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조에 차별시정 청구권을 줬다면(한겨레신문 2007.10.17)
김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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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4 12:00
1. 지난 7월부터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의 핵심 내용은 ‘비정규직 차별을 금지하고,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으로, 이에 대한 기업의 대응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입법 취지대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우리은행처럼 하위직군을 신설한 뒤 기간을 정함이 없는 무기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기업도 있다. 당장 차별적 처우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어서 ‘차별의 고착화’니 ‘중규직’이니 하는 비판도 있지만, 지금보다는 나아진 것이라는 점에서 잠정적 타협안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랜드처럼 계약을 해지하고 업무를 외주화하여, 비정규직 보호법의 차별금지 조항을 회피하고 고용조건을 악화시키려 드는 기업들이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 보호법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노동부와 한국노총은 상대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강조하는 데 비해,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노총은 법률 재개정을 요구하는 데 비해, 노동부와 한국노총은 입법 취지를 살리는 방향에서 보완 대책 마련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차이가 대책을 마련하는 데 근본적인 차이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보호법의 긍정적 효과를 살리고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법률 재개정이라 하든 보완 대책이라 하든, 어떤 형태로든 비정규직 보호법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며, 법률 이외에 다양한 정책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쉽사리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원청업체 사용자에게 공동 사용자 책임을 부과하고, 노동조합과 외주용역 업체 노동자에게 차별 시정 청구권을 부여하며, 정규직 전환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비정규직이나 외주용역을 많이 쓰는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등의 방안부터 도입해야 할 것이다.
2. 국제노사관계학회 회장을 지낸 독일의 바이스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독일에는 비정규직 차별이 없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독일에도 비정규직 차별은 있다. 그렇지만 종업원평의회가 조직된 사업장에는 차별이 없고, 종업원평의회가 조직되지 않은 사업장에는 차별이 있다. 기업은 비정규직을 채용할 때 공동결정법에 따라 관련된 정보를 근로자 대표에게 제공해야 하며, 이러한 사전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 요소는 사라진다”라고 답했다. 이것은 단순히 개별적 노사관계법만으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집단적 노사관계법이나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은 노동조합에 차별 시정 청구권조차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이유인즉 노동조합에 청구권을 부여하면 청구권을 남용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노동정책 결정권자들이 갖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편견과 행정편의적 사고를 단적으로 드러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어제 아침 신문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차별 시정을 청구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업주에게 해고되면서, 차별 시정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만약 노동조합에 차별 시정 청구권을 부여했다면, 차별 시정 신청을 청구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노동조합이 차별 시정 청구권을 남용한다면, 그만큼 차별이 빨리 해소되고 입법 목표가 앞당겨 실현되는 부수적 효과도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해소하는 방안을 논의할 때는, 노사협의회, 단체교섭, 단체협약 등 집단적 노사관계법 영역으로 논의를 확장해야 할 것이며, 노동조합의 역할을 제고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