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한 일로 전남 구례에 가야했던 김 씨는 9시 30분 수서역에서 호남선 KTX를 타고 12시에 익산역에 도착해 12시 20분 전라선 새마을호로 환승하고 13시 30분에 구례구역으로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수서발 KTX가 익산으로 가는 도중 고장을 일으켜 지연 운행되었고, 환승시간이 거의 다 되어 익산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환승열차를 놓칠 것을 우려한 승객 수십 명이 열차승무원에게 익산역에 지연을 통보해 환승이 가능하도록 조치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전라선 열차는 다른 회사가 운영하는 것이라서 연계를 위한 조치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수십 명의 승객이 전라선 열차를 놓쳤고, 빗발치는 항의에도 10%의 지연보상금만 손에 쥔 채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구례로 가는 다음 열차 역시 이미 만석으로 표가 매진된 상태라 시간에 쫓긴 김씨는 20만 원의 거금을 주고 익산에서 구례까지 택시를 잡아탈 수밖에 없었다.
2015년으로 예정된 수서발 KTX 운영 방식 결정을 앞두고 철도운영의 분할과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공부문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상황에서도 국토부의 “수서발 KTX를 철도공사로부터 분할하여 새로운 경쟁회사를 만들면 양질의 서비스에 10% 정도의 요금인하 효과까지 국민이 누릴 혜택이 커질 것”이라는 설명에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수서발 KTX의 분할․민영화는 국민의 교통기본권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환경친화성과 지속가능성으로 그 가치가 갈수록 커지는 철도산업의 붕괴와 몰락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천만한 계획이다. 이에 국토부의 계획이 가져올 불안한 미래에 대해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 보았다. 인용문으로 처리된 문장들은 KTX 분할·민영화가 야기할 상황에 대한 가상의 이야기다. 수서발 KTX의 분할․민영화는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회적 민영화 ‘수서발 KTX 주식회사’
최근 ‘속칭 강남 KTX’로 불리는 수서발 KTX 운영회사가 새로 자율요금제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용산 노선이 갖고 있던 강남권 고속철 이용수요가 수서노선으로 완전히 이전된 데 이어 고속철 2단계 및 수서노선의 완전 개통으로 늘어난 수요까지 더해졌지만 수서발 KTX 주식회사는 높은 선로사용료와 금융비용, 그리고 공기금 기대수익 이상의 주주배당금을 고려하면 운영수익 압박이 크다며 등급별로 특화된 요금제를 도입해 수익률을 극대화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등급별 요금제로 요금체계가 개편되면 전반적 요금수준은 약 30% 가량 인상될 것이고, 최고 등급요금의 경우, 코레일 KTX 요금에 비해 약 2배 이상 비쌀 것으로 보인다. ‘부자만을 위한 서비스’란 이유로 사회적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회사경영진은 정부가 자율요금제 도입을 통제한다면 연기금 등이 보유한 회사지분을 민간에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2012년 ㈜서울메트로 9호선 주식회사의 요금인상 논란과 겹치는 대목이다. 민자사업자들의 국민혈세와 공공요금을 볼모로 한 과도한 이윤추구 행태는 민자고속도로, 경전철 사업 등에서 여전히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무늬만 공기업 자회사인 ‘수서발 KTX주식회사’에서도 조만간 그대로 재현될 문제다.
이렇듯 국토부가 구상하는 수서발 KTX 주식회사의 설립은 우회적인 민영화 계획에 불과하다. 국토부는 지난해 구상한 수서발 KTX 민간사업자 선정 계획이 “알짜 수익노선을 재벌에 특혜로 주려 한다”는 비판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가자, “코레일 지분(30%)과 공공기금(70%) 출자 방식으로 명목상 코레일 자회사를 설립하겠다”는 제안을 들고 나왔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는 공공성과 효율성을 조화시킨 최적의 방식이란 설명과는 달리 정부로부터 인사·예산·조직 등의 통제를 받지 않고, 시민사회의 통제로부터도 자유로운 상업회사이다. 공기업인 코레일이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수익에 대한 배당이나 초기 운영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한 매개 고리일 뿐 (대표)이사 선임권을 비롯한 경영상의 중요한 권리는 행사할 수 없다. 더구나 경영진의 상업적 판단에 의해 여차하면 지분매각을 통해 완전한 민영회사로 변모할 가능성도 높으니, 국토부는 더 이상 민영화 계획이 아니라고 강변해서는 안 된다.
실패가 예고된 철도 분할․민영화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 이후 철도산업 전반의 부실구조가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레일의 영업적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2013년 당시 코레일은 총 14조 원의 부채를 갖고 있었지만 이 중 8.9조 원은 건설부채 등으로 구조적인 것이었고, 영업적자는 용산개발투자 실패로 인한 부분을 빼면 누적액으로 약 4.4조 원 정도였다. 2013년 실시된 철도공사 경영분석에 의하면 2009년 이후 철도수송 분담률이 늘어나고 있었고, 영업수익 역시 2005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현재 코레일의 부실이 심화된 데에는 수서발 KTX 노선의 분할로 인해 코레일 고속철도부문 운송수익이 격감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한편, 코레일 경영진은 영업수지가 악화됨에 따라 조만간 원가에 못 미치는 철도요금을 큰 폭으로 인상하거나 적자노선의 운영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자구책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요금인상과 지역노선 폐지는 곧바로 철도운송의 편의성이 더욱 악화시킬 것이고, 이는 또다시 철도수송 분담률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어 결국 철도산업은 제 살 파먹기 식으로 경쟁력을 상실하고, 적자구조가 고착화되는 악순환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국가 기간산업인 철도산업이 적자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 크게 2개의 상반된 기조가 대립한다. 하나는 정부나 지자체가 철도산업의 미래전망을 고려하여 ‘재정적 투자책임’을 보다 분명히 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재정지출 축소’라는 명분으로 철도산업의 분할과 민영화를 통해 대응하는 것이다.
현재 국토부가 추진하는 방식은 정확하게 후자다. 그런데 철도산업의 분할․민영화 정책은 외국 철도의 선행적 경험을 살펴보더라도 이미 실패가 예고된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영국이나 아르헨티나 사례에서 보듯, 철도의 분할과 민영화는 적자구조를 그대로 온존한 채 중복투자로 인한 낭비와 금융비용 및 투자 배당금 같은 비생산적 지출이 증가되어 공적자금의 지출 총량이 늘어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실질적 재정지출이 확대되는 상황을 숨기기 위해 철도 경영진은 상업적 운영에 더욱 매달리게 되며, 이로 인해 역으로 철도운송의 수요가 줄고 경쟁력이 약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한 민영화 정책이 스스로 재정의 악화와 산업의 침체를 촉진케 하는 악순환의 매개체로 전락하는 셈이다.
대형사고 부를 철도 네트워크 단절
한국철도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이번 사고를 포함하여 최근 빈발하는 철도사고는 철도운영의 파편화와 철도 회사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수익 지상주의가 낳은 필연적 귀결로 보인다. 수익 극대화에 혈안이 된 철도회사들은 단기 운송수익을 늘리는 데만 관심을 둘 뿐 시설의 개량이나 유지보수에 대한 투자는 도외시했다. 더구나 인건비를 줄이고자 기존 인력을 비숙련 비정규인력으로 바꾸는 일에만 여념이 없었으니 사고는 불가피했다. 철도산업이 복수의 운영회사와 철도시설회사, 차량정비회사, 유지보수회사, 관제기관 등으로 파편화된 이후 철도의 네트워크적 특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일은 끊임없이 반복됐다. 차량정비회사나 유지보수회사는 시설과 차량의 오류를 발견하고도 제때 조치하지 못했고, 장애상태를 관제실이나 운영회사에 정확히 통보하지도 않았다. 운영회사 역시 사고예방보다는 열차지연에 따른 환불책임을 기관사에게 추궁하겠다는 압력 위주로 인력관리를 했다. 안전을 위한 철도운영자 간 소통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고 후 철도회사와 시스템에 대한 비난여론이 고조되자, 정부는 시설회사가 운영하는 관제센터의 역할과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미봉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몸통은 놔두고 가지만 건드리는 대책만으로 상업적 철도회사를 통제하고, 유기적 시스템을 복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07년 6월 경의선 가좌역 노반 붕괴사고, 2011년 6월 경원선 월계~녹천 간 비탈면 붕괴사고, 2010년 7월 장항화물역 화물열차 탈선사고 등은 철도 상하분리로 작업자와 운영자 간 의사소통이 끊어지면서 발생했다. 이처럼 철도산업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각 부문 간의 유기적 연계는 철도안전의 필수조건이다. 그럼에도 시설과 운영의 분리에 이어 복수 운영자 분리, 관제기능 분리, 차량정비회사 분리, 유지보수회사 분리 등이 추진되면, ‘안전한 철도’ 슬로건은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민영화로 철도운영의 상업화가 가속화되면 안전과 공익성을 위한 시설투자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영국철도의 철도산업 분할과 민영화 이후 발생했던 대형 사고들 역시 복수의 운영사 간 정보오류, 시설과 운영의 정보단절, 시설투자소홀, 시설과 보수자 간 정보오류 등의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2012년 2월 아르헨티나의 대형 참사 역시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이들 국가와 동일한 시스템을 추구하면서 한국철도만 안전이나 공익성이 훼손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비효율적’ 민영화 강행에 숨은 속내
수서발 KTX 주식회사 노동조합은 “코레일 직원 수준으로 임금 및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다음 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실제 수서발 KTX 회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대부분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동일업무를 수행하는 코레일 노동자에 비해 열악하며, 비정규직·외주·하청 등의 방식으로 불완전 고용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수서발 KTX 주식회사 경영진은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하게 된다면, 수서발 KTX 운영을 별개의 회사로 분리한 이유가 없어진다며 노동조합의 요구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코레일의 분석에 의하면, 수서발 KTX 주식회사를 별도로 설립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약 3천억 원 정도인 반면, 코레일이 직접 운영하게 될 경우 필요비용은 채 1천억 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즉 코레일이 출자하는 30%의 금액만으로도 충분히 수서발 KTX 노선의 운영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국토부가 굳이 낭비적 중복투자와 금융비용과 주주배당금까지 들여 그야말로 ‘비효율적’ 회사 설립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토부는 ‘경쟁 효과’에 대한 막연한 선동과 ‘요금인하․서비스 개선’의 실효성 없는 립서비스에 여념이 없다가도 가끔 속내를 드러내곤 한다. 임금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코레일의 경영적자는 고임금 비효율 구조에서 발생하는 것이어서 새로운 회사를 분리하면 대규모 노동유연화 방식의 도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수서발 KTX 주식회사의 노동유연화 구조가 코레일을 비롯한 철도회사 전반에 유연화 구조조정을 압박하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바람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같은 노동유연화 구조조정에 대한 헛된 망상과 기대는 이미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상실한 시대착오적 발상에 불과하다. 특히 단기적 비용감축 효과조차 크지 않을 뿐 아니라, 부문 간의 소통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철도시스템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국토부가 재정 축소라는 미명하에 동일산업 안에 불평등한 노동조건과 임금구조를 의도적으로 만들었고, 이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수 있는 격렬한 노사대립이 반복된다면, 이는 정부 스스로 무덤을 판 격이 될 뿐이다.
민영화 열차는 돌아오지 않는다
해외철도 사업권 수주를 두고 벌어진 국가 간 경쟁에서 한국철도산업은 이제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철도 선진국들이 건설과 운영, 그리고 제조산업을 아우르는 자국의 경쟁력 있는 공기업을 앞세워 해외 철도사업을 장악해 들어가는 데 반해, 한국철도는 파편화된 철도회사의 난립으로 자신의 대표 주자조차 마땅히 세울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특히 최근에 매각된 철도회사 지분이 외국 철도회사와 금융자본에 인수되면서 한국철도산업은 말 그대로 공중분해 되고 말았다. 조만간 시작될 남북철도나 동북아 대륙철도 연결사업이 중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강력한 철도공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국가들 간의 각축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굳어져 가고 있으니 한국철도의 운명이 실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2012년 불거진 수서발 KTX 분할․민영화 계획은 총선과 대선을 거치고, 여야 대통령 후보들의 민영화정책 중단 발표와 맞물리면서 취소되는 듯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채 6개월도 안되어 국토교통부는 약속을 뒤집고 철도 민영화계획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친국토부 성향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소위 ‘민간검토위원회’라는 걸 만들더니, 회의 몇 번 하고는 ‘철도발전방안’이라는 주문자 맞춤형 의견서를 냈다. 또한 요식적 공청회를 슬쩍 열고는, 철도산업위원회를 개최해 6월 말까지 국토부의 민영화계획서를 공식화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국토부는 산하에 소위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추진단’을 만들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정관을 만들고 이사를 선임함으로써, 오는 9월 전까지 법인등록을 마무리 짓겠다는 ‘속성 시간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철도산업의 앞날이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였다. 앞서 적시한 철도의 분할․민영화가 야기할 미래는 막연한 상상과 억측이 아니다. 국토부 계획이 가져올 필연적 결과다. 이제 철도산업의 민영화를 저지하는 일은 단지 철도노동조합 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철도를 이용하는 승객의 문제이고, 지역노선의 폐지를 앞둔 지역민의 문제이며, 나아가 안전과 공익성 파괴로 고통 받게 될 국민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국토부의 계획이 확정되고 새로운 철도회사가 설립된다면 이미 민영화 열차는 출발선을 통과한 것이나 다름없다. 영국 정부와 의회가 철도민영화 정책의 실패를 자인했음에도, 다시 공적 소유의 통합철도시스템으로 돌리지 못하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 수서발 KTX 주식회사가 설립되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