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상근활동가’라는 직업이 자랑스러워지게!

노동사회

‘노동조합 상근활동가’라는 직업이 자랑스러워지게!

편집국 0 4,832 2013.05.19 03:19

얼마 전 2007년부터 시행될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때 어느 현장노동자가 발제자에게 질문한 내용을 들으며 느꼈던 생각이 ‘과연 노동조합 상근활동가는 무엇인가’였다. 그 노동자의 질문은 대략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이 금지되어 상근활동가들의 급여가 축소되더라도 ‘신념’을 가지고 운동을 하는 이들이기에 큰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었다. 과연 노동조합에 채용되어 상근활동가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임금이나 처우는 잘해주면 좋고, 못해줘도 이겨내야 하는 부차적인 문제인 것일까? ‘노동조합 상근활동가’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신념의 강자’이기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직업인으로서의 노동조합 채용직 상근활동가에 대한 고민이 다시금 머릿속을 맴돌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노동조합에도 기업이나 공무원처럼 ‘순직자’ 들이 있다. 현재 지나친 업무과다로 인한 과로사, 업무 중의 교통사고 등으로 운명을 달리한 분들에 대한 추모비 건립이 한국노총에서 추진되고 있는데, 이런 시도들도 상근활동가들에 대한 위상을 제고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기억해야 할 이름들

지난 2000년 5월 한국노총 노사대책국장으로 ‘노정합의사항 관철 및 생존권 사수를 위한 3단계 투쟁’의 상황실 팀장으로 활동 중이던 최국중 동지가 과로사로 순직한 것을 계기로 ‘노동사랑 최국중동지 추모사업회(이하 추모사업회)’가 결성된다. 추모사업회에서는 최국중동지의 추모비 건립을 논의하면서 차제에 한국노총 각급조직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희생한 ‘순직 노동운동가’를 추모할 수 있는 조형물을 건립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게 된다. 이후 노총 및 산하 단위노조 모금과 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주점, 문화행사 등을 통해 ‘순직 노동운동가 추모비’ 건립을 추진해왔다. 

마침 세계적으로 알려진 도조예술가 김구한 선생이 추모비 제작에 흔쾌히 승낙을 해주면서 세계최대의 도조작품 추모비가 2001년에 제작되었다. 이 추모비는 노동운동가의 두 손이 아름다운 조국 산하를 보듬고 있는 모습을 상감기법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실천하는 조직인’이라는 글씨를 새겨 추모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108_chumo_01.jpg2000년부터 추모사업회를 결성해 순직 노동운동가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임준택 화학노련 정책실장은 “노동운동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에 대한 추억과 기억일 텐데, 지금까지 한국노총 내에서 개별적 추모사업회 등은 있었지만 전체 순직자를 기리는 사업은 전무했었다. 먼저가 동지들이 뜻을 기리고, 남아있는 동지들간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또 한국노총이 운동성을 강화해 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희생되신 분들에 대한 추모사업을 시작해야 할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했다”며 추진 배경을 설명한다.

이런 취지에도 불구하고 2001년에 완성된 추모비 건립은 5년의 시간을 끌고 있다. 한국노총 내에 순직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해서기도 하지만, 추모비 받침돌에 새겨질 순직자들의 명단을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노총 첫 ‘열사’로 기록된 김태환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열사와 순직동지들에 대한 여론이 조성되면서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추모사업회는 운영위원회를 거쳐 한국노총에 재건의를했다. 이후 이용득 위원장이 강력한 추진의사를 밝힘으로써 이제 그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완성된 <순직 노동운동가 추모비> - 출처:노동사랑 최국중동지 추모사업회

상근활동가 위상 높이는 계기가 되길

순직 노동운동가 추모비가 상근활동가들에게 작은 위안은 줄지라도 그들의 눈앞에 닥쳐있는 현실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2005년 한국노총에 김태환 열사가 있었다면 다른 한쪽에 민한홍 동지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현장에 투신한 후 청춘을 받쳤던 운동조직에서 ‘불명예 해고’를 당한 후 1인시위 투쟁까지 벌이며 맞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죽음은 많은 한국노총 내 상근활동가들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사무총국 내 한 사람은 “채용직 활동가들은 노동운동의 영원한 희생물”이라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내뱉었을까. 

‘노동해방’의 일념으로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에 투신해 다른 노동동지들의 임금협상에 개입해 한 푼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싸우지만 정작 자신은 나날이 증가하는 생활고와, 휴일도 없이 파업사업장으로 대외활동으로 뛰어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가족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아간다. 또한 가장 자주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할 조직에서 겪는 상명하복식 의사전달 과정과 힘들여 기획해 놓은 사안에 의사결정 주체로 참여할 수 없는 현실은 상근활동가들을 좌절의 나락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한 산별연맹에 근무하는 활동가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활동가 재생산 구조에 대해 “단위 노동조합이나 산별연맹 등에 필요한 사람은 많은데 자질을 갖춘 적절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자리를 구하는 사람 역시 스스로 기대치가 있기 마련인데 처우나 위상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다보니 사람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며 푸념을 털어 놓는다. 

순직 노동운동가 추모비 건립을 통해 이런 문제점들이 일시에 해결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차제에 한국노총에서 노동조합 상근활동가들에 대한 위상을 제고하는 데 작은 도움은 될 것이다. 추모비가 세워질 곳이 한국노총 교육원이라고 하니 교육원을 찾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작은 외침을 울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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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순직노동운동가 추천 명단(2월말 현재)
*최국중(한국노총 노사대책국장): 2000년 투쟁상황실 팀장으로 활동 중 운명.
*김태환(한국노총 충주지역지부 의장): 1966년 출생. 2005년 6월14일 레미콘노동자 노동권 쟁취 투쟁 중 사측이 고용한 대체차량에 의해 운명.
*김경숙(전국섬유노동조합 YH무역지부): 1979년 YH무역지부의 공장폐업 및 체불임금에 항의하는 신민당사 점거 농성 중 8월11일 경찰의 강제해산과 회사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당사에서 투신, 운명.
*이경선(섬유노조 경북지부쟁의부장): 1979년 9월15일 쌍마섬유 투쟁지원 중 괴한의 피습으로 운명.
*최태욱(주신기업 노조위원장): 1990년 7월8일 사측의 노조파괴책동과 부당해고에 항의해 분신 후 7월14일 운명.
*성완희(강원산업노조): 1988년 6월29일 부당해고 노동자 복직 및 노동운동 탄압분쇄를 요구하며 분신, 7월9일 운명.
*김길동(흥신노동조합): 2000년 10월10일 노사단체교섭 중 노동자 권익 및 노동인권 쟁취를 요구하며 분신, 운명.
*김익준(여수종합항운노조): 2005년 (주)남해화학과의 단체협약 및 임금협상 투쟁에서 협상위원으로 천막농성 도중 운명.
*모연창(한국노총 충남지역본부 의장): 2002년 1월17일 한국노총 충남본부 의장 재임중 운명.
*민한홍(화학노련 조사교육부장): 2005년 경인지역 화학일반노조 결성 후 활동 중 10월22일 운명.
*이후준(연합노련 교육선전부장): 1992년 연합노련 노보 운반작업 후 귀가해 휴식 중 심장마비로 운명.
*박종만(서울 민경교통노조): 1984년 사측의 노조사무실 폐쇄 및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는 단식철야농성 중 분신, 운명.
*최성조(서울 남성흥진노조): 1989년 8월5일 완전월급제 쟁취 총파업 투쟁 중 구사대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아 사망.
*김처칠(서울 합동물산노조): 1991년 8월22일 장기파업 투쟁 중 일부조합원들이 이탈하자 한강에 투신, 운명.
*이석구(서울 조흥택시노조): 1987년 9월2일 서울지역 단체협약체결을 위한 공동교섭진행과정에서 사측의 부당행위 근절과 택시제도개선을 호소하며 순직 운명.
*변형진(서울 삼환택시노조): 1986년 4월30일 부당해고 복직투쟁 중 분신, 5월1일 운명.
*한광로(제주 국제운수노조): 1998년 6월10일 택시제도개선과 운송수입금전액관리를 주장하며 제주도청 앞에서 분신, 6월21일 사망.
*성구중(서울 경안운수노조): 1998년 5월5일 택시근로자 생계비보장을 촉구하며 노조사무실에서 분신, 5월8일 운명.
*이대건(경남 우성택시노조): 1988년 1월6일 단체교섭 결렬로 파업농성 19일째 사측의 무성의한 태도와 단협위반에 항의하며 분신, 운명.
*김장수(인천 경기교통노조): 1988년 3월1일 부당해고 뒤 해고철회 및 노조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 분신, 운명.
*장용훈(전남 현대교통노조): 1988년 5월24일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탄압에 항의하며 분신, 운명.
*석광수(인천 공성교통노조): 1991년 6월14일 인천지역 임투과정에서 차량시위 중 경찰탄압과 사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항의하며 분신, 운명.

※ 이 명단은 최종 확정된 명단은 아니며 각 연맹에서 추천된 명단입니다. 최종 명단은 지난 2월21일 산별대표자회의에서 결정될 예정이었으나 대의원대회 이후로 연기하자는 의견에 따라 3월중 산별대표자회에서 결정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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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