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그레이스

노동사회

오! 그레이스

admin 0 5,158 2013.05.07 10:46

<풀몬티> <빌리 엘리어트> 등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받아온 최근 영국 영화들과 함께 화려함이나 현란함에 지친 가슴을 달래주며 또 하나의 기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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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날 갑자기 

바다와 따뜻한 기후, 낙천적인 사람들로 유명한 영국 콘월 지방. 난초 키우기가 유일한 즐거움인 평범한 중산층 주부 그레이스(Brenda Blethyn)가 과부가 된다. 남편이 낙하산도 없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자살의 이유는 전혀 짐작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혼자 덩그러니 던져진 세상의 풍경은 남편이 살아 있을 때와는 자못 다르다. 그레이스가 받은 유산은 30만 파운드(6억 원)의 부채, 끝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청구서, 날마다 돌아오는 부도 수표의 행렬. 덧붙여 감쪽같이 몰랐던 정부(情夫)의 존재까지! 

그레이스가 굳건하다고 믿고 딛고 있던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산산 조각나 버린 것이다. 파산 상태의 그레이스는 월급을 줄 수 없어 정원사 매튜(Craig Ferguson)까지 해고하지만, 어느 날 매튜가 자신의 힘으로 살릴 수 없다며 들고 온 수상쩍은 식물 한 뿌리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는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경매로 집까지 넘어 갈 위기에 처하자, '가장 위대한 원예가' 그레이스는 매튜가 들고 온 대마초가 엄청나게 비싼 식물임을 알게되고, 마침내 대량 재배하기로 결심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그녀는 매튜까지 이 '한 탕'에 끌어들인다. 티파티와 난초, 드넓은 저택으로 구성된 순진하고 얌전한 주부 그레이스의 세상이, 조직 범죄와 잠재적 마약 사범으로의 대전환을 맞이한 것이다. 원예가로서의 타고난 재능과 갈고 닦은 식견을 십분 발휘하여 최상급 품의 대마초를 대량 재배하는 데 성공한 그들. 하지만 문제는 판로를 확보하는 일이다. 물건이 물건인 만큼 시장에 갖다 팔 수는 없는 노릇이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기 때문이다. 애인 닉키(Valeri Edmond)의 임신으로 매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게 되자, 그레이스는 홀홀 단신 마약 딜러인 마피아 조직을 찾기 위해 음험한 런던의 뒷골목으로 몸소 진출하는데… …. 

2. 사람이 살고 있었네!

우리말 제목인 <오! 그레이스>에서 빛이 좀 바래긴 했지만, 이 영화의 원제인 에서 암시하는 것은 그레이스를 구출해내는 과정이고, 그 주체는 시종일관 그레이스를 아끼고 사랑하며, 그녀의 구원을 도모하는 동네 사람들이다. 그레이스는 영화 내내 대마를 재배하는 자신의 범죄가 매튜와의 공조 하에 저질러진 단독범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관객의 눈에 보이는 영화 속 풍경은 온 동네 사람들이 합세해서 저지르는 완벽한 공동 범죄다.

그레이스만큼이나 평범하지만, 정이 많고 너그러운 이 동네 사람들은 그레이스가 대마초를 재배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그녀가 놓인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임을 잘 알므로 단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범죄 행위를 묵인·방조하며, 조력조차 아끼지 않는다. 마을 신부는 자신의 교회 뜰이 애초의 모종이 심어져 있던 비밀의 화원임을 알고 있지만, 하늘의 법이 사람의 법과는 달라야 함을 이해하는 듯 말이 없다. 마을의 의사는 자신도 마리화나의 비밀스러운 일탈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그레이스의 런던 행을 매튜와 함께 따라 나선다. 가게 주인은 파산한 그녀에게 아스피린 한 곽이 5펜스라고 빡빡 우겨대고, 자선기금을 모으던 여인은 그레이스를 보자 모금함을 뒤로 감춰버린다.

영화 속 그레이스가 파산한 과부라는 한심한 처지를 '팔려면 제품을 알아야 한다'라는 명분으로 피워 문 마리화나 한 대로 날려 버리듯, 이 동네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악덕과 미덕의 기준 자체가 모호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가 범죄를 다루고 있음에도 미담의 정겨운 스토리 라인을 가질 수 있는 건, 이렇게 법이라는 권위가 닿을 수 없는 영역에서 사람들이 펼치는 공조와 공동체적 선의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레이스 남편의 장례식에서 신부가 기도하는 내용에 '우리가 저지른 모든 악덕과 행하지 않은 모든 미덕을 잊지 않게 해 달라'는 말처럼 동네 사람들은 그레이스가 저지르는 악덕을 방조함으로써 '미덕'을 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도탄에 빠진 이웃을 위해 행할 수 있는 미덕이 무엇인지를, 이 영화는 마리화나라는 다분히 범죄적인 소재를 통해 질문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이 걸린 절박한 문제에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들어 설 자리가 과연 있기는 한가'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물론, 마리화나라는 일탈적인 소재가 던지는 매혹과, 일말의 갈등도 없이 똘똘 뭉쳐 법이라는 권위를 무시해버리는 그들의 즐거운 저항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이 모든 걸 압도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행되는 공권력과 법, 수많은 금기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 사회의 답답함과 이들의 즐거운 일탈은 정확한 대척점에 서 있다. 여하한 이유로든 파업은 나쁜 것이고, 여성 운전자는 '여자가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라는 삿대질을 피하기 힘들며, 동성애를 커밍 아웃(coming out) 한 연예인이 방송에 나올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편견들과 법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수많은 불의에 익숙한 한국의 관객들에게 이들이 그들만의 연대로 법이란 울타리를 가볍게 뛰어넘는 걸 보는 건 무척이나 신선한 경험이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데는, 그레이스에게 찾아 온 구원을 마리화나라는 마약으로 장치함으로써 이야기에 긴장을 불어넣고, 연대와 관용의 미덕이란 주제를 부각시킨 각본가 크레이그 퍼거슨(그는 주연·각본·제작까지 겸하는 괴력을 선보였다)의 공이 크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삶을 너무 쉽게 다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이런 사람들이 있는 편이 세상이 더 즐겁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다. <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 <도둑의 딸> 같은 '김운경' 표 드라마들에 나오는 악역들이 다 자기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고,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런 구석을 가지고 있듯, 삶이란 게 때로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에게는 그녀가 지켜야 할 세계가 있다. 그 세계가 비록 티 파티와 온실의 화초 재배와 정원으로 이뤄진 별 것 아닌 것이지만, 그녀에게는 그것이 온 우주다. 그런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죽어 가는 식물조차 살려낼 정도로 탁월한 원예 재능 하나뿐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그 하나뿐인 재능을 자신의 우주를 지켜내는 데 사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물론 법으로 따진다면 두말할 것 없는 범죄행위이지만, 그녀의 절박함을 돌아본다면 함부로 가볍게 판결문을 낭독할 수는 없다는 것이 마을 사람들이 행동으로 보여준 이웃 사랑이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도 이런 식의 관용이 아닐는지. 가볍게 동화 같은 해피엔드로 막을 닫아 버린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이었다.

3. 그리고 해피엔드…

이 영화는 전혀 심각하지 않다. 인생사에 대한 깊은 진리를 이야기하려 목에 힘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가볍게 농담을 건네듯 '이런 사람들도 있어야 세상이 더 살기 좋지 않을까요' 란 발언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듯, 모든 상황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해피엔드로 피신해 버리므로 더욱 그러하다. 도시로 간 그레이스는 과연 어떻게 조직을 찾아갈 것이며, 조직과의 협상은 어쩔 것인가? 대마초를 끝까지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과연 그레이스는 자신의 파산 상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등등의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 리스트가 무색하게 5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버린다. 

물론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의 익숙한 종결부처럼 말 그대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결론이 상황과 무관하게 주어지거나, 이렇게 해결되기까지의 사전 장치들이 정교하게 미리 깔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농담하듯 시작한 이 영화는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이렇게 되는 걸 사실은 니들도 바랬지'라는 식으로 관객 모두가 바라는 행복한 결론으로 문을 닫는다. 

이게 영화적인 완성도에는 허점으로 작용하겠지만, 그래도 실제의 삶과 무관하게 '모두가 행복하게 죽을 때까지 잘 사는' 그런 해피 엔드가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실제 개개인의 삶에서 해피 엔드를 가로막는 복병이 얼마나 많은지 너무 잘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삶이라는 지뢰밭을 탐지기도 없이 건너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이런 해피엔드가 주는 희망이란 개연성 여부를 넘어, 현실을 조금은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영화의 대책 없는 해피엔드가 주는 위안이 세상과 세상 사람에 대한 낙관주의를 조금은 북돋아줄 것이다. 한 대의 마리화나가 그레이스에게 현실을 잊어버리고 깔깔깔 웃게 만들어 주었듯이, 현실에서 마리화나를 할 수 없는 우리들이 이런 영화 한 편을 보며 웃음을 머금어 보는 게 무에 나쁜 일이겠는가?

* 뱀 꼬리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전혀 멋있거나 예뻐 보이지 않던 배우들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멋있어 보이고 미인처럼 보이는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는지? 잘 생긴 것과는 거리가 먼 송강호가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 나오면 멋있는 남자로 보이듯, 이 영화의 그레이스 역을 맡은 배우 브렌다 블리씬이 딱 그렇다. 

쉰 줄의 나이에 아줌마표 비계살이 원통형에 가까운 몸매를 탄탄하게 받쳐주는 배우이지만, 영화 내내 자기 세상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분투하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사랑스러운 여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밀과 거짓말>의 그 꿀꿀한 하류층 여인이 정말 이 여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훌륭한 배우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120%발휘하게 하는 동시에,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까지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돋보이게 할 줄 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아름다워지는 길임을, 그녀를 보면서 깨닫게 된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그런 그녀를 통해 격려 받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MMC극장에서는 개봉 첫날 4회 상영 후에 영화를 내려 버렸고, 다른 영화관에서도 1주 상영에 그칠 전망이 크다고 한다. 상영관에 일단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같이 웃고 같이 탄식하는 일체감을 경험하는 그런 영화임에도, 아줌마가 대마초를 키우는 이야기로는 발길을 극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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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나이젤 콜 
<오! 그레이스>로 선댄스 영화제와 뮌헨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한 영국출신의 신인감독. 연극 감독으로 시작했고, 이후 텔레비전 프로그램 연출을 통해 크게 두각을 드러냈다. 
관련사이트: 
www.ohgrac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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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