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삶을 파괴하는 블랙기업에 맞서며

노동사회

청년의 삶을 파괴하는 블랙기업에 맞서며

구도희 0 5,747 2015.03.11 05:00
 
 
어떤 계약직 청년의 죽음
굴지의 경제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20대 청년이 정규직 전환의 희망이 사라지고 해고 통보를 받은 후 한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지난 2014년 9월26일의 일이다.
초과근무, 휴일근무, 비정규직 신분이라는 불안과 사내 성추행….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재직한 2년 동안 그 청년은 이 모든 모멸감을 견뎌왔다. 웃는 낯으로 출근하기가 두려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그를 붙잡은 것은 곧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기업 간부의 약속이었다. 이 약속을 믿고 모든 것을 견뎌왔던 그는, 희망이 무너진 자리에서 결국 자신의 삶을 내려놓았다. 그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담겨있었다. “아주 2년 꽉 채워서 쓰이고 버려졌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피해자 친구의 제보로 10월 초순 방송을 타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보도 이튿날, 청년유니온은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몸부림쳤을 20대 계약직 청년의 죽음을 깊이 슬퍼하며 중소기업중앙회 앞에 규탄 피켓을 들고 섰다. 나는 20대 계약직의 죽음을 애도하는 성명을 쓰며 세차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한 글자 한 글자 키보드 자판을 치는 손가락이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동안 청년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슬프게 떠나보냈던 수많은 이들의 삶이 떠올랐다. 공무원 시험에서 낙방한 구직자의 삶. 학자금 대출 700만 원을 갚지 못해 스스로를 저버린 대학생의 삶.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우울증에 쓰러진 기자의 삶. 현장실습을 하던 중 공장의 지붕 밑에 깔린 고등학생의 삶. 무해하다는 반도체 공장에서 숱하게 쓰러져 간 노동자의 삶.
야만의 사회에서 젊음의 죽음은 일상이 되었다. 젊음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이 사회의 모순을 곱씹고 변화를 열망하기에는 살아남은 이들의 삶이 너무도 각박하고 고통스럽다.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을 뒤로 하고, 그렇게 젊음의 죽음은 더 잦은 일상이 된다. 중소기업중앙회 정문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며 수없이 되뇌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중소기업중앙회 사건이 보도되고 며칠 후 남영역 인근에서 청년유니온 상근활동가 몇 사람과 술자리를 가졌다. 우리는 2014년 초 청년유니온 3기를 출범시키며 ‘청년이 만드는 새로운 노동운동’을 보여주겠다고 자임했다. 그러나 애도를 넘어선 변화의 수단을 만들지 못한 무기력감이 너무도 컸고 허망했다. 
그리고 우리는 술잔을 나누던 정책담당 간부의 가방에 담긴 책 한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의 단행본으로 국내에 번역 소개됐는데, 일본 청년노동 단체가 주도해 온 일련의 노동운동을 보여주는 글이었다. 책의 제목은『블랙기업』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14년 11월9일에 청년유니온은 전태일의 삶을 기억하는 전국노동자 대회의 현장에서 청년의 삶을 파괴하는 블랙기업과 맞서기 위한 사회적 운동을 선포했다.
 
블랙기업의 탄생과 청년노동의 현실
2000년대 이후 전면적인 노동유연화 정책의 시행으로 급격한 구조적 변화를 겪은 한국의 노동시장은 ‘정규직’으로 상징되는 중심부의 1차 노동시장과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주변부의 2차 노동시장으로 양극화됐다.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면서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노동시장에서의 지위가 취약한 청년층은 더 심각한 고용문제를 겪게 됐다.
청년층의 고용률이 40%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청년 실업률마저 지난해 말 15년 만에 최고치인 9%를 기록하는 등 청년 일자리 문제는 지표상으로도 계속 악화되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을 관리하고 비용을 절감한다는 명분으로 기존의 정규직 채용을 비정규직 채용으로 대체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청년고용의 ‘양적 문제’는 청년노동의 ‘질적 문제’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비정규 노동의 형태는 날이 갈수록 진화하여 청년들이 경험하는 생애 첫 노동의 형태는 계약직, 인턴, 수습(견습), 현장실습, 간접고용, 비전형 고용, 시간제 등 더욱 불안정하고 열악한 방향으로 분화하고 있다. 청년일자리 문제는 곧 청년노동의 문제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사회는 노동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 또한 ‘고용률 70% 달성’으로 표현되는 일시적 고용지표 개선 중심의 양적 접근에 치우쳐 있다. 이에 정부는 고용 자체가 더 시급하다는 이유로 노동의 문제에 필요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태가 방치된 사이 저숙련, 짧은 경력, 노동시장에의 최초 진입이라는 특성을 가진 청년노동의 ‘질적 측면’은 계속 나빠졌다. 2014년의 사건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청년노동의 현실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다.
청년노동의 문제는 더 이상 젊어서 한때 고생하고 마는 개인적이고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생애 첫 노동의 경험을 통해 일에 대한 태도를 형성한다. 괜찮은 일자리가 감소하고 노동의 질이 악화되면서 경제활동 자체를 포기하는 청년들마저 등장하고 있다. 사회안전망이 촘촘히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고용과 실업의 쳇바퀴를 반복하다가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우선 개인의 삶에 있어서 노동을 통한 생애소득의 수준을 떨어뜨리며 인적자본의 형성을 저해하는 문제를 낳는다. 한 산업의 차원에서는 발전을 위한 집단적 숙련형성을 가로막는다. 국가적으로도 소득․세수 손실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저하시키고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지금의 청년들이 노동을 통한 소득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미래에 전 세대를 부양할 책임을 지게 된다는 점에서 볼 때, 청년노동의 문제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도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함께 풀어가야 할 공동의 숙제다.
 
청년 노동의 시각에서 블랙기업에 맞서겠다
청년유니온은 한국적 상황과 청년 노동의 시각에서 블랙기업을 규정하고 양상을 분석하기 위해 최근까지 연구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블랙기업 신고센터를 운영하여 블랙기업에 관한 부정적 노동의 경험을 간직한 이들의 문제의식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강도 높은 이슈파이팅을 구상하고 있다. 블랙기업의 핵심 양상이라 할 수 있는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장그래 임금단체협상 투쟁’이라는 구호와 함께 최저임금 인상 운동에서도 전면에 나설 계획이다. 
아울러 청년유니온은 앞서 일본의 블랙기업 운동을 만들어 온 ‘POSSE(포세․일본 청년단체)’의 사업방식을 차용하여 오는 7월 중 ‘대한민국 블랙기업 시상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청년과 노동,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블랙기업 선정위원회를 폭넓게 구성하려 한다.
더 나아가 하반기 국정감사에 집중 대응함으로써 블랙기업과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관한 정치권의 책임 있는 역할을 추동하고, 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와의 사회적 교섭을 추진한다는 목표도 세우고 있다. 아마도 2015년 한 해 청년유니온의 사무실에서는 야근을 없애기 위해 야근을 한다는 진심 어린 우스개소리가 더 자주 들릴 것 같다.
청년유니온은 블랙기업 지표 개발을 위한 연구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청년노동의 삶과 마주했다. 수백 건에 달하는 실태조사와 심층면접, 그리고 청년유니온으로 유입되는 노동상담 자료를 분석함으로써 블랙기업에 종사하는 청년 노동의 진실에 실체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블랙기업 연구 사업을 위해 청년 당사자들과의 인터뷰를 수행하고 녹취를 풀던 상근 활동가들은 “암 걸릴 것 같다”는 표현을 자주했다. 그렇다. 정규직에 대한 ‘희망고문’과 무질서한 고용 형태, 저임금 및 시간 외 수당 미지급과 연동된 초장시간 노동, 실적관리를 위한 압박과 비인격적 대우, 자발적 퇴사를 종용하기 위한 집단적 괴롭힘 등 청년의 삶에 가해지는 블랙기업의 폭력은 너무도 처참했다. 한 번 블랙기업과 마주한 청년은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퇴사 이후에도 비슷한 수준의 일자리를 전전하였다. 그리고 블랙기업은 불합리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폐쇄적이고 봉건적인 조직문화로 인해 조직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자생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블랙기업은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도려내고 퇴출시켜야 할, 그야말로 ‘암세포’임이 확인되었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이 블랙기업의 폭력을 견뎌내고 있는 청년의 삶이 있다. 어쩌면 청년들에게는 이들이 감내하고 있는 고통과 짜증을 ‘징징거림’이라고 타박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그리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고 상의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존재가 너무 절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청년유니온은 그 한 명이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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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기업이란? 
 
‘블랙기업’이란 일본 청년단체인 ‘포세(POSSE)’가 만든 개념이다. 최근 일본에서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된 블랙기업은 한마디로 악덕기업이다. 경영난을 이유로 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고 열악하고 불합리한 노동을 강요하면서, 인턴이나 수습제도 등을 통해 노동력을 저가에 일상적․조직적으로 착취하는 기업을 가리킨다.
일본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특유의 종신고용 형태를 지속해 왔다. 노동자들을 고용 안정을 보장받는 대신 획일적이고 경직된 근무 환경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 이후 일본 기업들 역시 재정적 위험에 노출되면서 고용 안정성이 낮아졌다. 그럼에도 획일적이고 복종을 중시하는 경직된 기업문화는 바뀌지 않은 채 노동자들에게는 업무 명령만이 남게 됐다. 이것이 블랙기업 탄생의 시초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소셜커머스 기업 위메프가 청년 노동자를 채용해 일을 시킨 뒤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등 ‘갑질해고’를 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블랙기업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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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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