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사회

비정규직 노동자

admin 0 4,441 2013.05.07 09:22

*************************************************************************************
이 글은 지난 4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www.workingvoice.net)에서 발제한 내용을 수정한 것이다.
*************************************************************************************

나는 직업을 찾고 있었고 드디어 찾았다. 
그러나 하늘은 안다. 내가 지금 얼마나 비참한지를.


1. 양산되는 비정규직, 그리고 노동계의 외면

비정규직 철폐투쟁이 단위사업장 차원의 투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음에도 파업투쟁을 전개한 것은 연대투쟁을 주요한 투쟁방향으로 초기부터 상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화섬(섬유)연맹의 상황과 조건은 실질적인 조직적 투쟁의 구심의 역할을 해 낼 수 있는 역량과 의지가 부족했다. 민주노총 또한 비정규직 철폐를 주요 요구로 선언했지만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으로 승화견인하지 못함으로서 밑(현장단위)으로부터의 연대는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나 상층, 연맹과 민주노총은 연대의 구심이 되지 못하고 지원정도에 머물렀다.

사무금융연맹과 많은 결합을 했고 논의를 했는데, 그 사람들은 보험모집인을 관리하는 입장에 있다. 말로는 보험모집인 조직을 해야한다고 했지만 현장에서 부딪히는 소장이 모집인을 조직한다는 것은 물과 기름같은 상황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 민주노총 위원장이 설계사 조직을 하겠다고 공언해서 기대를 했으나 말뿐이었고 보험모집인들에 대해서 조합원으로 받거나 하는 준비는 전혀 없었다 … 연맹과 부딪히기도 했다. 연맹과 친해져야 좋겠다는 생각은 꿈이었고 꿈을 깼다 … 공장장과 생산노동자의 차이처럼 생명보험노동조합과 보험모집인노조는 대립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노동시장을 넘쳐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우고 있다. 임시·일용직만 하더라도 임금노동자의 50%를 넘고 있으며, 특히 신규 직원의 경우 비정규직의 채용비율은 90%를 육박하고 있다. 오늘의 정규직이 내일의 정규직이라는 보장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제 비정규직이 오히려 정상적인 고용 형태가 된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은 고용의 안정성이나 임금 및 근로조건, 사회보장에서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조직 측면에서도 기존의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에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비정규직의 증대는 노동운동의 쇠퇴, 조직률의 감소 그리고 단체협약 적용대상의 축소를 의미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만 하더라도 비정규직 관련사업은 더이상 강건너 불은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앞의 인용에서 보이듯 민주노총이나 때로는 연맹을 바라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시선은 답답함을 넘어 때로는 분통으로, 때로는 냉소로 나타나고 있다. 현장과 상급단체 사이에서 이처럼 따로 노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디에 문제가 있으며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비정규직 문제가 내일의 노동운동을 위해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할 과제라고 한다면 이러한 의문들은 허투루 넘길 일은 아니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2. 노동시장 유연화의 진전

우리나라의 경우 비정규직은 임시·일용직에 한정하더라도 2000년 현재, 전체 임금노동자의 52.4%를 차지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약 70%가 비정규직에 속하며,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53.6%가 여성인 실정이다. 

tjpark_01_1.gif

상용노동자는 표1에서 보듯이 1995년의 58.1%에서 불과 5년만인 2000년에는 47.6%로 10% 포인트 이상이 줄어들었으며 특히 1998~99년 사이에는 일년만에 무려 6% 포인트가 줄어드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비정규직의 진행속도는 1995년의 42.5%에서 2000년에는 30.3%로 무려 12% 포인트나 줄어들었다. 남성의 경우에는 같은 기간동안 67.8%에서 59.2%로 약 8% 포인트가 감소하였다. 

임시·일용직의 증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나타내는 직접적인 지표이다. 그런데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유연화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유연화가 급속히 증대한 것은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에 바탕한 노동시장 정책과 지구화의 급속한 진전, 그리고 기업경영환경 변화에 기인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외부환경 변화가 최근 들어 가속 페달을 밟게 된 이면에는 IMF 경제위기와 지배정당의 성격, 그리고 노사관계를 둘러싼 세력 판도가 존재한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한 이후 완전고용과 복지국가를 목표로 하는 케인즈주의는 급속히 퇴조하였다. 이러한 케인즈주의를 대신하여 지배 논리로 정착된 구조조정 모델은 공급 중시의 관점에서 경제 행위에 대한 제약과 장애의 제거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의 법적·제도적 개입과 노동조합의 간섭은 노동시장의 구조조정을 저해하는 경직성을 가져왔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노동비용의 상승을 가져와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노동시장으로부터 정부가 철수하고, 나아가 노동조합을 배제시킴으로써 시장의 힘으로 노동시장 균형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한편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구화는 국제투자를 포함한 기업활동, 제품개발의 협력, 생산 및 조달, 시장에서의 초(超)국경화를 지칭한다. 특히 국제경쟁 심화와 해외투자 유치에 대한 관심은 노동시장 측면에서 노동과 노동자 조직에 의해 부과된 경직성을 걸림돌로 인식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구조조정 모델과 맞물리면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가속화했다.

tjpark_02_0.gif

한편 단위 기업으로서는 인건비 절감과 특히 인력 양적 조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보다 자유로운 해고를 위한 법·제도적 조치의 도입과 더불어 비정규직 고용을 선호하였다(표2 참고).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기업환경이 한층 불확실해짐에 따라 경기 변동에 대응한 인력의 양적 조절은 핵심적인 경영사항의 하나로 떠올랐다. 즉 과거에 비해 격동하는 시장환경에 신속하게 적응할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기업의 전반적인 전략은 전례 없는 경제적 불확실성에 대한 관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그 결과가 유연화 증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시장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모델의 추구와 지구화의 진전, 그리고 기업경영환경에서 불확실성 증대는 ‘경쟁적이고 효율적이며, 보다 유연한 노동시장’에 대한 필요성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노동시장 규제를 완화하려는 이러한 힘이 일반성을 지닌다하더라도 각국이 동일한 규제완화 정책을 취한 것도 아니며, 규제완화의 속도와 내용, 그리고 정책 결정과정과 성격에서도 큰 편차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한 국가의 지배적인 경쟁전략과 지배정당의 이념, 그리고 국가 내에서 다양한 이익집단간의 권력자원의 배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국가의 정책결정에는 이익집단간의 갈등이 존재하고, 이러한 갈등은 지배정당의 이념이라는 프리즘을 거쳐 정책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조합 관점에서 보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위기를 돌파하려는 정권의 속성, 그리고 노동의 파편화와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배제가 유연화 진전을 설명하는 전략적 선택요인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3. 유연화가 노사관계에 미치는 효과

노동시장 유연화, 특히 수량적 유연화 증대에 따른 비정규직 양산은 고용 불안이나 노동강도 강화, 저임금과 저생산성을 특징으로 하는 저기능 경제를 초래한다. 수량적 유연성이 높을 경우, 기업은 인적 자원 개발에 과소 투자할 것이며, 피용자들은 기업특수적인 훈련을 수행할 유인이나 조직에 대한 헌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유연화 증대는 소득불균형 확대, 국가복지 후퇴와 노동조합 약화와 더불어 개인주의 경향을 부채질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통합력(social cohesion)을 낮춘다. ‘20 대 80 사회’나 ‘분단 국가’(two nations)라는 표현은 소득분배의 불균형이 증대되면서 나타나는 사회 양분화를 지칭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유연성 증대는 노사관계 측면에서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첫째,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신규조직화의 어려움을 가져오며 조직률 문제를 제기한다. 비정규직의 높은 이동성과 불안정한 고용은, 회사는 물론 노동조합에 대한 귀속의식까지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이 제한된다는 점도 이들을 노동조합으로 끌어들이는 유인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또한 많은 경우, 이들은 기업별 체제에서 노조 결성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중소영세업체에 고용되어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정규직 노조의 가입 대상에서도 배제당한다.  

둘째, 신자유주의에 바탕한 단체교섭 기능 약화는, 한편으로 종업원 대표성 결여(representation gap)로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용자의 경영전권 증대를 초래한다. 즉,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노동조합 약화 또는 배제는 시장의 자유로운 운동이 채우기보다는 경영자의 전권이 메우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셋째, 비정규직의 고용증가는 이로 인한 내부 노동시장의 분단을 초래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존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노동조합으로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합원 사이에서 이익 조정의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비정규직 조합원은 노동조합에서 자신들의 이익이 과소 대표되는 현상을 경험하며, 이는 노동조합 운영에서 비정규직 조합원의 대표성 문제, 보다 넓게는 노동조합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한다. 한편, 기존의 정규직 노동조합 이외에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설립될 경우에는 단체교섭 기구의 구성이나 단체협약 요구의 결정 및 협상결과(특히 임금)의 배분을 둘러싸고 양 노조 사이에 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 양 노조가 서로 다른 상급단체를 갖고 있을 경우 노동조합 사이의 이해 조정 작업은 더욱 복잡해진다.  

넷째, 고용이나 소득 안정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심해지면서 협력과 신뢰의 노사관계 대신 대립적 노사관계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조직 구조가 잘게 나뉘어져 있는 경우, 보다 일반적으로는 국제화된 경쟁환경 속에서 기업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양보교섭이 나타나며, 이는 비정규직의 희생을 전제로 한 정규직의 고용안정이나 소득보장 형태를 띤다. ‘정규직’ 노조와 사용자 사이에 이른바 생산성 연대(production coalition)와 협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증대되는 유연화는 저임금과 저생산성, 용이한 고용조정, 그리고 노동강도의 강화로 특징지어지는, 이른바 ‘유연적 저기능 경제’를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증대는 노동조합 조직률, 단체교섭 그리고 내부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때로는 기존 노조가 자사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노사협조의 양태를 드러내거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간의 심한 이해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대규모·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해 커다란 도전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이를 평가하는 것이 다음 장의 주제다. 

4. 노동조합의 대응의 평가

노동시장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정책 차원의 대응, 사용자에 대한 대응 그리고 노동조합 내부 대응 등으로 나뉘어진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기존 노동조합의 대응은 사용자에 대한 개별적인 대응에 매몰되면서 정책·정치적 차원에서의 배제, 민주노총 차원에서의 ‘원론적인’ 대응, 그리고 인적·물적 자원의 부족을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이 보이는 집단 이기주의는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느낌이다. 

1) 노동조합의 정치·정책적 배제

일반적으로 ‘business unionism’으로 불리는 경제적 조합주의는 ‘많을수록 좋다‘ (the more, the better)라는 말에서도 느껴지듯이, 노동자(조합원)의 경제적 이익 실현에 주력하는 노선을 말한다. 고용 안정과 보다 많은 임금 그리고 나은 근로조건이 노동조합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며, 그것을 실현시키는 수단은 단체교섭이었다. 경제주의가 노동운동에서 정착되는 이면에는 그 수단으로서의 단체교섭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정치적 이슈가 배제된다는 사실과 더불어 기업별 노동조합 체계에서는 조직 노동자의 단기적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임금이나 근로조건의 개선에 국한된 단체교섭은 노동에 대한 정치적 배제(labour exclusion)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기업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투쟁은 경제적 전투성(economic militancy)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경제주의의 대두는 파편화 된 노동조합 조직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상태에서 조직 보존은 조합원의 단기적인, 손으로 만져지는 성과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또한 상급단체 역시 기업별 체제에서 조직 내부로는 하급 단위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단기적·경제적 목표에 집착하게 만든다.  

노동조합이 겪는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배제는 사회적 합의(social dialogue)전략의 부재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서구에서 노사정 합의시스템은 시장지향적 시스템에 대한 대안이자 계승자였다. 거시경제 차원에서 코프라티즘이 정착되지 못한 경우, 기업별 노조체제에서 조직 노동자들은 경제·정치적 교환과정에서 실제 배제당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 역시 정책 차원에 접근하지 못할 경우, 이는 결국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양산된 비정규직에 대한 임시방편·사후(事後)·부분 대응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권위주의 노동통제에 대한 조직 노동의 정치적 대응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불참은 ‘스스로 선택한 배제’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 이면에는 노동조합 내부의 치열한 ‘정치’가 존재하고, 이는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민주노총의 방침 부재로 나타나고 있다. 지도부 개인의 입장이 민주노총 방침으로 둔갑하면서, 이를 합리화하는 각종 논리와 발언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노조 민주주의 부재를 드러낼 뿐이다. 

(2) 민주노총의 ‘원론적인’ 대응

민주노총은 2000년 비정규직 문제를 3대 요구안의 하나로 확정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여론화시키는 한편,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조결성 지원, 법 개정투쟁을 벌여왔다. 특히 2000년 1월 정기대의원 대회에서는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특별결의문’을 채택하고, 이를 위해 5억원 모금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조직부서로는 조직쟁의실 산하의 조직2국과 더불어 ‘미조직 특위’를 추가로 설치, 이를 전담하도록 하고, 지역본부와 연맹에서도 미조직 특위를 설치하고 담당자를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은 참여연대나 한국 여성단체 연합 등 32개 시민사회단체와 ‘비정규 공대위’를 구성하여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4대 사회보험 보장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민주노총은 “2000년 사업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남긴 것은 미조직 조직화 사업이다…아울러 비정규직 문제가 부각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문제제기와 투쟁을 지속해 나간 것도 큰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자평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왜 앞서 밝혔듯이 민주노총의 노력은 기껏해야 내부자(insiders)의 ‘체면치례용 면피‘쯤으로 비쳐지며 현장에서 바라보는 민주노총에 대한 인식과는 현격한 거리를 드러내는가?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는 듯이 보인다. 첫째, 바로 위에서 살펴보았듯 비정규직 문제는 근본적으로 지배정당의 이념의 문제이자, 그 표현으로서 거시경제 정책의 결과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역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정책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 스스로 방기하는 측면이 크다. 민주노총이 설혹 비정규직 투쟁에 적극 결합한다 하더라도 정치적·정책적 해결이 선결되지 않으면 결국 미봉적이고 부분적인 대응이 될 수밖에 없다. 

둘째, 비정규직에 대한 민주노총의 관심이 연맹이나 단위기업노조 차원에서 내면화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2001년 임단협 투쟁지침에 의하면, 올 상반기 민주노총 주요 요구의 하나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차별 철폐’로 분명하게 못박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정규직)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것과 단체협약 적용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침은 여전히 당위 수준일 뿐 단위노조 차원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상급단체 차원에서 수준 높은 결의와 더불어 ‘물질적인’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한, 이는 어디까지나 말뿐인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는 정책 대안의 부재가 낳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주체적 실천의 부재가 낳는 문제이기도 하다. 

셋째,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에 기울이는 관심의 정도에 대해서도 수상쩍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즉, 원칙론에 얽매여 현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라는 목표를 꼼꼼하게 들여다보자. 어느 것이 우선인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그것이 비록 바람직할지라도 이 요구가 현실성을 갖는지는 별도의 분석을 요한다. 기존의 정규직화 전략이 커다란 성과를 내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비정규직 확대 추세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부분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패배가 예정되어 있는 투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술적 요구를 전략적 요구로 높임으로써 운신의 폭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독자 노조를 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의 조합원 가입이 아닌 독자 노조의 설립에 대해서는 제대로 거론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원칙론은 민주노총 차원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조직화 전략의 부재로 나타난다. ‘1기업 1노조’원칙의 훼손에 따른 조합간의 갈등조정 문제뿐 아니라 지역일반노조와 산별노조(연맹), 여성노조 그리고 민주노총 지역지부와의 관계 문제가 상호중첩해 나타나는 것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원칙의 허구성은 기업내 복수노조의 설립에 대한 민주노총의 입장과 연결된다. 

최근 한국노총이 참여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는 전임자 임금지급과 더불어 기업단위 복수노조를 불허하는 조항을 5년간 유예한다는 안을 확정짓고, 국회는 이를 여야합의로 통과시켰다. 이에 민주노총은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하였으며, ILO는 본회의를 열어 한국정부에 복수노조 합법화를 위한 절차를 가속화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노사정 합의의 당사자인 한국노총은 예외라 하더라도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독자 노조를 포함한 기업내 복수노조의 설립에 동의하고 있는 지, 그리고 그 정신이 법률 개정 이전에 산하 노조에서 실현되고 있는 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사실 민주노총은 산하 노조에 ‘비정규직의 조합원 인정’ 혹은 ‘노조 규약의 조직 대상에서 비정규직 제외’를 결의하거나 최소한 권고함으로써 단위사업장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사실상’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이는 법의 유예나 재개정과 관계없이,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민주노총이 산하 노조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은 인정하더라도, 최소한 비정규직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산하 노조에 대해 총연맹이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이는 ‘무원칙한 내부정치(union politics)에 매몰‘된 것이라는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이 지난 해 결의한 5억원의 모금결정은 2000년 12월 현재 8,600만원의 실적에 그치고 있다. 이 사실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민주노총이 얼마만큼의 인적·물적인 실천을 기울이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과 직결된다. 왜냐하면, 민주노총이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자원의 ‘태생적인 한계’나 비정규직에 대한 조직 문화의 부재뿐 아니라 기존 자원의 재배분 역시 노동조합의 ‘내부정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산하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에 대해 민주노총으로서는 ‘연대사 이상의 연대’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한편 민주노총의 노력과는 별개로 단위노조에서 보이고 있는 기득권 유지 노력은 별도의 분석을 요한다). 

(3) 단위 노동조합의 집단 이기주의적 대응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대응은 기존 노조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기존의 (정규직)노조가 존재하는 경우 그 대응은 ① 비정규직을  노조원으로 가입시키거나, ② 기존노조의 가입대상으로부터 비정규직을 제외시켜 독자노조 설립의 길을 터주거나, ③ 노조 바깥에 방치하는 것 등으로 나뉘어진다.   

한 조사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사업체의 경우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정규직이 65.6%에 이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1~2%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들은 기존 노동조합의 조직활동 결과로 가입한 사람들이라기보다 스스로 노동조합을 결성한 사람들이다. 더욱이 영세사업체의 경우에는 노동조합 가입이 전무한 실정이다. 당연히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체까지 포함하면, 그 수치는 거의 영(0)에 가까울 것이다.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이들을 사용하지 말도록 사용자에게 강제하는 방법과, 이들을 인정한 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고용과 임금을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노동조합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이들을 노동조합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사용자 주도로 유연성이 도입될 때 보다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기도 하다. 따라서 비정규직을 노동조합에 가입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규직 조합원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을 가로막는 또 다른 걸림돌은 단체협약상 이들이 조합원의 가입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역할(특히 고용안정과 관련하여)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노동조합이 이들의 조직화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요인이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체로 분산되어 있으며, 이동이 심하다는 점도 조직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 결과 사업장에서 부닥치는 문제에 대해 고충처리 등의 서비스 제공에 머무르고 만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핵심은 정규직 조합원의 반응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경우 스스로의 고용에 대한 안전판이 없어진다고 느끼거나, 임금이라는 파이를 비정규직과 동등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의 지휘 감독을 받아 일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노조 결성이나 노조 가입은 정규직 조합원의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점이 작용하기도 한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지 않을 경우에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별도로 설립할 수 있도록 기존 노동조합의 조직 대상에서 비정규직을 삭제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으로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사측의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차별적인 탄압과 정규직 노동조합의 외면으로 특징지워 진다. 

만일 기존 노동조합이 복수노조의 설립마저 거부할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통해 이익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러한 정규직 노동조합의 반응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아 사용자의 전횡 앞에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실, 불안정 노동자들을 노동조합 외부에 방치할 경우, 그 핵심에는 정규직 노동조합과 사용자와의 ‘협력’(partnership)이 자리잡고 있다. 사용자들은 이들을 저임금의 유연한 노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파업 시 대체근로의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노사간 공모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결과적으로 정규직 노조는 기존 조합원의 보호에 매달린 나머지 비정규직에 대한 비용을 비정규직 개인이나 사회 전체로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조직되어있지 않는 경우는 대부분 기업 규모가 영세하다. 이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동조합의 조직 형태가 갖는 한계가 지적된다. 즉 산별노조 또는 지역노조로서 기업별 노동조합의 틀을 뛰어넘어 조직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산별노조가 저절로 불안정 노동자의 조직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필요 조건으로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할 뿐이다.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서는 물적·인적 자원의 투자가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조직 문화의 형성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정규직 조직화와 관련하여 지적할 사항은 비정규직의 경우 성별 편의성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이는 비정규직 조직화에 있어 여성주의적 접근이 필요함을 말한다.  

이상으로 비정규직 확산에 대한 기존의 노동조합 운동이 갖는 한계를 파편화 된 노동조합의 조직구조 및 정치적 영향력의 부재, 총연맹의 역량 부족과 무관심 그리고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의 집단 이기주의적 대응에서 살펴보았다. 특히 민주노총의 ‘내부정치’가 노동조합의 정치적 배제와 내부 자원의 배분 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대안 모색은 이러한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5.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신자유주의 및 지구화의 진전이 국가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향후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방안을 마련하는데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진전됨에 따라 ‘다국적 기업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세계 금융시장의 통합이 가속화됨에 따라 국가는 빈 껍데기가 되었다’는 주장은 신자유주의의 진전 과정에서 수행하는 국가의 역할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지구화의 진전으로 인해 국민국가(nation state)의 독립성은 축소되겠지만, 이러한 논의가 국가의 기능 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후기 포드주의로 이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비록 과도기적이더라도 국가 개입의 증대(rolling forward)를 가져온다. 즉 낡은 형태의 국가 개입은 유지되는 것이다. 실제 국가는 신자유주의 구축에 적극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지구촌’의 총아인 다국적 기업 역시 특정국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Waddington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발전은 가끔 국가의 독립적인 역할의 축소와 연계되지만 신자유주의 역시 적극적인 국가 규제의 한 형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많은 국제 기관들은 초국가적이라기보다 국가간 조직이며, 따라서 국가의 핵심적인 역할은 유지된다… 국제 기구에 참여함으로써 국가의 독립성은 축소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는 그러한 시스템 운영에 핵심적이다. 더욱이 국가는 법의 원천으로서 그리고 실현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에 의해 추구되는 광범위한 경제정책은 실업 및 투자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노동시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의 진전은 시장에서의 국가 철수를 목표로 하지만, 그 과정은 오히려 국가 개입을 강화하며, 지구화 역시 국가의 독립성 축소라는 결과를 낳지만 그 진전을 위해서는 국가 주도를 필요로 하는 모순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출현이 국가의 거시경제 정책과 노동시장 정책과 밀접하게 관련을 가진다면, 그 대응의 중심에는 국가가 놓일 수밖에 없다. 이는 노동시장에 대한 법·제도적인 규제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노동운동은 경제적 조합주의에 매몰되어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하여 앞에서 지적한 대목이다. 물론 노동조합의 대응이 여기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앞의 평가에서도 밝혔듯이 상급 단위의 면피용 대응이나 정규직 노동조합이 보이는 기득권 옹호 논리, 그리고 노동조합의 조직구조 및 운영에서의 문제 등도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살펴본다. 

(1) 정치적·정책적 참여의 확보

작업장을 뛰어넘는 대응의 필요성은 국가의 역할이 증대됨에 따라 커진다. 비정규 노동자 확산이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이나 노동시장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일 뿐 아니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바탕을 둔 노동조건 개선도 결국은 법률적 해결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적 의사결정 과정에의 참여는 가장 핵심적인 접근 방식의 하나가 된다. 사실 조직화에 대한 법·제도·구조적 제약의 철폐를 포함하여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법적인 보호는 그것이 법률 개정 뿐 아니라 정책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과정의 일환을 이룬다. 

노동조합이 현 상황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나아가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노사정위원회를 길게 다룰 수는 없지만, 이른바 사회 협약의 정치는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장기적으로 ‘정치적 교환’에 기초해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사회 협약의 정치가 출현하고 안정화되기 어려운 구조다. 노동조합의 낮은 조직률과 기업별 노동조합체계, 취약한 진보정당과 총연맹의 분열은 코포라티즘 기구의 유효성에 의문을 제공한다. 노사간의 장기간에 걸친 대립 구도와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배제 역시 협약 정치의 출현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특히 제1기, 제2기 노사정위원회를 거치면서 정부의 약속 불이행과 구조조정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활용은 노정간의 불신을 넘어 노사정위원회 자체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켜 노사정위원회 무용론, 심지어 노사정위원회 해체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코포라티즘은 기본적으로 조직 노동이 정치적 힘을 동원하여 자본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정치적 조합주의의 연장이자, 그 일부분을 이룬다. 이러한 사회 협의의 정치는 먼저 국가가 자본과 노동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대변하는 조직을 인정하고 교섭한다는 의미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용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실 기업별 노조 차원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에 정책적으로 개입하고 이를 사회 쟁점으로 만들어 내는데 노사정위원회는 최소한 ‘활용’ 수준의 유효성을 제공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정은 (미시 차원이 아니라) 거시·정치적 대응을, (사후 대응이 아니라) 사전 개입의 수단을 스스로 놓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말한다.

“법·제도화와 관련하여 수많은 토론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치적 쟁점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사정위원회에서 현재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민주노총은 입장 개진이나 여론 형성의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민주노총으로서는 토론회가 유일한 실천이었다. 내부의 정치적 부담이 중요하다보니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 비정규직의 제도개선과 관련하여 노사정위에서 공식 안이 나온다는데, 그 때 민주노총은 무엇을 할 것인가. 뒷북이나 치다 한국노총이나 노사정위 앞에 가서 항의집회나 할 것인가. 노정교섭을 요구하며 노사정위 활동에는 손 놓고 있으면서도 노사정위원회의 진행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만약 법개정을 복수노조처럼 처리해버리면 어떡할 것인가?”

더욱이 사회적 합의는 노동조합 운동을 탈정치화 시키려고 한 정부의 기존 노력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성격을 띤다. 실제로 코포라티즘은 자본주의의 특수 단계에서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정치 행위다. 즉 노사정위원회는 정치적 이슈를 둘러싸고 전국적 대립전선을 마련해줄 가능성을 지닌다. 노동조합이 분산되어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이해관계를 축으로 노동조합의 투쟁력을 결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조합은 힘 관계에서 정부로부터 밀리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의 힘을 끌어 모으지 못함으로써 다시 한번 밀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사정위원회 참여는 노동조합의 조직체계가 파편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상급단체의 기능을 강화하고 집중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점에서 노사정 위원회는 그것이 비록 IMF라는 외적 조건에 의해 강제되어 구성되었다 하더라도 적극 고민할 필요가 있다. 

(2) 상급단위의 책임있는 대응

민주노총으로서 정치적·정책적 대응은 단위 노조의 지원에 앞서는 고유한 역할의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민주노총으로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만들어 내기 위해 공장 문밖으로 나가는 사회 연대 행위도 총연맹만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라 할 것이다. 이 장에서는 민주노총의 내부 기능에 주목하여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본다.

먼저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라는 병렬적인 요구의 나열이 아닌 집중적인 요구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의 출발이 항상 그러했듯이 조직화야말로 전술적 요구를 달성하는 수단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나 차별 철폐도 그것이 조직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정규직 중심의 사고에서 나오는 시혜의 베풂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비정규직 조직화라는 시각을 놓쳤을 때, 대부분의 비정규직이 영세 중소기업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민주노총의 이 요구는 결국 조직노동자 중심의 사고를 반영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조직화와 관련해서는 비정규직의 노조가입 뿐 아니라 독자노조의 설립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단위노조간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원칙과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단위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중앙의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산별노조 건설 뿐 아니라 산별노조(연맹)-단위노조로 연결되는 노동조합 조직 체계에서 지역일반노조나 여성노조 등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는 노동조합의 새로운 조직발전 전망의 수립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고려나 복수노조에 대한 대응뿐 아니라 내부 자원의 재분배 역시 민주노총의 내부 정치와 관련되는 지점이다. 내부의 파벌적인 입장 차이뿐 아니라 현실적인 내부 권력 배분이 직접 자원 배분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그 결과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조직화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다면, 중요한 것은 정식화된 요구수준에 머물 것이 아니라 투쟁 기조를 청사진으로 제시하고 그에 따라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다. 이는 일회적인 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사업의 일관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다. 예를 들어 한 활동가의 다음 지적은 참고할 지점이 있다.

“민주노총은 스트레오타입(상투적)이다. 그러다가 결국은 투쟁이 중심이 되는 ‘투쟁환원주의’로 빠져버린다. 그러면 투쟁 기조라도 제대로 세웠는가? 예를 들어, 지난해의 노동법 개정투쟁만 하더라도 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정식화된 요구와 ‘강령’ 수준에 머무를 뿐 밑으로 전파하며 몰아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그때 그때의 투쟁에 매몰되면서 일관성을 상실하고 있다. 투쟁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실 담당자와 몇 마디만 논의하면 밑천이 드러나 버리는 수준이 우리 정책의 현실이다. 흐름을 잡아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다. 정보력 부재와 더불어 대응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빵빵한 거시정책은 있는가? 투쟁 투쟁하지만 투쟁은 조합원외에 누가 하는가?” 

민주노총이 자평에도 불구하고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민주노총의 책임 있는 실천 부재 때문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민주노총의 책임 방기는 현장 정규직 노동조합의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사실상의’ 방치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3) 정규직 이기주의의 극복 

비정규직 조직화에서 일차적인 대상은 기존의 정규직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이다. 그런데 비정규직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조합 규약이나 단체협약상 비정규직에 대한 제한 규정이 없어야 한다. 홍주환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단체협약과 노조 규약에 모두 비정규직을 가입대상으로 명시한 노조가 전체의 7.1%인 반면, 단체협약이나 노조규약 중 어느 하나라도 비정규직을 제외하고 있는 경우는 51.5%였다. 노동조합 측에서 비정규직을 가입 대상으로 하지 않는 이유는 ① 퇴사·계약만료 등의 이유로 조합원 자격을 계속 유지하기 힘들다(31%), ②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원의 요구를 책임지고 들어줄 수 없다(25%)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노조가입 의사는 상당히 높은 편 (70%)이며, 가입 자격이 있는 경우 가입하겠다는 비율은 90%로 나타나고 있다. ①의 경우 비정규직의 신분상 불안정성이 노조가입 허용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나타내는 지점이다. 그러나 같은 조사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평균근속연수는 4년을 넘고 있으며, 주당 근로시간도 약 47시간으로 정규직과 비슷하다. 즉 비정규직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상용직화 되어 있으며, 다만 사용자의 유연화 전략에 의해 인건비 절감과 고용조정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는 주장과 관련하여, 비정규직 역시 노동조합이 책임지고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75%)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의 노조가입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임금인상과 고용안정을 둘러싼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에 다름 아니다. 

기존의 정규직 노동조합이 갖고 있는 기득권 옹호 심리는 경제주의나 기업별 체제뿐 아니라 일찍이 직업별노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인 해결방법을 모색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기득권 옹호가 수세적으로 스스로의 이익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경우와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비정규직의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상급단체의 역할과 수준 높은 결의, 자원·교육의 배치, 그리고 조직발전 방안의 제시 등은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다.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고, 이들에게 대표성을 부여하는 방법은 노조 민주주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그러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지니지 않은 정규직 노조에게 모든 도덕적 책임을 씌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상급단체의 지원과 사회 쟁점화, 정치적 영향력의 발휘를 통해 문제를 ‘정규직에게 최대한 덜 불리하게’, ‘노동운동의 대의에 따라’ 풀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비정규직은 직장 내의 열악한 지위나 규모의 소수라는 측면으로 인해 노조 밖에 방치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의 독자노조 설립을 허용하더라도 연대와 지원을 포기한다면, 이들 노동조합의 생존율은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자본의 분할지배 전략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4) 조직구조 및 운영의 측면에서

노동조합의 조직체계 및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는 조직적으로 파편적인 구조를 극복하는 과제와 더불어 조직운영에서 비정규직의 대표성 보장이라는 과제를 제기한다. 먼저 파편화된 조직구조의 극복은 산업별 노동조합 체제로의 재편뿐 아니라, 총연맹이나 연맹간 연대전선의 구축을 의미한다. 비정규직 조직화는 노력은 많이 드는 반면, 단기적인 성과는 기대하기 힘든 분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인적·물적 자원의 투자는 자칫 조직 내부의 반발에 부닥칠 수 있다. 따라서 핵심 노조원으로부터 이전에는 주변적이었던 노조원으로 자원을 재분배할 수 있도록 조합 내부의 의사결정 기구를 중앙집중화 시키는 일은 증대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에서 핵심을 이루는 지점이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조직 구조의 집중화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관심 증대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문화의 개편을 필요로 한다면 그 중심에는 대기업의 정규 노동자로 대변되는 ‘가진’ 노동자가 갖는 집단 이기주의의 극복이 놓여 있는 것이다. 

산업별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강조는 비록 그것이 집중화의 장점을 실현시킨다 하더라도 관료화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이는 자칫 전체 조직력의 동원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정치적 노동조합주의는 국가의 정치기구 수준이나 기업의 노동과정 수준에서 조직된 노동이 자본에 대항하여 힘을 행사하려는 노동운동 전략을 말한다. 이는 전국 수준에서 공공정책의 결정 과정에 대한 참여를 의미할 뿐 아니라, 지방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