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창의성을 해방시키기

노동사회

노동의 창의성을 해방시키기

이주환 0 4,606 2013.08.2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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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출처는 『Z-Magazine』(2012년 11월)이며 원문은 『Z-Communications』 홈페이지(http://www.zcommunications.org/zmag/nov12)에서 확인할 수 있다. Hilary Wainwright는 사회운동 연구자이며, 영국의 대중적인 신좌파 잡지 『Red Pepper』의 편집자 및 필자이다. 본 글의 모든 각주는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가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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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 시에서 벌어진 흥미로운 일들 중 하나는 노사공동결정제도(Mitbestimmung) 체계에서 국지적인 성공 이야기들이다. 독일식 공동결정제도 체계 아래서 노동자들은 기업경영에 있어 일정한 역할을 부여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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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 21 반대 투쟁>

 

2010년 가을,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시와 인근 지역에서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신(新)중앙역 건설 사업인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에 대한 시민 저항 행동이 벌어졌다. 연인원 약 50만 명이 참여한 이 대규모 저항 행동의 참여자들은 이 사업에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됨에도 여론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은행과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지역 상권과 소비시장을 확대하는 사업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 선출된 의회 권력이 결정한 정부사업이 자생적 시민 행동으로 저지된 이 사건은 독일 사회에서 권력과 시민,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관계에 관한 많은 토론을 유발시켰다. 또한 2011년에 실시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의회 선거에서는 58년 동안 집권해 온 기독민주당이 패배하고, 소수정당이던 녹색당이 최초로 주 총리를 배출하여 사민당과 함께 녹적연정을 구성하는 정치적 이변이 이어졌다. …… 2011년 11월27일에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슈투트가르트 21 사업에 대한 공적 재정지원을 계속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지만, 이 사업을 둘러싼 오랜 사회적 갈등은 독일사회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한 차원 더 성숙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 신진욱(2011), “201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21’사업 반대 시위: 제도정치에 대한 시민사회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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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는 노조가 경영참가를 통해 저임금과 노동시간 증가를 수용하고 표면적인 고용 수준을 유지하는 ‘위기 코포라티즘’(crisis corporatism)이 지배적인 추세다. 그런데 남부 제조업 중심지에서는 일부 노조운동가들은 이를 거스르고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시간과 노동조건에 대해 실제적인 통제력을 갖도록 요구하고 있다. 노동의 목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독일 공공부문 산별노조인 베르디(Verdi)는 슈투트가르트 공공부문에서 임금 및 노동조건을 위한 강력한 투쟁과 공공서비스의 개선 및 방어를 위한 효과적이고 대중적인 캠페인을 결합시켜 제기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사회민주당(SPD), 녹색당(Green), 좌파당(Die Linke), 그리고 지역정당인 슈투트가르트 생태사회당(SÖS: Stuttgart Ökologisch Sozial) 등이 연립하여 세운 현재의 슈투트가르트 시 정부는 이전 기독교민주당(CDU) 시 정부에서 매각했던 공공서비스를 다시 사들여 시유화했다.

또한 다임러 메르세데스(Daimler Mercedes) 공장들의 2만여 노동자들 중 일부가 소속된 독일 금속노조(IG Metall) 내 급진적인 정파들은 임금교섭 요구를 넘어서 노동시간 단축과 자동차산업의 대안적 전망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직장평의회에 구성원이자 슈투트가르트 생태사회당의 열성적인 당원인 톰 아들러(Tom Adler)는 “우리는 이 산업을 아주 잘 안다.”고 말한다. “우리는 설계자나 기술자들이 아는 만큼 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소수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적 소수들이 작업장평의회에서 25%의 지지를 획득한 공장 신문 『대안』(Alternativ)을 발간하고 있다. 

기대들의 충돌

공공서비스 파괴와 공동결정제도 침해에 대한 슈투트가르트 노동자들의 반발은 긴축정책이 민주주의와 평등주의 개혁의 20년 유산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데 대한 항의였다. 그 유산의 핵심은 첫째, 2차 대전 후 재건된 복지국가, 그리고 둘째, 1960년대와 70년대 민중항쟁에 대한 대응으로 강화된 노사공동결정제도 체계이다. 

그러나 슈투트가르트에서 저항은, 유럽 전역에서 최근 10년 동안 두드러졌던, 개혁 시기에 만들어진 제도들의 침식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문화들, 기대들, 그리고 점차적으로 실제 활동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거대하고 불확실한 충돌을 향한 것이었다. 지난 몇 십 년 간 고등교육의 확산과 맞물려 사람들은 의미 있고 존중 받는 노동과 경제적 평등을 향한 변화뿐만 아니라 문화적 수준에서의 평등도 기대하고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경제모델이 함축하고 있는 가치를 넘어서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가치에 기반한 경제계획들이 다양한 방면에서 대두되고 있다. 그 계획들의 긴 목록에는 은행들의 명령에 괴롭힘을 당하다 파국을 맞이할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co-ops)을 결성해서 노동자들이 더욱 촘촘하게 결합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노동자들과 재생에너지 사용자들이 가치 공유를 기반으로 기술과 욕구 충족을 결합시키기 위해 협동하고 있다. 또한 자율적인 해커들과 괴짜들의 네트워크 확산은 저작권을 거부하는 개방적인 소프트웨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소프트웨어들은 디지털이 상용화된 현대사회의 기반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공공선과 공공서비스의 개선을 조직하고, 기후변화 관련 일자리를 늘리라고 회사들을 압박하는 노조활동가들의 역할 역시, 이러한 새로운 경제계획들의 목록에 포함돼 있다. 이러한 계획들의 경제적 창의성은 점거운동(occupy movements) 등에 참여한 활동가들의 활약을 통해서도 입증됐다. 그 운동으로 집중된 시민들의 분노는 그들이 경제적 대안들을 함께 만들고 강화하도록 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러한 거부와 창조의 조합을 통해서 모든 종류의 협동조합과 문화적 사회적 센터가 부상하고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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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운동>

점거운동은 빈부격차를 심화하고 99%를 사회적으로 낙오시키는 신자유주의 금융질서에 반대하며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와 함께 2011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월 스트리트는 미국 금융기관의 집결지로 금융자본의 상징이다. 월 스트리트 점거운동 과정에는 예술가와 풀뿌리활동가 등 ‘창조 계층’에 속하는 다양한 이들이 중심적으로 참여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이 운동을 통해 시민단체, 권익단체, 노동단체 등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던 단체의 구성원들이 조직화 여부와 상관없이 상호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된다. 한편, 점거운동은 2012년 들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오클랜드를 비롯한 미국 서부 지역의 점거운동은 조직노동운동과 결합해 항구 봉쇄 운동을 조직하며 서부 항만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막아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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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적 창의성

이상의 다양한 활동들은 공통적으로 ‘협동적 창의성’(collaborative creativity)에 기초하고 있다. 즉, 사적 재산이나 특허, 저작권 등에 결박되지 않은 창의성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또한 모두 임금계약 등 관습적인 용어들로는 이해될 수 없는 형태의 노동을 함축하고 있다. 관습적인 임금계약 안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의 창의성으로부터 분리되며, 생산수단의 소유자들에게 그것을 팔아야 한다. 

협동적 창의성은 사회적 가치에 기초해서 노동의 목적, 활용, 맥락 등을 스스로 자기조직화 하는 것을 칭한다. 

정보, 지식, 소통기술 등의 확산은 전문 지식과 실용적 지식들이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범위에서 공유되도록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복잡하고 다층적 행위자들이 참여하며 초국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능동적으로 조정하고 협동할 수 있는 수단들을 창출한다. 

이 모든 발전들은 투명성, 참여적 의사결정, 지식의 다원적 원천 공유 등 민주주의가 새로운 경제체계의 기초로서 갖는 중요성을 제기한다. 이러한 특성을 위스콘신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 조엘 로저스(Joel Rogers)는 ‘생산적 민주주의’(productive democracy)라 칭했다. 

녹아내리는 체스 판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의 산업전략(industrial strategy)에 대한 이야기는 활기 없는 체스 판 같은 느낌을 준다. 체스를 하는 주체(국가)와 제 자리에 위치한 체스 말(민간기업)들, 그리고 개괄적으로 봤을 때 더 큰 국내총생산(GDP)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체스 말을 움직이는 국가.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체스 판의 관념은 흔들리고 있다. 수단과 목표가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전통적인 체스 말들이 녹아내리면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가 그린 초현실주의적인 그림과 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그것들이 어디로 귀결될지 아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상태다.

산업정책들이 민간부문 투자 억제의 측면이 아니라, 가장 광범한 의미에서 노동의 창의성 개방 및 발전과 확장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고려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산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확대하고 강화할 수 있는가? 자신이 소유한 유일한 생산수단이 창의적인 잠재성뿐인 사람들은 그 능력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는가? 또 이러한 잠재성을 발전시키고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협동을 어떻게 강화시킬 수 있는가? 생산적 민주주의와 노동의 협동적 창의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돼 혼성 형태를 구성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하는 노동 지향적인 산업정책을 위한 첫 단추는, 임금계약에 묶여 있는 그리고 외견상 다양한 영역으로 분리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 노동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식의 필요성과 잠재력, 그리고 한계를 탐색하고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꿰어진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흐름은 노동조합운동이 제조업에서 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부문에서도 일자리 지키기라는 도전에 직면에 있다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1970년대 중반 영국의 루카스 항공(Lucas Aerospace)의 현장위원들이 이끌었던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을 위한 대안적 기업 계획’이라는 유명하고 고무적인 캠페인을 돌아보자. 이 캠페인은 전통적인 방어적 노조 전략에 따른 대응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제기됐다. 

루카스 사례는 정리해고에 대한 (전통적인 방식의) 저항으로 인해 장기적인 직장폐쇄가 현실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직장폐쇄와 동시에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기술과 미래 세대의 삶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의 기술을 사회적으로 유용한 목적을 위해 쓰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양심적인 목적에 적극적인 정치적 지지가 더해지면서, 루카스 항공의 현장위원들은 자신들의 지식의 유용성에 대한 확신에 기초해 행동했다. 또한 그러한 지식을 공유하고 산업적 대안을 발전시키기 위해 루카스 항공 소속 모든 공장의 모든 층위 노동자들이 결합한 ‘통합위원회’(Combine Committee)의 조직역량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그 초점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자리를 위한 단체교섭과 정치 캠페인에 맞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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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유용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 일할 권리>

루카스 항공은 1960년대 후반에 설립됐다. 1970년대 초반 루카스 항공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수반하는 회사의 합리화계획에 대응하기 위해 ‘협동계획’을 추진했으며, 이의 일환으로 숙련된 기술자들과 반숙련 노동자들을 함께 묶는 ‘통합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통합위원회는 회사의 노동자 내부 분할관리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이러한 형태의 조직은 영국 노동조합운동 역사상 최초의 것이었다. 또한 루카스 항공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대응이 장기화되면서 ‘사회적으로 유용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 일할 권리’를 주창하는 운동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먼저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상품 중에서 우리의 설비와 능력으로 제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편지를 각지의 학회와 대학, 연구소 등에 보냈고, 4명의 학자로부터 긍정적인 회신을 받아냈다. 또한 내부 구성원들에게 설문지를 통해 같은 질문을 물어 150여 개의 아이디어를 수집했다. 수집된 아이디어들은 6개의 주요 생산 범위로 구분돼 200쪽짜리 책 6권으로 구체화됐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으 바탕으로, 장애아동을 위한 차량인 합카트(Hobcart), 각종 생명구조체계 장비, 저에너지주택을 위해 필요한 부품들, 제3세계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다목적용 동력계,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텔레치릭 장치(telechiric device: 원거리에서 사람의 손 역할을 하는 장치)의 설계,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을 위한 설계 등이 현장노동자와 과학기술자의 협동을 통해 현실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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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영국 노동당 정부가 노동의 창의성을 촉발하도록 설계하여 제기한 산업정책들은 생산적 민주주의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전형이 되었다. 많은 측면에서 이는 지금은 잘 찾아볼 수 없는 활발한 현장조직 활동과 노동의 강력한 교섭력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이 사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과연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해 전망을 어렴풋하게나마 제시한다.

최근에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방어 투쟁 속에서 노조운동가들이 이러한 목적과 노동의 유용함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 활동을 조직했다. 이와 관련된 많은 사례들이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노동조합과 정치인, 공공부문 경영자들의 협동을 통해 지방정부를 거의 민영화 안전지대로 만들었다. 노동조합이 이끌어낸 영국 뉴캐슬 시의회의 변화 경험도 있다. 

이와 더불어 수많은 경험들 속에서, 공적이지만 반드시 금전적이지는 않은 종류의 생산성의 추동자로서 공공부문의 조직된 노동의 역할이 목격된다. 이는 상대적으로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더 큰 교섭력과 포괄적인 조직 형태, 그리고 더 많은 전임활동 시간과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갖기 쉽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노동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협동조합운동의 혁신을 통해서, 그리고 P2P, 분산생산 시스템, 디지털 공유물 등 새로운 종류의 협동을 만들어내는 신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들을 사회적 창의성에 기반한 노동의 자기의식적 조직화 과정에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지가 매우 중요하며, 이로부터 실제적인 이슈들과 딜레마들이 발생한다. 

사회적 협약

한편, 최근에는 ‘기후 일자리’(climate jobs) 문제에 점차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앞에서 재생에너지의 협동적 창출 및 분배가 늘어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기후변화가 미치는 파괴적 위력을 고민하는 일부 노조활동가들은, 풍력발전 터빈, 태양열 온수기, 기타 저(低)탄소경제의 하부구조 건설에 고(高)탄소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게 하자고 요구한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공화국 금속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눔사(Numsa)는 에너지산업의 모든 부문 현장위원들이 참여하는 연구개발집단을 만들었다. 이 연구개발집단 참여자들은 자신들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들의 관련 지식을 공공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또한 국가의 저탄소경제 전략에 수백만의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s) 창출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용자들과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단체교섭안과 캠페인 전술을 개발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다. 2009년 베스타스(Vestas) 풍력발전 터빈 생산공장 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는 노동조합과 환경단체 활동가들에게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곳에서 기후 일자리를 위한 캠페인이 탄력을 받으면서 노동조합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의 협동이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한편, 생산적 민주주의들의 상호 강화가 나타날 수 있는 장소로서 도시(cities)가 또 다른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시를 포함한 여러 도시에서의 캠페인 및 정책 변화가 보여준 것처럼, 다른 도시의 공공부문도 시장화의 압력에 맞서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며 평등한 방향으로 변화해갈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특히 도시 중심지에서는 공공부문이 원청계약자, 사용자, 새로운 의사소통 인프라의 창출자만큼이나 강력한 교섭력을 가진 경제적 행위자가 될 수 있다. 

한 달 전 유엔 인간거주정착센터(UN-Habitat) 의장 조안 클로스(Joan Clos)는 도시화의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라 예견했다.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자기 지역에서 삶과 노동의 질 개선 등 서로 공유하는 가치를 기반으로 함께 조직되어 감에 따라, 도시는 사회적 교섭력이 창출되는 지역적 허브가 될 수 있다. 아직까지 글로벌 기업들은 결국 구체적인 장소에 투자해야 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팔아야 한다. 

노동의 주권

지난 30여 년간 정부가 제시한 산업정책들은 경제적 창의성과 부의 창출의 필수 조건으로서 사유재산 보호의 원칙에 기초해 있었다. 자유시장의 지적인 ‘승리’가 소비에트 블록까지도 강타함에 따라, 민간기업에서 기업가정신과 창의성의 균형이 이뤄진다는 이념은 보편적인 것이 됐다. 이러한 현상은 “실용적인 인간은, 스스로가 어떤 지적인 흐름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믿고 있을지라도, 대부분은 몇몇 죽은 경제학자들의 노예다.”라는 케인스(Keynes)의 언급과 상통한다. 

이러한 언급이 민간기업 투자자들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실제 현실을 충분하게 반영한 것이 아니다. 즉, 자본주의 시장 및 국가를 제외한, 오늘날 공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며 다양한 원천에서 출현하고 있는 경제적 창의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적당하지 않다. 이탈리아 태생의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주카토(Mariana Mazzucato)의 연구는 국가의 창의적인 역할을 제안하고 묘사하는 방향으로 이동해왔다. 이는 옳다. 그런데 국가는 생산자 내부에 창의성을 위한 동맹을 필요로 한다. 신자유주의자뿐만 아니라 케인스주의자들에게 역사적으로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민간기업이었다.

여기서 제기하는 내 주장의 요지는 오늘날 정책결정자들은, 작업장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이건 그렇지 않고 공식 노동시장 밖에서 불안정하게 일하고 있는 이들이건, 수백만 민중들의 경제적 창의성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역량들이 낭비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특정한 형태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 일부는 국가로부터 제공될 수 있고, 또 다른 일부는 지향하는 목적의 공유를 기반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조직을 통해 제공될 수 있다. 이러한 조직에는 노동조합, 협동조합운동, 일부 종교기관과 재단, 그리고 점차 늘어나는 크라우드 펀딩(crowd-funding) 실험과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대부기금 등이 포함된다. 

안정적인 작업장과 관련해서, 우리는 국가가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투쟁에서 노동조합의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해야 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자기 노동의 목적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그 대안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 없이는 폐업이나 정리해고를 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에는 즉각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은 (사회적) 공유자산이다.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종류의 산업전략이 필요하다. 새로운 산업전략은 금전적인 가치에만 종속돼 있지 않고 새로운 가치 창출을 지원하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노동시장의 압력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기본소득 보장과 노동시간 단축 등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들이 실현된다고 해도, 시민들은 임금노동으로 보내는 시간을 낭비라 여기고 그 외 활동시간만을 생산적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이러한 정책들의 실현은 노동시간과 그 외 사회적 활동시간의 관계를 재고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프레임워크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경제발전의 허브로서 도시들(cities)을 실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지역정책을 필요로 한다. 이 정책들에는 공공부문 직접고용 증대, 지역은행 등 협동조합에 대한 지원 등이 포함된다. 지역은행 운영과 관련된 내용은 몬드라곤(Mondragon) 은행의 사례로부터 배울 수 있다. 또한 지역은행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은행들처럼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창의성을 양성하고 실현하는 여타 수단들과 협동조합들의 네트워크의 관계를 조정하고 양자를 지원할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이다.

몬드라곤 사례는 제도의 측면에서 배울 점이 많은 중요한 경험이다. 거기서 제도적 성공이 “자연, 사회, 인간 전체를 변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서 ‘노동의 주권’(sovereignty of labor) 개념의 기초가 됐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재정에 복무하는 노동이 아니라, 역으로 노동과 그 창조적 잠재성에 봉사하는 재정(좀 더 나아간다면 국가제도)의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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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라곤 협동조합운동>

몬드라곤은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에 위치한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마을이다. 동시에 1956년에 설립됐으며 2010년 현재 전 세계 77개의 생산 공장과 9개 지사를 두고 있고 140억 유로의 매출과 8만 4천 명의 고용을 담지하고 있으며 200여 개의 협동조합기업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 글로벌 협동조합 복합체 몬드라곤 회사의 본사가 위치한 곳이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운동은 1941년 이 지역에 부임한 조세(Jose Maria Arizmendi)라는 가톨릭교회 신부가 가난과 실업을 극복하기 위한 학교를 만들자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조세 신부는 14~15세 청소년들에게 기능과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갔다. 1956년 설립된 몬드라곤 회사의 첫 번째 협동조합 기업인 ULGOR은 이 학교 졸업생들이 만든 것이었으며, 이 회사의 안정화를 바탕으로 이후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져 대부분 성공했다. 1959년에는 협동조합 기업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는 노동은행이 만들어졌다. 협동조합으로서 유례없는 몬드라곤의 성공에는 혁신적인 기업가정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노동은행의 역할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운동은 구성원의 협동과 참여를 통한 발전을 모토로 했으며, ‘노동’을 기업경영의 최상의 원칙으로 두고, 사회적 경제 내에서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는 세계조합운동을 지원한다. 몬드라곤 회사에서는 주주총회가 아니라 조합원총회가 최상위 의사결정기관이며, 보수 지급에 있어 최하와 최상이 3배 이상 격차가 나지 않도록 연대 원칙을 적용하고(최근에는 기준이 완화됨), 순이익의 10%까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사회프로젝트 기금에 지원한다.

몬드라곤의 설립 시기 조세 신부와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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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정치경제적 평등뿐만 아니라 문화적 평등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산업정책들의 방향을 간략하게 제시했다. 우리는 단지 완전고용 상태가 아니라,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와 불안정한 행성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서로 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창출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