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바람개비로 뭉친 학생과 청소노동자들의 연대

노동사회

[인터뷰] 바람개비로 뭉친 학생과 청소노동자들의 연대

구도희 0 6,212 2015.03.11 05:22
 
연대(連帶). 사전적 의미는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짐’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그 무게는 전혀 가볍지 않다. 투쟁 사업장 노동자에게는 연대의 손길이 절실하다. 그러나 투쟁 사업장은 넘쳐나고, 정규직 노동자조차 제 앞가림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실상 학교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의 청소‧경비 노동자들도 그랬을 터다. 그런데 학생들이 노동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노동권수비대(이하 수비대)’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의 고용불안 문제는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수비대 조직을 최초로 제안한 양동민(21) 씨의 말이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동민 씨는 “우리가 공부를 하는 목적도 사회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특히 제가 경제학을 공부하는데 노동자들의 구조조정 문제를 보고 그냥 ‘구조조정을 하나 보다’라고 지나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투쟁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이 왜 자율적으로 조직을 만들고 노동자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일까. 이들의 연대에 대해 듣기 위해 2월12일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인근에서 동민 씨를 만났다. 그 날은 마침 신촌캠퍼스 정문 앞에서 국제캠퍼스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철회를 위한 지역노동자, 사회단체의 결의대회가 예정된 날이었다.
 
(사진: 양동민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노동권수비대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자들은 왜 빗자루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나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익숙한 것들이다. △근로조건 저하 없는 고용승계, △간접고용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적정입찰제 시행, △용업업체에 대한 철저한 관리 감독 등. 이들 노동자들은 국제캠퍼스 기숙사 용역업체인 세안텍스로부터 지난 2014년 12월2일 전체 72명의 노동자 중 22명을 감원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는 세안텍스가 국제캠퍼스 기숙사 용역 입찰과정에서 ‘2015년 22명의 노동자를 감원하겠다’는 내용의 용역계약서를 연세대학교에 제출했고, 학교가 이를 받아들여 세안텍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것은 용역업체 탓만은 아니다. 앞서 연세대는 2012년 12월 부당노동행위를 한 전력이 있는 용역업체와 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며, 고용승계의 보장과 근로조건 저하 없는 단체협약 준수를 노조와 약속한 바 있다. 세안텍스 역시 2014년 7월 노동조합과 맺은 단체협약(대표노조: 전국여성노동조합 인천지부)에서 근로조건을 저하하지 않을 것, 부서 이동 시 노조와 협의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약속은 깨졌다. 세안텍스는 22명을 해고하겠다고 했다. 학교는 노조와의 면담에서  고용승계 보장을 말했지만 정작 세안텍스가 해고 대신 대안으로 제시한 근로계약서는 조합원들에게 하루 8시간에서 5.5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줄이고, 기존에 받던 기본급 120만 원 대신 월 95만 원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 같은 내용의 다운 근로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23명의 노동자들은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지난해 12월 일터를 잃었다. 
 
노동자들로부터 배운 섬김의 리더십과 공동체 문화
동민 씨는 ‘RC교육(연세대는 신입생이 1년간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한다)’에 따라 지난 1년간 국제캠퍼스에서 생활했다. 기숙사 청소‧경비 노동자들과 아침 인사를 주고받고, 끼니마다 마주치는 급식노동자들이 “많이 먹어요”라며 눈웃음으로 맞아주던 일들은 동민 씨에게 일상이었다. 친분은 자연스레 쌓였다. 동민 씨는 매일매일 연세대학교를 움직이게 하는 노동자들로부터 연세대의 ‘섬김의 리더십’을, ‘공동체’ 문화를 배웠다고 한다. 이에 지난해 말 노동자들의 구조조정 통보 소식을 듣고, “이걸 막기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주위 학생들에게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제안했다. 20여 명의 학생들이 한데 뭉쳐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의 채팅창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고, 그 수는 50명까지 늘었다. 마침 노동조합에서도 구조조정에 맞서 대응을 본격화했다. 
 
“노조의 집회 소식을 듣고 20명의 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노조로부터 경과를 들으며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했죠. 그래서 지난해 12월8일에 학생들이 노동자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을까 회의를 했습니다. 그 때 수비대라는 이름을 만들어서 ‘스티커를 붙여보자’, ‘대자보를 써서 게시하는 등 대자보전을 하자’, ‘학생 서명운동을 받자’, ‘페이스북 등 온라인 운동을 하자’고 계획을 했고, 역할을 분담해 이를 진행했습니다.”
 
실제 동민 씨와 친구들은 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회의 이튿날 기숙사 생활공간에 대자보를 게시했다. ‘대학 와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J(정갑영 연세대 총장 지칭)에게’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학생들의 대자보 연대는 학생들의 반응은 물론, 언론의 관심까지 받으며 기사화됐다. 동민 씨가 쓴 대자보의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요즘 계급장 떼고 얘기하는 게 유행이라길래, 계급장 떼고 한번 이야기해보렵니다.……총장님 당신에게 학내 노동자분들은, 단순히 숫자에 불과 한가 봅니다. 그분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분들이 노동을 통해 학교의 구성원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가 봅니다. RC교육이 끝나가는 지금, 당신은 우리와 함께 살아온 학내노동자분들을 거리로 내몰려고 합니다.……한파주의보까지 발령된 이 추운 겨울에 계약 만료라는 쉬운 명목으로 실업자 만드는 게 연세대가 강조하는 ‘공동체 문화’입니까?……이제 한국 노동자 중 절반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정부는 정규직마저 자르기 쉽게 만들려 합니다. 연세대학교는 이 야만적인 흐름에 동참하려는 것입니까? 
저는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가 그 시작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쌓아온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내길 바랍니다.”
 
대자보와 관련해 동민 씨는 “조금씩 생각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학생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에 함께 대자보를 쓴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연세대 학생들이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페이스북  ‘연세대 대나무숲’에는 지지 의견과 반대 의견이 잇따랐다. 물론 지지 메시지가 더 많았다. 동민 씨는 “학생들의 지지를 많이 확인했던 것은 며칠간 진행한 서명운동을 통해서예요. 학교에 항의방문하기 직전에 총학생회 페이스북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했는데, 500명의 학우들이 댓글로 지지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감동이었어요”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기숙사 생활을 했던 신입생들만 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세대 총학생회, 총여학생회, 사회과학대학생회, 자유전공학생회, 생활과학대학생화, 이과대학생회 등도 연대하고 있다.  
 
“저는 수비대 말고도 총학생회에서 연대사업국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알음알음으로 수비대를 꾸리고 있을 때 지난해 12월에 총학생회장이 새로 당선됐어요. 총학생회장이 청소노동자들의 집회에 왔기에 연대해달라고 요청했고, 그 때부터 총학생회가 결합했습니다. 이 싸움의 실무를 담당하기 위해 제가 연대사업국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고요.”
 
(사진: 여성노조 연세대송도기숙사분회 조합원들이 2월13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학교 측에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비정규직 문제, 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동민 씨의 설명에 따르면, 수비대는 자율적인 조직이라 체계가 따로 없고, 강제성도 없다. 동민 씨가 여러 명의 몫을 하는 이유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날 집회에 대한 문의로 동민 씨의 휴대전화는 끊임없이 울렸다. 투쟁에 주도적으로 나선 그이지만 이전부터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동민 씨는 “중고등학교 때도 집회에 가본 적은 없었어요. 작년 1학기 때도 아무것도 모른 채 집회에 따라가는 정도였죠. 원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는 있었지만, 남들처럼 과생활에 적응하며 대학생활을 하다가 문득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찾은 첫 집회가 세월호 집회였습니다. 그곳에서 운동단체를 만났고 활동가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1학년 2학기 들어 활동을 시작한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동민 씨는 “저만 사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 또래의 많은 청년들이 관심을 갖고 있어요. 실제 친구들 사이에서 네이버의 웹툰 ‘송곳(대한민국의 노동현실과 노동운동을 소재로 함)’이 인기가 많고, 비정규직 문제가 자신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많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사실 수비대가 만들어지고, 이 싸움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많은 사람들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대자보를 쓰자는 제안에 친구들도 흔쾌히 나섰죠”라고 강조했다. 
 
현재 이 투쟁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전국여성노동조합 인천지부 연세대국제캠퍼스분회,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연세대학교 비정규직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20여 개 여성단체들이 결합해 있다. 연세대국제캠퍼스분회는 학교와 세안텍스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1월14일부터 신촌캠퍼스에 천막 농성장을 꾸리고 항의농성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노동자들에게 연대하기 위해 “우리의 학교에 비상식과 폭력이 더 이상 뿌리내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바람개비를 돌려보려 합니다”라며 학교 곳곳에 바람개비를 심고,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문제 해결의 주체는 학교이며 그 열쇠는 연대
학생들과 노조가 보는 문제 해결의 주체는 학교다. 그러나 학교는 노조와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세안텍스 사장도 학교가 수의계약을 해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밝혔지만, 학교는 요지부동이다. 
 
“2월10일 학생 대표자와 행정대외부총장이 면담을 했습니다. 그 때 한 가지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에 대해 얘기해도 학교는 힘들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혀 믿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일을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느냐며 용역비용을 아까워하더군요. 학생들의 안전, 위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안전과 위생을 위한 인건비는 최대한 줄이려 합니다. 심지어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 대해 얘기하니, 그건 정부에서도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노동자에게 줄 돈을 아껴서 차라리 기부를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동민 씨는 “대학 구조조정이 이슈인데, 대학 경영 평가 항목에 인건비가 포함되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강경하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전에 항의 방문했을 때 신촌도 국제캠퍼스와 같은 식으로 바꾸려고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미 100명의 학교 교직원을 구조 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오는 8월에 900억 원의 비용을 들인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편집자: 연세대 정문부터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지하 주차장 및 광장 조성화 사업-가 완공됩니다. 건물 구조가 크게 바뀔 텐데, 그 때 큰 충돌이 생길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연세대학교는 지난해 12월 여성노조에 “귀 노조 지부와 세안텍스의 노사 협상이 조속히 해결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처럼 '진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학교 탓에 천막농성 노동자들은 더욱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바람을 담은 바람개비는 연세대 교내 곳곳에서 아직도 돌아가고 있다. 바람개비에 따스한 봄바람의 기운을 담을 수 있을까? 동민 씨가 말하는 투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역시 ‘연대’다. 
 
“승리를 위한 한 가지 열쇠는 이 투쟁을 송도만의 투쟁이 아닌 다른 단위들과 최대한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가깝게는 연세대 원주 캠퍼스에서도 70명을 구조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원주 총학생회가 노동자들의 싸움에 결합했다는데, 다 같이 싸워야 힘도 커질 겁니다. 그래서 오늘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가 주최하는 집회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4월에는 민주노총 총파업도 있잖아요. 이 같은 정세와 연결해서 상황을 봐야,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뭔가 도움이 될 겁니다. 향후 연세대 각 캠퍼스의 문제를 모아, 공동의 요구안을 내는 방식으로 투쟁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곧 개강하면 학교에 학생들이 많아질 테니 서명 운동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서경지부에서 ‘대학생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여러 대학에서 투쟁을 진행한다는데, 우리는 우리의 상황에 맞춰 국제캠퍼스 투쟁과 연결 지을 겁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81호

, , , , , , ,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