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의 정치학: 부의 재분배와 조세정치

노동사회

세금의 정치학: 부의 재분배와 조세정치

구도희 0 10,967 2014.11.06 03:35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불평등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인다. 특히 중위소득의 50%를 기준으로 측정하는 상대적 빈곤율이 급속도로 높아졌다. 2013년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6.5%를 기록해 OECD 회원국 중 6위를 차지했다. 1,000명 중 165명의 연 소득이 1,068만 원(월 89만 원) 미만이라는 이야기다. 불평등은 단지 낮은 수입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이 지적한대로 불평등은 우리의 건강, 자존감,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자원, 인간으로서의 역량을 손상시킨다. 
 
왜 부의 집중이 발생하는가?
증가하는 불평등에 반하여 한국 최상위층 1%의 부는 가공할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상위 1% 부자는 전체 부의 18%를 차지한다. 세계 2위다. 최근 대기업 임원 640명의 5억 원 이상 연봉은 공개했지만, 미등기 임원과 배당 소득이 많은 주주의 명단은 빠져 있다. 2013년 재벌닷컴 자료에 따르면, 상장사 상위 1% 주식 부자들이 보유한 주식 가치가 78조 원에 육박한다. 전문경영인보다 재벌 2세, 3세의 비율이 압도적이며, ‘상속형’ 부자가 70%를 차지한다. 자기 힘으로 창업한 부자는 10명 중 3명에도 못 미친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대기업 임원의 개별 연봉을 공개하기 때문에 자세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2014년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350여 개 기업 최고경영자와 노동자의 평균 연봉의 격차는 1978년 29.9배에서 2013년 295.9배로 증가했다. 이들 최고경영자의 상여금과 스톡옵션을 포함한 연봉은 2013년 기준 1520만 달러로 2010년 대비 21.7% 증가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뉴욕 등 주요 도시에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벌어졌지만, 최근 부의 집중은 더욱 심화되었다. 1950년대 최상위 1%의 부는 전국 부의 약 12% 수준이었는데, 현재 20%에 육박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최근 재닛 앨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RB) 의장은 “미국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100년 만에 최고”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부의 집중은 비단 한국과 미국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1990년 이후 20여 년간 OECD 회원국 가구의 실질 가처분소득은 연간 1.7%씩 상승하였다. 그러나 이는 소득 상위 10%에 집중되었다. 그 결과 이제 소득 하위 10% 가구의 소득은 소득 상위 10%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최근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21개 국가의 자료를 활용해 미국·캐나다·영국·호주·뉴질랜드·중국·인도·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지난 25년 동안 최고 소득자가 다른 계층보다 엄청나게 높은 수입을 가지면서 불평등이 빠르게 심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악화되는 소득 불평등, 위협받는 민주주의
다른 주목할 현상은 세습이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피케티는 세습된 부와 권력에 의해 과두제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세습 사회(inheritance  society)’가 등장하면서 능력에 따른 자유로운 사회이동은 사라졌다고 본다. 계층 상승의 주요 통로가 되는 교육기회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결정되면서 균등한 기회라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약화되고 있다. 출생에 따라 결정되는 경직된 계급구조가 출현하면서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이처럼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천문학적 부와 소득을 가진 강력한 초부유층(super rich) 세력과 부딪히게 될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쌓아올린 부가 정당하다고 믿고 있으며, 다른 사람을 설득할 강력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거대한 부를 통해 수많은 싱크탱크, 대학, 언론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미국 정치학자 레리 바텔스가『불평등 민주주의』에서 지적한대로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기업은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정책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후반 민주당은 대기업이 요구하는 감세와 재정균형을 수용하는 정책 변화를 선택했다. 또한 월스트리트의 요구에 따라 금융 규제를 철폐하고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정책을 도입했다. 
어떤 학자들은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적 차원으로 진행된 불평등의 심화를 기술의 발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탈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중간기술의 직업이 사라지고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가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원인은 정부의 탈규제, 민영화, 작은 정부, 감세, 무역 자유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이다. 노동시장이 유연하게 변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급속도로 증가했다. 동시에 세금감면과 복지 축소를 주장하면서 부자들의 세금은 대폭 인하된 반면, 가난한 사람을 위한 공공부조와 실업부조의 수급 수준은 낮아졌다. 보수정부는 노동조합을 억압하고 실질임금 상승률은 하락하거나 정체했다. 영국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이 묘사한대로 ‘프리케리아트(precariat, 비정규직 프롤레타리아)’가 증가하고 있지만, 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진보정치는 약화되었다. 이처럼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대기업의 프로젝트가 만든 정치적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부유층의 수입과 권력은 급속하게 강화되었다. 
영국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는 현대 정치의 특징을 ‘포스트 민주주의(post-democracy)’라는 새로운 용어로 묘사했다. 포스트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법의 지배가 이뤄지지만, 민주주의의 근본 목적을 배신하는 국가가 등장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묘사한다. 이러한 비판은 엘리트가 지배하는 대의제의 한계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정치를 지배하면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풍자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민주주의를 수호할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다. 국민의 주권을 행사하는 국가가 아니라 시장의 하수인을 자처한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모든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고, 박근혜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정부의) 규제는 암덩어리”라고 비난했다. 이제 신자유주의 시대에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고, 정치의 역할은 사라지면서 민주주의는 조용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세금, 부의 재분배를 위한 최고의 발명
18세기 영국의 중상주의 경제학자들은 사회의 불평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다. 심지어 빈곤도 ‘필요악’으로 간주했다. 빈곤이 있어야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고대 이후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했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도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등적 분배를 당연하게 간주한다. 대표적으로 ‘인적자본’ 이론은 개인의 교육과 기술 수준의 차이에 따라 소득 차이를 분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불평등의 원인을 사회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에게 떠넘긴다. 
19세기에 유럽에서 등장한 공산주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평등을 주장했다. 이런 생각은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갈 수 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국가』에서 개인의 재산 소유 상한을 가지지 못한 자의 4배 한도로 허용하고, 나머지는 국가에 헌납하자고 제안했다. 부자와 빈자의 차이를 1대 4로 정하자는 것이다. 20세기 초 러시아혁명 이후 소련은 모든 산업을 국유화하는 한편, 공장 노동자와 경영자의 임금 차이를 1대 6 수준으로 제한했다. 위험한 일을 하는 탄광노동자의 수입은 대학 교수보다 높았다.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 당시 소득 격차를 3배 이내로 제한했다. 그러나 기계적 평등을 추구한 공산주의 국가는 유토피아주의의 오류에 빠졌다. 사유재산의 철폐를 통한 기계적 평등은 시민의 모든 생활을 통제하는 공산당 관료의 독재를 제대로 막을 수 없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는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누진적 조세 제도를 선택한다. 누진소득세가 처음 제안된 것은 아담 스미스의『국부론』이었지만,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인권선언’에서 “개인의 능력에 따라 납세하는” 원칙이 정치적 선언으로 등장했다. 자본주의 경제는 능력에 따라 소득의 불평등이 생기는 만큼 고소득자가 더 높은 세율을 부담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19세기 영국 공리주의자들에게도 나타난다. 이들은 같은 금액이라도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효용’이 더 크기 때문에 사회의 ‘총 효용’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믿었다. 누진적 소득세는 20세기 복지국가를 유지하는 효과적인 제도가 되었으며, 계급타협과 사회통합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는 평화로운 합의보다 전쟁의 시기에 주로 이루어졌다. 1909년 영국 자유당은 “빈곤의 참상을 근절하기 위한 전쟁 비용”이라고 주장하며 ‘인민예산’으로 불리는 예산안을 추진했다. 노령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을 확대하는 동시에 독일의 부상에 대비한 군비 경쟁을 위해 거액의 예산을 편성했다. 문제는 재원이었다. 자유당은 급진적으로 소득세율과 상속세율을 인상하고, 누진과세를 강화했다. 귀족들이 소유한 토지에도 거액의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자 보수당과 토지 귀족이 많은 상원에선 “부자들의 피를 빨아 먹는 부당한 예산”, “토지 국유화를 노린 사회주의”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자유당의 인민예산은 아일랜드 국민당과 노동당의 지원을 얻어 간신히 통과했다. 그 후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소득세율은 무려 80%까지 치솟았다. 
20세기 전반기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세계 각국의 소득세율은 급격하게 상승했다. 미국의 루스벨트 행정부는 최고 한계세율을 94%로 인상했다. 모든 기업에 이윤을 부과하는 초과이윤세를 도입하고, 법인세는 40%로 인상했다. 이러한 전면적인 누진세 강화와 함께 전쟁의 파괴,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1914~45년 동안 유럽과 미국의 불평등은 감소했다. 세금은 정부의 재정을 늘리는 정책 수단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통합을 이룩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누진세율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70%로 하락하였고, 1986년 레이건 행정부의 시기에 28%로 크게 낮아졌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기에 최고한계세율은 39.6%까지 인상됐지만, 부시 행정부의 시기에 다시 35%로 인하되었다. 자본소득세는 더 낮아졌다. 1960년대 25%였던 최고자본소득세율은 1970년대 35%까지 인상됐으나,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시기에 28%로 하락한 뒤 점차 인하되어, 2010년에는 15%에 머물고 있었다. 이처럼 누진세율은 낮아지는 한편, 스스로 연봉을 결정하는 최고경영자들은 보수를 천문학적으로 올랐다. 시티은행 최고경영자는 1천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으며, 대기업에는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이에 미국의 최고 부자 워렌 버핏은 “나의 세금이 내 비서보다 낮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기부하는 동시에 상속세 폐지에 적극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세금이 경제성장을 망친다고?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국가는 조세나 재정지출을 통해 복지제도를 운영한다. 이를 통해 소득 재분배를 추구하여 불평등을 완화하고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려고 노력한다. 대표적으로 1942년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는 완전고용과 보편적 사회보장을 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의 복지를 달성하려는 이상을 표현했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자본주의 경제는 완전고용과 사회보장을 위한 복지국가 건설과 노사타협의 제도적 장치를 형성했다. 20세기 초반 노사분규가 극심했던 스웨덴은 1938년 ‘살트셰바덴 협약(Saltsjöbaden)’을 통해 노사정 3자가 모여 임금 억제와 복지 확대를 동시에 추구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점에서 세금은 산업평화와 계급연합의 핵심적 의제가 되었다.
1970년대 중반 석유파동이 발생하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복지국가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자유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신우파는 복지국가가 근로동기를 약화시키고 ‘의존의 문화’를 강화하여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비판했다. 1979년 영국의 대처 정부와 1980년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등장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하여 통화량을 조절하고 정부 재정을 축소해야 한다는 통화주의 경제정책이 확산되었다. 보수 정치인과 학자들은 조세 감면을 통해 기업과 개인의 투자를 유도하는 대신 복지재정은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유층의 세금은 감면됐으며, 보편주의 복지제도는 약화된 반면 자산조사를 통한 선별주의 복지제도가 확산되었다. 
그러면 레이건 정부 이후 공화당 정부가 추진했던 부자 감세는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었을까? 공급 중시(supply side) 경제학자들은 부자와 기업의 세금을 감면하면 경제가 성장하고 ‘낙수 효과’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레퍼 곡선(Laffer curve)’을 내세우며 세금이 오르면 경제성장이 악화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막대한 부자 감세에도 불구하고 투자는 증대되지 않았다. 오히려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커지면서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 윤리가 사라졌다.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불평등의 대가』에서 낙수경제 이론은 “이미 오래 전에 신빙성을 잃은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미국 경제가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 때문에 생산성 감소, 효율성 감소, 성장 둔화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성장과 분배가 상호 대립적 요소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 요소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그는 “하위계층과 중위계층의 소득이 늘면 모든 계층이, 심지어 상위계층도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을 제시한다. 지금이라도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부유층의 세금을 증대하고 교육과 직업훈련, 환경친화적 기술, 연구개발 등에 대한 더 과감한 정부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 경제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은 아직도 미국식 경제학에 경도되어 낮은 세금이 경제 성장에 좋다는 이데올로기에 갇혀있다.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증세는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라고 주장했다. 아직도 한국의 조세부담율(19.8%)과 국민부담율(25.9%)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당연히 복지와 사회보장 지출 비율도 가장 낮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율은 약 8% 수준으로 미국의 2분의 1, 북유럽 국가의 4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소득재분배 효과가 낮아 빈부격차가 크다. 2010년의 경우 OECD 회원국 중에서 조세부담률이 높은 10개국의 빈곤율은 8.3%에 그친 반면, 한국을 포함하여 조세부담율이 낮은 10개국의 빈곤율은 14.7%에 달했다. 이는 빈곤률을 낮추려면 조세부담율을 높여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의 보수학자들은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가 지나친 복지 때문에 발생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지출 비율은 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인 20%에 그친다. 오히려 복지가 경제를 망친다면 독일, 스웨덴, 덴마크가 가장 먼저 망해야 한다. 이 나라들의 복지 지출은 30%가 넘는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유럽에서 경제가 가장 건실하며,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서도 산업 생산성과 고부가가치 제조업의 경쟁력이 매우 높았다. 미국 대기업은 구조조정을 위해 직원을 해고하지만, 독일과 스웨덴은 숙련기술자를 위한 관대한 복지 수당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다. 당연히 기업에 대한 충성심이 높고,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적다. 보편적 복지제도와 산업평화가 경제 생산성을 높이는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결국 조세부담율이 높아도 복지와 경제는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진보정치에서 세금 논쟁이 중요한 이유
지난 대선에서 연거푸 ‘경제’가 최대의 이슈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낙수경제 이론을 추종한 이명박 정부의 ‘MB노믹스’ 5년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장밋빛 ‘747’ 공약은 실패로 끝나고 거품경제를 잔뜩 키웠다. 이제 다시 박근혜 정부가 ‘474’ 공약으로 그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공약을 내걸었지만, 집권 후에는 노골적으로 자유시장 접근법으로 회귀하고 ‘경제 활성화’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를 공약했다가 이제는 담뱃값, 주민세, 영업용 자동차세 인상 등을 발표하여 ‘꼼수증세’, ‘서민증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탈규제와 서민증세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더 큰 불평등과 빈곤을 만들 것이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문제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도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했다. 대신 ‘부자감세 철회’를 주장했지만, 이미 2012년에 국세 감면율이 낮아져 실효 없는 공약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금도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에 맞서 건전재정을 주장하며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대안 제시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따라서 ‘대안 없는 야당’이라는 공격을 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지금이라도 진보정치는 보수정부의 부자감세와 재벌 편향 정책을 극복하고 중산층과 빈곤층을 위한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 기초연금 등 급증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면서 재정 기반을 강화하려면 단계적인 증세는 불가피하다. 최소한 OECD 회원국 평균 수준으로 조세부담율(25%)과 국민부담율(34.1%)을 높여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변칙적인 간접세 위주의 증세는 재정 적자를 서민과 중산층에 떠넘기는 편법에 불과하다. 벼룩의 간을 내먹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조세정책 개혁을 논의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조세개혁이 필요한가? 토마 피케티는 자본에 대해 ‘세계세(global tax)’를 부과하고 최고 75% 수준으로 소득세와 상속세 세율 인상을 제안했다. 하지만 급격한 소득세 인상은 정치적 합의 없이 불가능하다. 2012년 대선 당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부유층에 대한 80% 세율 인상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취임 직후 포기했다. 사실 유권자들은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인상을 찬성하다가도 막상 증세를 논의하면 반대로 돌아서곤 한다. 이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고 자신이 원하는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득세 인상이 반드시 정치인의 무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5~10% 인상하는 조세개혁은 강력한 저항 없이도 가능하다. 실제로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독일, 스웨덴 등 주요 중도우파 연정에서도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을 단행했다. 
다른 한편 미국 예일대학교의 로버트 쉴러 교수, 부르킹스 연구소의 레너드 버먼과 제프리 로핼리 연구원이 제안한 ‘밀물 조세(rising tide tax) 제도’도 고려할 만하다. 이 제도는 소득 불평등이 증가하면 최고 소득자에 대한 한계 세율을 의회에서 자동으로 인상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누진적 소득세의 세율을 정하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것이다. 빈곤율 또는 지니계수가 사회적으로 합의한 일정 수준을 넘으면, 이에 따라 의회에서 조세 인상율을 검토해야 한다. 증가하는 세수는 교육과 직업훈련 등 기회의 평등을 강화하는 정책과 기술개발 및 미래 투자를 위해 지출할 수 있다. 결국 불평등을 해결할 조세와 예산에 관한 정치적 합의가 중요하다.
현재 한국 정치에서 조세와 예산 논쟁은 양극화되어 있다. 보수정치가 주장하는 시장 경쟁과 무책임한 능력주의는 사회통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자유시장의 힘으로 소득 재분배가 충분하게 일어나기는 어렵다. 정교한 조세제도와 복지제도를 통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 그러나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진보정치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실제로 다양한 실증 분석에 따르면 조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오히려 사회보장, 공공서비스, 보조금 등 정부 재정을 통한 소득 재분배 효과가 더 크다. 조세를 통한 정부 부담의 사회보장 지원 비율을 높여야 한다. 특히 저소득층의 공공부조 사회보장 제도에서도 빈곤이 발생한 이후 현금급여 지원보다 사전에 개인의 능력을 키워 빈곤의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치는 빈곤과 사회적 배제를 없애고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동시에 기회의 평등을 확대하여 사회적 위험을 분산시키는 적극적 정책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전통적인 재분배 장치를 축소하자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예방하는 복지제도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한편 불평등 논쟁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복지 지출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재분배 장치가 미흡하기도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노동자의 임금격차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커진데 따른 결과이다. 이런 점에서 조세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의 결합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저임금 비정규직을 확대하지 않기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를 축소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특히 청년 실업자와 비정규직의 고용을 확대하기 위한 기업의 조세감면과 사회보험 기여금 지원을 도입해야 한다. 세입구조 뿐만 아니라 세출구조도 중요하다. 
 
세금은 정치다
조세와 복지는 단순히 정부의 정책 수단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집단이 벌이는 정치투쟁의 장이다. 그러나 1987년 정치적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를 지배하면서 조세와 복지정책이 선거 쟁점이 된 적이 거의 없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최대 쟁점이 된 이후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복지국가가 부상했지만, 재원 문제에 부딪히자 모든 복지논쟁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담뱃세, 주민세 인상을 제기하면서 증세 논란이 다시 불거졌지만, 복지재정 확대와 조세개혁을 위한 정치적 논쟁으로 전개될지 미지수다. 
그래도 작은 긍정적 신호가 커지고 있다. 2012년 경향신문 조사에 따르면,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55.2%가 동의하고, 44.3%가 반대했다. 국민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복지 확대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상승하면서 증세 논쟁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정당과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조직화된 힘이 없다면 조세개혁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조세형평과 조세정의는 책 속에 있거나 정치인의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정치적 행동에 달려있다. 한마디로 세금은 정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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