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노조주의 지역여론과 노동조합의 대응, 울산의 경우

노동사회

반노조주의 지역여론과 노동조합의 대응, 울산의 경우

편집국 0 5,292 2013.05.22 09:53

울산지역이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의 파업을 둘러싸고 또 한 번 몸살을 겪었다. 어느 보수언론에서 집계한 대로 “19년째 반복되고 있는 일”이라면 이제 일상이 되어 익숙해질 법함에도 해가 갈수록 몸살의 정도는 커지는 듯하다. 노동조합이 여전히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실현하는 ‘민주주의 선도세력’이라는 견해와 이제는 자신들만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집단이기주의 세력’일 뿐이라는 견해가 격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좀 더 새로운 상황이 추가됐다. 지난 5월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구속여부를 놓고 울산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현대차 살리기 시민서명운동’이 진행돼 참가자 수가 12만을 넘어섰고, 이에 동참하지 않는 노동조합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 한편에서는 현대자동차노조의 산별전환 총회가 가결되기도 했고,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울산시정부를 상대로 ‘지역총파업’과 ‘소비파업’이라는 새로운 전술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역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산업도시 울산의 발전을 위해서는 노사관계의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왜 현실에서는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지역여론이 ‘반노조주의’로 강화되고만 있을까? 현재 맞이하고 있는 새로운 국면에서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어떠해야 할까? 쉽지 않은 문제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확산되는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지역여론

여론을 파악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인데, 여론조사 결과 또한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지역여론을 이해하기 위해 두 가지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고자 한다. 먼저 [표1]은 매년 울산시에서 실시하는 울산의 사회지표 조사결과다. 이는 동일한 문항을 3년 주기로 울산지역 4,775개 가구를 조사한 것이다. 이 사회지표 조사항목 중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이라는 항목을 보면,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여론이 우위에 있고, 2002년에서 2005년으로 오면서 부정적인 경향이 더욱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울산의 성인인구가 약 70여만 명이고, 이 중 조직노동자의 숫자가 약 8만 명 정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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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지역신문인 『경상일보』가 올해 6월29일에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자. 그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자들은 현대자동차의 파업은 “울산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70.3%)”이라며 “파업이 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자제돼야 한다(71.9%)”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 일반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함께 울산의 대표적 노동조합인 현대자동차노조의 단체행동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여론이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 의원직 박탈, 2005년 북구재선거 민주노동당 후보 낙선, 동·북구청장 직무정지, 5·31 지방선거 동·북구청장 선거 패배 등 울산지역 진보정치의 수세적 상황과 맞물려 ‘반노조주의’라는 객관적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울산에서 반노조주의 토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반노조주의 지역여론은 어떻게 형성, 강화되고 있는 것일까? 포항건설노조 파업과정에서 볼 수 있었듯이, 그 핵심에는 지역 정치인, 상공인, 관료, 언론인 등이 사측 노무담당자나 정보경찰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관계기관 대책회의’ 따위의 정체불명의 커넥션이 있을 것이다. 또한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익이나 한국사회 전체의 발전에 대해 함께 고민하지 못하고 있는 노동조합운동의 노선문제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쨌든 울산지역에서는 포항 파업에서 드러난 ‘부적절한 관계’가 구체적으로 포착된 적이 없다. 따라서 ‘커넥션’을 잘못 거론했다가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일이고, 또 노동운동의 노선문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다뤄야 할 것이다. 일단 구체적으로 확인 가능한 것부터 추적해 본다.

첫째, 울산시와 울산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기업사랑운동’의 후방효과가 있다. “산업수도 울산에서 기업의 탈울산을 막고,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2005년부터 추진된 울산시의 기업사랑운동은 그 해 11월, ‘울산광역시 기업사랑 및 기업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2006년 5월 ‘현대차 살리기 범시민서명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물론 이 운동은 직접적으로 반노조주의를 표방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내용이 일방적인 기업지원으로 채워져, 이에 부정적인 민주노총 울산본부를 결과적으로 “지역발전의 걸림돌”로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둘째, 지역언론의 역할이 지대하다. 지역 언론매체 중 지역신문은 발행부수 이상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른바 ‘지역사회 여론주도층’의 여론형성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울산새언론시민연대(준)에서 2006년 3월에서 6월까지 지역신문의 사설을 분석한 결과를 보자. 이에 따르면 5·31 지방선거가 한창이던 속에서도 광역일보를 제외한 두 지역신문사들은 상당한 숫자의 사설을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구속’을 주제로 다뤘다. 과거 그 어떤 지역 현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숫자의 사설과 칼럼으로, 현대차 정몽구 회장 구명의지와 현대차 노조에 대한 비판적 논조를 연일 쏟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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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을까? 새언론시민연대(준)는 그 이유를 짐작해 볼 만한 근거를 추측 수준에서나마 제시한다. 지금 울산지역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주상복합의 광고를 제외하고, 현대차 정몽구 회장 구속사태 이후 각 지역신문들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 ‘전면광고’가 바로 현대차였다는 것이다. 특히 정 회장 구속수감 이후인 지난 5월 한 달간은 전면광고 숫자가 다른 때에 비해 더 늘어나기도 했다. 즉 대형광고주에 언론사의 논조가 종속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현대차 위기론’을 앞 다퉈 다뤘던 보수 중앙일간지와 경제지 기자들의 문제의식이 울산지역신문 3사에서도 똑같이 발견할 수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언론사의 ‘기업’으로서 이해관계,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수준의 ‘기득권층’이 되어버린 데스크, 노동자 정체성을 기대하기 힘든 언론노동자의 수준 등이 친기업화되고 있는 시민의식과 어우러져 반노조주의 여론을 확대·강화하고 있다.

셋째, 지역사회와 소통능력이 떨어지는 노조운동의 문제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대중 동원을 목표로 발전된 노동조합의 활동언어로는 지역사회와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어렵다. 더욱이 직접행동을 선동하는 파업시기의 표현은 더욱 세심하게 ‘다듬어져서’ 지역사회에 알려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올해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소비파업’ 전술을 진행할 때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물론 문제의 근간에는 소비파업을 “보복파업”이라며 잘 걸렸다고 공격해대는 보수언론의 저열함이 있다. 그러나 소비파업이라는 새롭고 신선한 전술도 “보복”이라는 표현 하나에 순식간에 매도당해 의미가 퇴색한 점을 고려한다면 노조운동에서도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운동이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역총파업을 앞두고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올해 7월10일 울산지역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울산지역 노동현안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노력들은 ‘일회성’으로 보인다. 지역사회와의 소통능력은 다양하게 만나고, 듣고, 고민해야 생기는 것이다. 이 문제는 노동조합에게만 떠맡겨질 성질의 것이 아닐 것이다. 지역 민주노동당, 노동단체, 진보적 시민단체가 ‘다리 역할’을 해야 될 터인데, 현실을 보면 너무도 부족한 상황이다. 어쩌면 이점이 지역사회 내에서 반노조주의의 확산을 막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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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27일 울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의 산별전환을 지지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울산노동뉴스 ]

주목할 만한 노동운동의 새로운 시도들

확산되고 있는 반노조주의에 맞서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연대하는 데 시사점이 될 만한 실천 사례들을 찾아보자. 기억과 관점에 따라 입장이 다양하겠지만, 여기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2005년 울산 북구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발표된 민주노동당의 ‘지역발전’ 공약이다. 당시 민주노동당 정갑득 후보는 ‘오토밸리 성공을 위한 민주노동당의 대안’을 발표했다.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 후보와 현대자동차노동조합 위원장이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노동당만이 지역발전의 적임자이며, 대기업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을 통해 지역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실패한 선거전술일 수 있겠지만, 지역발전에 참여하는 새로운 주체로서 노동조합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최초의 공식선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노조운동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지역사회에 책임 있는 주체로서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축적될 때 조금이나마 반노조주의를 불식시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둘째,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7월에 시도한 울산시를 상대로 한 ‘지역총파업’ 전술이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울산시를 상대로 ‘10대 요구안’을 내걸고 지역총파업을 실행했다. 10대 요구안 중 자치단체의 권한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있다는 점, 울산시를 상대로 노정교섭을 요구하다 반응이 없어 총연맹 일정을 활용하여 추진하게 된 점 등의 한계가 있었지만, 개별노조의 요구를 ‘지방정부를 상대로’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진행한 최초의 지역파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물론 투쟁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운동주체들의 몫이다. 다만 이러한 투쟁과정에서는 지역여론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고, 이러한 노력이 결국 지역의 ‘반노조주의’ 여론을 타파하는 힘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셋째,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지역총파업 과정에서 시도한 ‘소비파업’이다. 울산시와 기업사랑운동본부, 소상공인협회, 음식점협회 등의 반노조적 행위에 맞서 소비자로서 노동자의 힘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새롭고 구체적인 전술이었다. 물론 단기간에 그쳐 성과를 확인하기 어렵고, “(영세 상인에 대한) 보복파업” 논란에 빠졌다는 한계는 있지만,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노동자”의 존재와 힘을 새롭게 인식하는 충분한 계기가 되었다고 보인다. 이번 소비파업의 문제의식이 묻혀버리거나 흔히 보아온 ‘근검절약운동’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장기적으로 지역생활협동조합 등 대안적인 소비자운동과 결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과정은 지역의 반노조주의 여론을 타파하는 힘이 될 것이다.

지역사회와 소통·연대하는 노동운동을 위한 제언

앞에서도 거칠게 살펴보았지만, 반노조주의는 단순한 ‘여론 문제’가 아니다. 구체적인 물질적 생산기지로서 (지역)언론이 있고, 숙련된 생산기술자로서 데스크가 있고, 반노조주의라는 상품의 매매를 통해 정치·경제적으로 이득을 보는 보수정치인과 경제단체가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시스템’이 양극화 시대 지역주민의 위기의식을 친기업적 시민의식으로 변화시키고, 지역사회의 여론을 반노조주의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노동운동은 반노조주의와 맞서기 위해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인식의 전환, 새로운 수단의 개발이 절실하다. 노동운동과 지역사회의 소통과 연대를 위한 출발점이 될 만한 것을 몇 가지 제안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조합은 지역발전의 주체이고, 이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울산은 과거 개발독재의 유산을 넘는 새로운 지역발전 모델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때문에 지역 균형발전의 방향을 만들어낼 사회구성원 간의 민주적 협력체계 구축이 절실하다. 울산에서 확실한 지분을 갖고 있는 노동조합운동이 지역혁신협의회, 지역노사정협의회, 지역노동교육협의회, 각종 위원회 등에 분명한 자기전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역사회와 무엇을 가지고 소통하고 연대할 것인가”하는 질문에 구체적인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시민사회와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필요에 따른 일회적인 ‘설명회’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만나고, 공동 의제를 개발하고,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울산지역 시민사회 인사들이 ‘현대자동차노조 산별전환 지지선언’을 하게 된 것도 노동조합과 새로운 연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뤄내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이들이 산별전환을 호소한 그 근거는 거꾸로 새로운 노사관계, 즉 노동조합운동이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모습에 대한 주문이 되었다. 노동조합은 이들의 주문에 적극적으로 답해야 한다.

셋째, 방송·언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기존 방송·언론 종사자들이 조합원으로서 의무를 지도록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지역차원에서 언론운동 단체와의 연대, 각 언론사 시청자·독자위원회 개입 등을 통해 가능한 언론감시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인터넷이나 영상매체를 통해 시도되고 있는 대안언론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연대를 소홀히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영세사업장·미조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들이 가지는 대기업노조에 대한 불신은 반노조주의에 ‘구체성’을 가져다준다. 이들과의 연대는 백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또한 소비파업의 예에서 보듯, 생활협동조합운동, 학부모운동, 환경운동 등 대안적인 사회운동과의 연대는 노조운동의 내용을 완성하는 것과 함께 반노조주의의 사회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고리다.

이상의 제언이 시도되려면 노동조합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거기에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적 시민단체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을 하라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당비와 회비를 내고 있지 않겠는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