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경남지부 교육활동가교육을 받고

노동사회

전교조경남지부 교육활동가교육을 받고

admin 0 2,993 2013.05.08 10:23

전교조 경남지부의 임영회 사무차장으로부터 교육하나 받지 않을래 하는 제안을 듣고, 교육프로그램을 본 순간 선뜻 그러겠다고 했다. 내 발등의 불부터 꺼야 했기 때문이었다. 경남지부에 학생생활국장이 생긴 것도 처음이고, 내가 학생생활국장으로서 전교조에서 일을 하게 된 것도 처음이다. 지난 1월 첫 주 지부 상집 MT에서 2002년 학생생활국 계획을 발표하니 모든 선생님이 걱정부터 했다. 욕심이 너무 많다, 현실적이지 못하다, 예산이 너무 많이 들겠다, 학교는 그만 둘 거냐, 처음이라 뭘 몰라서 그렇다는 등. 그래서 다시 계획을 짜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던 중 차장님으로부터 교육활동가교육 제의를 받은 것이다. 

사실 늦은 나이에 전교조에 들어 온지 1년 반만에 지부국장으로 출세(?)를 한 이유는 바로 전교조 ‘교육’ 덕분이었다. 작년에 전교조 교육이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지 쫓아 다녔다. 대의원도 아니면서 작년 12월 천안대의원대회 때도 연가를 내고 갔을 정도였다. 1월 속리산 보람원 전국 일꾼연수에도 “기조를 알아야지예!”하면서 성큼 가겠다고 할 정도로 나의 세포는 진도가 많이 나갔다. 일단 전교조에서 하는 교육은 무조건 받고 보자, 전교조의 한번 연수는 열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 게 나의 기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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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학식 모습 ]

엘살바도르의 열악한 노동현장영화 '은폐'를 시작으로

1월29일 아침 9시 반 지부 사무실에서 집행부와 함께 짐을 챙겨 경남학생기숙사에 도착하니 이미 도착한 강사들이 난감해 하고 있었다. 날은 춥고 강의실은 책상하나 없이 썰렁하였고 서둘러 준비를 시작해도 교육 약속 시간 10시를 훌쩍 넘게 되기 때문이었다. 

수업 전, 엘살바도르의 열악한 노동현장을 보여주는 '은폐'라는 단편영화를 감상했다. 아동, 임산부에 대한 저임금 노동착취 장면과 생명을 담보하는 조합활동 등이 다큐로 제작된 영화였다. 새벽 5시까지 임산부에게 일을 시키고, 산후휴가를 마치고 온 여성노동자의 머리를 권총으로 내리치며 해고하는 등 여성노동자들이 울면서 증언하는 것을 보고 사람 사는 곳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치를 떨다가도, 노동운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단병호 위원장이 감옥에 6개월 넘게 갇혀 있고, 산후휴가 3개월도 모성보호법에 명시만 되어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 오십보 백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말이 가슴을 쳤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을 누가 만들었을까 먼저 생각해보는 것, 적당한 노동조건에서 착취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졌는지 점검해볼 것!" 

흔히 교육을 하다보면 첫째 시간은 제대로 교육시간을 지키기 힘든데 이렇게 영화를 상영하니 교육자는 넉넉히 수업준비를 할 수 있고, 마음 조리며 피교육자가 출석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좋아 보였다. 

강사진은 낯이 익은 홍진관 교육국장과 교육도 하기 전에 입술이 부르터 있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이광석 교육위원, 생글생글 웃음의 강연배 교육위원이 한 팀이 되어 우리와 같이 1박2일을 보내게 되었다. 아마 애초에는 각 지회의 교선국장을 교육대상으로 삼은 것 같아 보였다. 교육에 참가한 교사들은 분회장, 지회, 지부의 간부 20여명이었다. 

강의식 교육에서 벗어나

첫 시간은 이광석 위원이 진행하는 '단계별 교육훈련이란' 교육이었다. 이 시간은 본 수업이 아니라 이번 교육을 전체적으로 안내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스티커평가에서 1위로 선정되었다. 

특히 평소 부흥회스타일로 강의하는 나에게는 상당히 충격이었다. '아무리 좋은 교육내용도 교육받는 사람이 잠을 자면 말짱 도루묵! 감동을 주어야 생각을 바꿀 수 있어!'라는 나의 강의관(?)으로 나의 수업은 항상 울고 웃고 펄쩍 펄쩍 뛰어다니며 옆길로 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이광석 위원은(3월에 국어교사로 첫 발령을 받는다고 한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미소 띤 얼굴에, 유머 있는 예 들기를 기본으로, 수업의 목표를 분명히 전달하고, 수시로 확인하고, 자료집을 적절히 활용하는 등 나와는 다른 강사였다.

편차가 큰 조합원들의 교육상태에 따라 단계별로 교육하자는 것인데 단순히 수요자 위주의 교육뿐만 아니라 현장활동가(플레이메이커)를 키워 조직의 지도부와 현장을 이어주는 허리를 튼튼히 하겠다는 적극적 의미의 실천적 교육이었다. '무엇을'은 배웠으나 '어떻게'는 배우질 못하는 강의식 교육의 단점에서 벗어나 스스로 참여하는 교육으로 바꿔 결국 피교육자에게 감동을 주고 행동변화를 이루어 낸다는 것이다. 

4단계로 이루어진 스웨덴 산업노조의 단계별 교육훈련과정과 성공적인 민주화학섬유연맹의 현장활동가 훈련과정을 듣고 앞으로의 1박2일 교육일정에 상당히 기대를 갖게 되었다. 

'우리'라는 동지의식을 키우며

점심 먹고 이어진 게시판 토의 수업은 약속한대로 피교육자들이 스스로 참여하는 시간이었다. 피교육자의 참여가 근본적으로 막힌 강의식 수업의 단점에서 벗어나고자 흔히 분임 토의를 하게 되는데 이것도 목소리가 큰 사람이 주도하게 되고, 소극적인 토의참가자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는데 반해 모든 피교육자가 자신의 목소리(글)를 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게시판 수업의 큰 매력이라고 했다.

'지금 현장에서 조합활동을 하는데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10cm×20cm의 두 장의 색종이에 각각의 문제점을 명사형으로 적고 리더는 그 종이를 한 장씩 전체에게 보여주며 비슷한 종목끼리 요술풀(스프레이 풀)이 붙은 게시판에 붙여 나갔다. 비슷한 내용끼리 모아가면서 제목도 붙였다. 예를 들면 '여유가 없다', '학교업무', '시간이 없다', '모이자는 말을 못해'를 비슷한 것으로 모으고, '바쁘다 바빠'라는 제목을 붙였다.

큰 제목인 '바쁘다 바빠'(활동시간 부족), '니 아나?'(조합원대상의 교육부재 내용), '일어나'(조합원의 의식결여 내용) 등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큰 제목을 골라 각각 3장의 스티커를 붙이고 가장 많은 스티커가 붙여진 제목 3개를 골라 분임 토의가 시작되었다. 

분임 토의 팀을 만들기 위해 생일순으로 일렬로 서게 해서 나는 내 생일이 1월29일이라 당연히 맨 앞에 서니 주위 분들이 오늘이 네 생일이라며 가르쳐 주었다. 생일인 것도 모르고 서 있는 내가 바보같기도 하고 마흔 다섯이나 된 내 나이가 무섭기도 했다. 

참여형 수업은 발표에 달려있다고 할 정도로 다양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발표를 유도해야한다고 한다. 각 팀은 팀장과 서기를 뽑아 내용을 정리하고 각 팀의 특색에 맞게 대자보, OHP 등으로 발표한다. 아이들과 수업에도 적용하면 참 좋을 것 같았다. 단골들만 발표하는 학급회의 시간이나 시사성이 있는 도덕수업에 적용해도 좋겠고 노가바, 역할극, 4칸 만화 등으로 더 재미있게 발표할 방법도 찾아낼 수 있겠다. 

다음은 현장 리더십 강화 시간으로 각자의 리더십 스타일을 찾아내고 같은 타입끼리 한 조가 되어 장단점을 찾아내고, 어떻게 단점을 해결해나갈 것인가를 토의하고 발표하였다.

인간중심, 정이 넘쳐, 용두사미의 B형과 철두철미, 완벽해, 일 중심의 C형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같은 스타일끼리 모이니 웃음과 동감의 소리가 이어졌고, 발표도 용쟁호투 불꽃이 튀었다. 리더십 강화시간을 통하여 개개인의 교육참여에서 '우리'라는 동지의식이 많이 생긴 것 같았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개개인의 특성을 고치고 교육해야 할 단점으로 보는 것보다는 타고난 보물로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록새록 느끼는 것은 내가 젊은 날 그렇게도 버리고 싶어했던 나의 단점이 아무리 어려울 때라도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첫날밤의 마지막 역할극 시간. B팀은 연가투쟁에 반대하는 교장에게 연가를 결재 받고자 하는 상황을, C팀은 일요일에 전교조집회에 나가려하는 여교사가 조합활동에 반대하는 남편과 아이를 설득하는 역할을 연기했다. 배역을 설정하고 시나리오를 만들어 가는 집단사고 과정 중에 내 말을 하는 것보다 먼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상대방의 정서까지도 고려해야 함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첫날 교육이 끝난 시간이 밤 11시였고, 이후 단결의 밤이 이어졌다. 다음날의 교육을 위하여 절대 술 중심의 단결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사는 강조했지만, 역시 술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너무나 인간적인 세포들이었다.

조합원을 중심에 둔 교육기획

둘째 날, 학교 근무조에 도장만 찍고 허겁지겁 교육장으로 달려가 첫째 시간, '교육기획, 진행훈련'을 받았다. 흔히 '계획'과 '기획'을 혼동하는데 계획은 내용이 명확하며 일상적인데 반해 기획의 특성은 불명확하며 파격적이라는데 있다고 했다.

나는 MBTI(심리유형검사)의 ENFP(외향성, 직관적 인식, 감정적 판단, 외부 세계에 인식적 태도로 대처)형이라 기획단계를 가장 좋아한다. 일처리에서도 기획과정이 제일 행복하지만 일의 마무리를 지을 때는 지겹고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귀를 활짝 열고 들었는데 그동안 내가 해왔던 기획들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게 되었다. 조합원의 상태와 교육요구 파악이 먼저인데 나는 항상 나의 상태와 나의 교육요구로 기획했던 것이다. 다음은 교육기획안을 철저히 작성하고 세부적인 교육진행방법 및 진행시나리오를 작성했다. 교육기획안도 상태 및 요구분석에 따른 목표를 정확하게 잡고 주제, 대상, 시기별에 따른 교육내용을 결정했다. 또한 교육일정과 프로그램이 하나의 흐름을 갖도록 하며, 교육시간, 장소, 예산을 확정했다. 교육을 집행한 후에는 목표에 따른 명확한 평가를 해야한다는 말을 들으며 흔히 "욕 봤다! 그만하면 잘했다 아이가?" 하며 위로의 술을 먹는 것으로 평가를 대신했던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울러 교육진행자의 자세에 대한 내용은 너무나 세밀하여 머리가 흔들릴 정도였다. 교육의 촉진자로서 연출가로서, 엔터테인먼트의 감성적인 기질과 철저히 기획하고 점검하는 실천가로서의 면을 모두 가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사소한 것이지만 중간이탈자에 대한 주의도 진행자의 몫이었다. 사실 중간이탈자에 대하여는 손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넘기곤 했는데, 참가자 확인과정에서 미리 전교육 과정을 이수하겠냐는 확답을 받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다음 기회를 이용해달라고 해야하며, 개인사정으로 빠지게 되더라도 꼭 전체 앞에서 빠지게 된 이유와 미안함을 밝히는 예의도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조는 진주사립지회의 교선국장이 분회에서 교육선전을 맡은 조합원을 대상으로 3주 6시간 교육프로그램을 발표했고, 김혜영 선생님은 학교에서 조합원을 할까말까하는 평범한 교사를 대상으로 조합원 만들기 1박2일 교육프로그램을 발표하였는데 그냥 듣는 것으로 끝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마지막은 현장에서 뭘 할 것인지 각서를 쓰는 '현장활동 계획' 시간이었다. 

초보 교육활동가로서 다시 시작하며

임영회 차장님이 언제 사오셨는지 생일케이크에 불을 붙여 작은 생일 파티를 열어주셨다. 어제가 내 생일이었다는 것을 깜빡하고 미역국도 못 먹었는데 이렇게 생일을 챙겨주나 싶어 너무 고마웠다.

활동가 교육으로 나에게 성숙과 동지들과 함께 하는 기쁨, 생일상을 덤으로 준 홍진관 국장, 이광석, 강연배 위원에게 다음에 꼭 술을 사겠다는 약속과 함께, 교육 내내 먹을 것과 잘 곳을 챙겨준 지부 집행부에게도, 1박2일 동안 웃어가며 즐겁게 공부한 경남의 동지들에게도 행복의 당부를 드리고 싶다. 

나는 현장활동 계획서의 끝 부분 나의 각오란에 "내 몸이 사랑이며, 누구나 사랑하고 우리의 꿈을 실현시키고 함께 행복해지자!" 라고 적었다. 전교조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내 삶의 목표가 '나'에서 '우리'로, '내가'에서 '함께' 바뀐 것이다. 

1박2일의 교육활동가연수 중 마흔 다섯이 된 나! 전교조의 초보 교육활동가로서 다시 시작하는 나! 마흔 다섯에 다시 시작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