용주인지, 노동자가 어떤 권리를 지니는지, 권리에 대한 책임 당사자가 누구인지가 명확치 않음(삼각고용관계)
● 법률의 이행과 집행력이 결여됨(제5항)
- 법률의 명확성과 예측가능성은 모든 당사자들의 관심사다. 법률과 그에 대한 해석은 양질의 노동(decent work)의 목적과 양립하고, 양질의 고용의 혁신적 형태를 방해하지 않을 만큼 유연하며, 고용과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 한편 3자주의적 사회적 대화는 명확하고 예측가능하며 유연한 법률적 개혁을 보장하는 핵심 수단이다(제6항).
- 정부의 강력한 기여도 중요하다. 법률의 준수와 집행력이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노동행정당국, 특히 근로감독관의 역할이 중요하다(제10항, 11항, 12항, 13항).
- 노동자 지위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분쟁해결기구 혹은 행정절차가 제공되어야 하며 이 기구는 3자 주의나 2자 주의로 구성되어야한다(제14항).
- 노동보호의 결여가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차별도 악화시키고 있으며, 성평등을 위한 보다 명확한 정책을 가질 필요가 있다(제15항, 16항).
- 각국 정부는 사회적 파트너들과 협의하여 관련 정책 틀을 개발할 필요가 있으며, 각국의 정책은 2000년 전문가회합의 공동성명이 제공한 요소들을 포함해야 한다(제17항).
●ILO의 역할
- ILO는 고용관계에 관한 비교 자료를 모으고 연구를 수행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제20항).
- 고용관계에 관한 적절한 국제적 대응으로써 권고안(recommendation)을 채택해야 한다(제2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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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ILO 총회의 고용관계에 관한 결의문은 당시까지의 논의를 총괄하고 이후 ILO가 취할 조치들의 내용과 방법(권고안)을 확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었다. 이 결의문에 따라 ILO와 각국의 노사정은 권고안의 채택을 위한 준비에 착수하였다.
3) ILO 고용관계 권고(Recommendation concerning employment relationship)(2006)
2003년 결의에 따라서 2004년 제289차 ILO 집행위원회 회의에서는 2006년의 제95차 ILO 연차총회에 상정할 권고안을 작성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권고안의 작성을 위해 2005년에 60개국 이상의 회원국의 법률과 관행에 대한 보고서가 작성되어 배포되었고, 이와 함께 권고안 작성을 위한 설문지가 만들어져 회원국들에 제공되었다. 각국 정부는 노사 대표단체의 협의를 거쳐 해당국 정부의 입장을 2005년 8월1일까지 회신하도록 요구받았다.
ILO가 제공한 질문지에 대해 각국 정부가 보내온 회신들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항들에 대해 각국 정부와 노동단체의 2/3 이상이 찬성을 표하였으며 사용자단체는 찬반이 엇갈렸다. 이러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2006년 연차총회에서 드디어 권고안이 채택되었다. 총회에서 권고안은 329표의 찬성, 94표의 반대, 그리고 40표의 기권에 의해 가결되었다. 찬성표의 대부분은 노동자 집단에서 나왔고 반대표의 대부분은 사용자집단에서 나온 반면 기권표의 다수는 각국 정부가 행사할 수 있는 2개씩의 표에서 나왔다. 이중에는 한국정부가 행사한 2개의 기권표도 포함되어 있다.
한편 채택된 권고안은 애초의 권고안 초안에서도 또 한 차례의 수정이 가해졌다. 수정이 가해진 주요 사항은 삼각고용관계(triangular employment relationship)에 관한 것으로 이 용어 대신 ‘복수의 당사자’라는 모호한 규정으로 표현되었고, 기존의 파견근로 관련 협약과 권고가 이에 영향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한편 고용관계를 판별하는 구체적인 지표와 이 지표 중 하나 이상에 해당되는 경우 노동자로 판별한다는 권고안 초안의 내용도 막판까지 커다란 논란거리였지만 큰 수정은 가해지지 않았다. 결국 권고안은 삼각고용관계에 대한 절충을 거쳐 채택되었다.
노동자 집단이 강하게 저항하였음에도 절충적 권고안의 채택에 동의한 것은 사용자 그룹이 막판에 총회 철수까지 위협하며 권고안의 변경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노동자 그룹은 이번 총회에서 권고안이 채택되지 않을 경우 의안이 자동 폐기되어 특수고용에 대한 국제 규범을 근거로 한 자국에서의 제도개선이 어려운 지경에 빠질 것을 우려하여 절충을 수용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권고안은 전문과 4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문의 주요 내용만을 살펴보면 아래의 <표 1>과 같다.
3. ILO에서의 고용관계 논의의 주요 내용과 의미
1) 보호 대상의 확정
ILO 고용관계 논의에서 보호의 대상은 애초의 도급노동(contract work)에서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동(labour needing protection)'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대상 규정의 전환을 통해서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의 특징도 보다 명확하게 분류되었는데, ① 위장된 고용관계(disguised employment relationship), ② 모호한 고용관계(ambiguous employment relationship), ③ 삼각고용관계(triangular employment relationship) 등이 그것이다. 위장된(disguised) 고용관계란 모든 측면에서 법률이 정한 고용(근로)관계와 유사하지만 고용계약이 아닌 계약에 의해 근로를 제공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모호한(ambiguous) 고용관계란 고용관계와 일정한 유사성이 있으나, 기존의 법률이 정한 기준이 불분명하거나, 혹은 법률이 고용관계의 현대적 발전 양상에 비해 뒤떨어진 탓에 고용관계로 정의되지 않는 경우에 속한다. 한편 삼각(triangular) 고용관계란 명백한 고용관계이지만 노동이 고용주가 아닌 사용기업에게 제공되는 관계로 고용관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사용자가 2명 이상임에도 사용자 책임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경우를 이른다(ILO, 2006).
2) 보호 원칙의 규정
ILO 논의와 권고안은 이들의 보호에 있어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보호의 성격과 범위를 국제노동기준을 고려하여 각국 법률 및 관습에 의해 정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권고안 제4조).
둘째, 각국의 정책은 ① 고용관계의 존재, 고용과 자영을 구별하는 가이드라인 제공 ② 위장된 고용관계의 척결(combat) ③ 복수의 당사자가 관련된 계약을 비롯한 모든 계약형태에 적용할 보호 및 책임의 기준 확립 ④ 고용관계의 존재여부 및 조건에 관한 분쟁조정을 위한 적절하고 신속한 절차와 메커니즘 확립 ⑤ 고용관계 관련 법률 및 규율의 준수와 효과적 적용의 보장 등의 원칙하에 시행되도록 권고하였다.
셋째, 고용관계 존재의 불확실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 여성, 연령, 비공식부문, 이주 그리고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이 동등한 보호를 받도록 할 것을 권고하였다.
넷째. 정부가 노사의 주요 대변조직과의 협력을 통해 정책을 결정하고 이행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러한 원칙이 제공은 이번 권고안의 매우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각국 정책이 위장된 고용관계의 척결과 고용관계 판별기준의 제공을 방향으로 설정하고, 노사 당사자들과의 충실한 협의를 통해 정책 결정과 이행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 점이 유의미하다.
3) 고용관계 존재 여부에 관한 접근방식과 판별 지표의 제공
고용관계 판별에 관한 사항은 ILO 논의에서 핵심적 논란거리 중의 하나였고 사용자들의 반대도 심하였다. 그러나 권고안 내용은 애초의 초안에서 크게 후퇴하지는 않았다. 고용관계 존재여부와 관련한 권고안의 내용은 판별을 위한 고려사항과 판별지표, 그리고 그를 위한 행정서비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고려사항을 검토해 보면 다음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첫째, ILO 권고안에서는 고용관계 판별을 위한 일종의 원칙으로 ‘계약형식이 아니라 일의 수행과 보상에 관한 사실에 기반을 둘 것’(primacy of facts principle)을 권고하였다(제9조). 이 원칙은 특히 자영관계로 위장된 고용관계의 판별에 중요하다. 통상 위장된 고용관계는 그 계약형식을 가지고 고용관계가 아님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둘째, 고용관계를 판별하는 하나 이상의 지표들이 나타날 경우 고용관계가 존재한다는 법률적인 추정(presumption)을 할 것을 권하고 있다(제11조 (b)항). 이는 국내에서 법원의 고용관계 판별 방식과 크게 대비된다. 실상 국내 법원의 고용관계 판별 지표와 ILO 권고안의 지표와는 큰 차이는 없다. 다만, 국내 법원의 경우 각 지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상당히 엄격하게 적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구별된다. 이런 점에서 고용관계 판별 지표들을 활용하는 방식에 대한 ILO의 권고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셋째, 고용관계의 존재를 판단하기 위해 광범위한 수단을 허용하고 이와 관련하여 종속성(subordination) 혹은 의존성(dependence)의 조건들을 명확히 정의할 것을 고려해야한다고 권하고 있다(제11조 (a)항 및 제12조). 이 고려사항은 기존의 논의에서 중요하게 부각되었던 경제적 종속성(economic dependency)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평가된다. 비록 경제적 종속성을 고용관계의 판별지표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용자와 노동조합의 이견 때문에 판별 지표로 구체화되어 예시되지도 못하고 문안 상으로도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이는 그간의 논의 과정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보인다.
넷째, 노사관계 당사자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즉, 특정 취업자 집단이 노동자인지 자영자인지를 결정할 때 가장 대표성이 높은 노사 조직과의 사전 협의를 거쳐 결정할 것을 권하고 있으며(제11조 (c)항), 아울러 고용관계의 존재여부를 명확히 하는 데 단체교섭의 역할을 높일 것을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과 고려사항을 기반으로 총14개의 고용관계 판별지표가 예시되고 있다. (a)군에 속하는 판별지표들은 대체로 사용종속성(사용자의 감독과 통제 여부)과 조직적 통합성, 그리고 노동에 사용되는 고유자본의 보유 여부를 다루고 있다. (b)군은 보수와 노동과정에서의 비용 부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판단지표들은 국내 논의나 대법원의 고용관계 판단지표들과 비교해서 크게 진보적이지는 않더라도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판별 지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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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노동(work)이 타인의 지시에 따라, 그 감독 아래 수행되는가.
● 노동이 노동자의 기업조직으로의 통합을 수반하는가.
● 노동이 전적으로 혹은 주로 타인의 수익(benefit)을 위해 수행되는가.
● 노동이 노동자 자신에 의해(personally) 수행되는가.
● 노동이 특정한 작업시간 내에 혹은 특정한 작업 장소에서 수행되는가.
● 노동이 특정한 기간 동안 수행되고 일정한 지속성을 지니는가.
● 노동자의 일상적 업무준비 상태(availability)를 요구하는가.
● 노동을 요구하는 측에 의해 도구, 재료, 장비가 제공되는가.
(b) ● 보수가 정기적으로(periodic) 지불되는가.
● 보수가 노동자 수입의 유일한 혹은 주요한 원천인가.
● 음식물, 숙박, 교통 편의가 제공되는가.
● 주휴와 연휴 같은 권리가 인정되는가.
● 작업수행을 위한 여행 시 노동을 요구하는 측에 의해 그 경비가 지불되는가.
● 재정적 위험(financial risk)을 부담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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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LO 고용관계 권고가 국내 논의에 갖는 의미
ILO에서의 고용관계 관련 권고안은 기존의 국내 논의나 특히 법원의 판례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향후의 논의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첫째, ILO 논의의 가장 두드러진 바는 ‘모든 고용의 포괄적이고 비차별적인 보호’라는 시각에서 접근하여 그 방안을 구체화해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ILO의 고용관계에 대한 포괄적인 보호 의지는 1998년 협약 채택의 실패로 어느 정도 빛이 바래졌지만, 십년간의 각국별 조사와 꾸준한 논의를 통해 보호의 필요성과 그 주요 대상, 그리고 보호의 전략과 초점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권고안의 수준이나마 최종적인 성과를 예비하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각과 추진 프로세스는 노사정위원회를 비롯한 국내의 논의에서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ILO 논의가 초기부터 위장된 고용관계(disguised employment relationship)의 척결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는 점 역시 높이 평가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경우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레미콘 지입차주 등이 사실상 이런 범주에 해당된다고 보인다. 그런데 ILO 논의가 위장된 고용관계의 척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권고안 상으로 구체화할 수 있었던 데는 계약형식보다는 실체적 사실 우선주의(primacy of facts)에 입각하여 고용관계를 바라보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대법원이 “계약형식보다 관계의 실질에 입각하여 고용관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 천명을 하기는 했다(대법원 1994.12.9 선고, 94다22859 판결). 하지만 이와 별개로 법원에 의해 ‘위장된 고용’의 성격이 다분한 여러 직종에 대해 그 노동자성이 부인되는 일이 허다하였다. 그 중에는 계약형식에 지나치게 얽매여 실질을 보지 못했던 바에 따른 결과가 적지 않았다. ILO 권고안은 이에 대한 중요한 비판과 시정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특수고용 논의와 관련하여 고용관계를 판별하는 지표의 예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아울러 지표 구성과 활용에 있어서 폭넓은 적용을 권장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그간 국내에서는 고용관계의 법률적 적용 범위를 두고 전통적인 인적 종속성을 엄격하게 중시할 것인가 조직적 종속성과 경제적 종속성을 고용관계 정의 범위 안에 포괄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ILO의 논의는 애초의 협약안에서나 최근의 권고안에서는 인적 종속성을 중심으로 하되, 조직적 종속성을 아울러 고용관계 판별 지표를 구성하는 요인으로 인정했다. 특히 이러한 지표를 적용하는 데 있어서 하나 이상의 지표에 해당되는 것만으로도 고용관계를 인정하고자 하는 취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노동시장 변화에 맞추어 고용관계 법률을 적응시켜 온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 고려사항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고용관계의 존재를 판단하기 위해 광범위한 수단을 허용하고, 종속성(subordination) 혹은 의존성(dependence)의 조건들을 명확히 정의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판별지표에서는 구체화되어 있지 않은 경제적 종속성을 고용관계 판별기준으로 고려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ILO 판별지표는 인적 종속성을 중심으로 한 엄격한 잣대에 익숙한 국내 법원이나 일부 법학계의 논리에 중요한 비판과 시정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5. 그러나 갈 길은 여전히 멀다
ILO의 권고안은 진취적이다. 그 진취성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관련된 지표가 존재하는 경우, 고용관계의 존재에 대한 법적 추정(legal presumption)의 제공”을 고려하라는 언급이나 고용관계의 존재를 판단하는 데 적용할 조건들로서 “종속성(subordination) 또는 의존성(dependence)”을 언급함으로서 경제적 종속성을 고용관계 판별에 포함시킬 것을 ‘은밀히’ 권장하는 데에서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은밀한’ 권고가 현실에서는 ‘명시적인 비토’의 근거로 해석되는 경우를 하루 이틀 보아온 것이 아니다. 강행력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일개 권고에서 ‘은밀하게’ 고려하라고 속삭이는 말을 귀담아들을 만큼 개명된 사용자나 정부와 상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심하게는 명시적인 권고 내용조차 그 해석을 가지고 지난한 논쟁을 거듭할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아울러 “종속성 혹은 의존성”이 지닌 한계도 있다. 예를 들어 2개 이상의 업체로부터 일을 받음으로 인해 ‘외형적인’ 경제적 의존성은 없으면서도 수입은 종속 노동자의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경제적 불안정성은 그를 넘어서는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수많은 ‘무산 자영자’들의 존재는 어떤 수단으로 규율되고 보호받아야 마땅한가?
이데올로기적, 이론적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당장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ILO 권고안은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는,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는 유의미한 전리품이다. 적절히 활용하되, 이를 뛰어넘을 정신과 논쟁을 준비해야 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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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2003), Date, place and agenda of the 91st session of the conference,
<http://www.ilo.org/public/english/standards/relm/gb/docs/gb280/pdf/gb-2.pdf>, accessed on 5/12/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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