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금속 노동자 하투…“이례적 폭염만큼 뜨거웠다”

노동사회

2016 금속 노동자 하투…“이례적 폭염만큼 뜨거웠다”

구도희 0 7,730 2016.09.09 02:00
 
 
2016년 노동계의 하투(夏鬪)는 유례없는 폭염만큼이나 뜨거웠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7월20일 ‘노동개악 폐기’, ‘노동자 희생 강요 구조조정 중단’, ‘재벌책임 강화’ 등을 내걸고 8만여 명이 참여하는 총파업-총력투쟁을 벌였으며, 전국금속노동조합은 7월22일 금속산업 노동자 15만 명이 일손을 놓음으로써 1997년 노동법 개악저지 총파업 투쟁 이후 최대 규모의 총파업을 성사시켰다. 금속노조는 특히 8월25일 노사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에 잠정 합의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6월 말 단위노조 대표자 및 상근간부 결의대회에서 ‘정부발 노동개혁은 노동개악’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하반기 총력 투쟁을 예고했다. 이후 7월20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대정부·대국회 투쟁과 현장 단위 불법지침 무력화 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노동법 개악시도를 저지하겠다”며 하반기 투쟁계획을 확정했다. 아울러 오는 9월 넷째주를 총력투쟁주간으로 설정하고, 공공부문 총파업을 엄호·지원하며 반노동정책을 분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등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자들도 성과연봉제 확산 및 민영화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9월 말 대규모 파업을 결의하고, 파업 준비 현황을 점검하는 등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2016년 7월22일 전국금속노조가 국회 앞에서 총파업 대회를 열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현대기아차그룹 공동교섭의 첫발을 내딛다
올해 노동계 하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금속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주로 임금·단체협약 교섭을 진행하던 예년 여름과 달리 올해 금속산업 노동자들의 투쟁 이슈는 재벌개혁, 구조조정 반대, 정부의 노동개혁 반대 등으로, 그야말로 ‘정치투쟁’이었다. 
금속노조는 지난 3월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산별중앙교섭과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을 병행하는 ‘투 트랙’ 방식의 2016년 투쟁방침을 확정했다. 그동안 금속노조 내부에서는 산별교섭이 사실상 기업 단위 임금·단체협상 투쟁의 연장선에 머물러 왔다는 문제제기가 있곤 했다. 이에 금속노조는 기존 산별교섭의 한계를 극복하고 산별노조를 강화하겠다며, ‘재벌개혁’을 기치로 공동교섭이라는 만만치 않은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현대기아차그룹 공동교섭은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으로, 현대차‧기아차‧현대로템‧현대모비스‧현대위아‧현대비앤지스틸 등 13곳의 현대기아차그룹사 노사가 모두 한곳에 집단적으로 모여 교섭을 하는 방식이다.  
금속노조는 “친재벌, 반노동 정책으로 무장한 박근혜 정권이 쳐놓은 반산별노조의 울타리를 넘고 나아가려면, 반재벌 투쟁은 산별노조 투쟁과 병행될 수밖에 없다”라는 취지를 밝히면서, 공동교섭의 목표로 △재벌의 사회적 책임성 강화, △통상임금 정상화 및 실노동시간 단축, △자동차·철강·철도차량을 포함한 제조산업 미래전략위원회 구성, △노조활동 보장 및 노사관계 발전 등을 제시했다. 
그렇지만 공동교섭의 과정은 험난했다. 금속노조는 4월19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매주 1회씩 공동교섭을 펼칠 것을 현대기아차그룹에 제안했지만, 사측은 단 한 차례도 교섭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금속노조는 현대기아차그룹 사업장을 항의 방문하기도 하고 7차례에 걸쳐 공동교섭을 요청했지만, 사측이 연이어 불참한 탓에 8월8일에는 공동교섭 결렬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속노조는 희망을 접지 않은 채 8월 초 다시금 공동교섭 성사를 촉구하며 한 달간 집중 파업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8월12일 현대차 계열사 지부·지회를 중심으로 1차 파업을 벌였다. 이어 17일에는 ‘재벌개혁·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성사’ 등을 요구로 내걸고 15만여 명의 조합원이 주야 각 4시간 이상 파업 및 권역별 집회에 참여하는 등 2차 총파업대회를 진행했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는 서울, 인천, 대전충북, 현대차지부, 기아차지부 등 1천여 명의 조합원이 모였으며, 이 자리에 참석한 김상구 금속노조 위원장은 “올해 그룹사 공동교섭을 반드시 성사하고, 내년 대선까지 재벌개혁 투쟁을 힘차게 벌이자”며 “산별노조의 새 역사를 쓴다는 자부심으로 투쟁하자”는 결의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현대기아차그룹 공동교섭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금속노조는 맹렬한 투쟁을 바탕으로 8월24일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이하 사용자협의회)와 의미 있는 내용으로 중앙교섭을 타결했다. 노사가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청년일자리를 창출하자는 데 합의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금속노조와 사용자협의회는 연간 실노동시간을 OECD 평균에 근접하기 위하여 실노동시간 1,800시간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 실현방안에 대하여 논의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또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신규채용 시 만 29세 이하의 청년을 50% 이상 채용하고 정년으로 인한 신규인력 발생 시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에 합의했다. 그뿐만 아니라 노사는 노동자들의 처우개선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을 철폐하는 내용에도 합의했다. 이에 따라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교대제, 퇴직금, 연월차휴가 등 원청 노동자들과 동일한 처우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노사 합의와 관련해 송보석 금속노조 대변인은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청년고용 문제와 일자리창출을 위해 노동시간단축이 필요하다는 방향에 노사가 접점을 찾은 것이 최대 성과”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노사 합의는 금속노조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7월 22일 열린 전국금속노조 총파업 대회에서 강기성 성동조선지회장이 투쟁사를 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구조조정 막고 조선산업 살리겠다”
구조조정 반대 이슈는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조선산업에서 두드러졌다. 지난 4월 정부가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한 이후 조선소들은 인력감축, 임금삭감의 광풍에 휩싸였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중공업은 설비지원부문을 분사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라 정규직 1천 명가량이 자회사로 전적될 예정이며, 회사는 사무직·생산직에 대한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다. 삼성중공업도 희망퇴직을 받아 8월 말까지 1,400명가량이 희망퇴직을 신청했고, 하반기에는 상시 희망퇴직도 받는다는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최대 4천명 규모로 인력을 감축하는 한편, 흑자를 내는 알짜 자회사를 하반기에 매각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위기에 놓인 조선업 노동자들은 조선업종노조연대(이하 조선노연)로 뭉쳐 정부의 일방적 구조조정, 기업의 인력감축 구조조정에 거세게 저항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STX조선, 성동조선 등 9개 조선소 노조로 이루어진 조선노연은 앞서 지난해 2월 조선소 중대재해 근절 대책, 중형 조선소 활성화와 고용 안정 대책 등을 요구하며 결성된 바 있다. 
조선노연은 7월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방적인 구조조정 반대, △조선산업을 살리기 위한 노정협의체 구성, △조선산업을 죽이는 정부정책의 전환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설 것을 선언하고, 같은 달 20일 현대중공업노조, 삼성중공업노동자협의회, 성동조선해양지회 등 3개 조선사 2만 3천여 명의 조합원이 파업을 벌였다. 반면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한진중공업 등은 쟁의권을 확보하지 못해 파업에 나서지 못하고 집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힘을 보탰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상급단체가 없음에도, 현대차지부와의 굳건한 연대투쟁을 보여주었다. 7월19일 현대중공업노조와 현대차지부는 “올해 임단협 승리와 조선업종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강력한 연대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하고, 이튿날 민주노총 울산본부 주최로 열린 ‘울산노동자 총파업대회’에 함께 참여했다. 두 조직이 공동파업을 벌인 것은 1993년 현대그룹노조총연맹이 공동 임금교섭 과정에서 벌인 파업 이후 23년 만이다. 노동계는 올해 하투에서 이 같은 공장 담벼락을 넘는 다양한 연대파업을 보여주었다. 
 
 
하투 바통 이어받을 공공부문의 하반기 투쟁
2016년 노동계의 하투는 8월 말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노동계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위력적인 파업을 진행했고, 막힌 산별교섭에 파열음을 냈다. 한편으로는 9월 말 대규모 대정부 투쟁을 준비하기 위한 숨 고르기도 있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8월25일 금속산업 노사가 중앙교섭에서 합의를 이룬 날, 현대자동차 노사도 사측의 임금피크제 확대 철회, 기본급 5만 8천 원 인상 등의 내용으로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노조는 14차례에 걸친 파업 등 최대치의 투쟁동력을 보였지만, 신입사원부터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소위 ‘이중임금제’를 가능케 하는 임금인상 방식에 합의함으로써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 노조 내 현장조직들은 일제히 불만을 표출했고, 이는 결국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이틀 만에 부결(반대 78%, 찬성 21.9%)됐다. 
조선업종노조연대는 8월25일 상경투쟁을 예고했지만, 전날 급하게 기자회견과 상경투쟁을 취소했다. 그리고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관련 움직임과 각 조선사 노조별 상황을 면밀히 살펴 신중한 입장을 내놓는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는 현대미포조선이 중앙노동위원회 행정지도 결정을 받는 등 쟁의권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조선사 공동파업 성사가 불투명해진 데 따른 것이다. 또한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와 노조위원장 선거에 돌입한 대우조선노조는 여름휴가 이후 별다른 쟁의행위를 하지 않고 있다. 파업의 최전선에 있는 현대중공업노조도 현대차지부가 임단협 합의를 이룸에 따라 그룹사 연대파업을 성사시키기 어려워졌다. 대신 조선노연은 ‘조선산업 발전과 조선산업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과 간담회는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하투에서 금속산업 노동자들이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면, 하반기에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투쟁의 바통을 이어받을 전망이다. 공공부문 노동계가 주목하는 것은 성과연봉제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성과연봉제가 확산될 경우 내부 경쟁을 부추겨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또한 에너지 분야와 철도를 민영화하려는 정부 정책 역시 하반기 공공부문의 노정갈등을 극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성과연봉제 확대와 철도·에너지공기업 민영화 반대 등의 요구사항을 내걸고 9월 말부터 투쟁 일정을 이어간다. 공공노련은 9월22일 총력투쟁을 벌이며, 금융노조는 이튿날인 23일, 공공운수노조는 2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 보건의료노조는 28일, 이튿날인 29일은 공공연맹이 총파업에 나선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이 올해 금속산업 노동자들의 하투보다 더 뜨겁고, 맹렬한 기세로 위력적인 동시파업을 성사시켜 민영화 저지, 공공성 확보라는 과실을 맺기를 기대해 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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